2021. 4. 11. 12:12ㆍ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집), 서울(1:2)포항, 2021.04.10(토), K리그1 Round 9
캬~ 오랜만에 포항스런 포항다운 포항적인 포항 경기를 봤다. 빌드업부터 시작해서 점유율 차지하고 다양한 패턴으로 짧게 끊으면서 여기저기 파고 들다가 찬스를 잡는 축구. 시즌 안배하면서 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니 매 경기에 모든 것을 걸고 집중! 이게 포항이지! 포항스런 경기, 포항다운 승리!
이번 경기도 제법 많은 멤버가 바뀐 선발 라인업으로 시작했다. 신광훈 빠진 오른쪽 윙백에 전민광이 들어갔고 전민광이 보던 센터백에 이광준 투입. 센터 포워드는 김진현 선발. 이광준은 그동안 띄엄띄엄 경기에 나서긴 했지만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수비가 그리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비교적 무난하게 잘 지켜낸 것 같다.
선발 명단에서 제일 반가운 송민규!
공격수는 이렇게 자신감 넘치고 상대 수비를 움찔하게 쪼아대는 파괴력이 있어야 한다. 1대1은 기본이고 1대2의 싸움을 걸 수 있는 실력과 자신감이 있다. 송민규가 돌아오니 왼쪽 공수 만능키 강상우도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강상우-송민규가 왼쪽을 흔드니 다른 곳에 틈이 벌어지게 되고 전체적인 공격이 훨씬 부드럽게 맞아 돌아갔다.
상대를 흔들고, 수비의 균형을 깨뜨리고, 게다가 득점까지 올린다. 오랜시간 축구를 보면서 느낀 점은 대부분 선수들의 기량 차이가 그리 크지는 않은데 꼭 튀는 결과를 내는 선수들이 있다.
송민규가 빠른가? 글쎄...
킥이 정교하고 탁월한가? 그것도 글쎄...
하늘에서 내려받은 피지컬이나 들소체력도 아니다. 드리블 리듬이 독특하긴하지만 브라질급 볼 컨트롤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송민규가 득점을 올리고 상대 수비를 무너 뜨린다. 한 두번 그러는게 아니라 계속해서 보여준다.
보는 재미가 있는 독특한 선수다. 국대 감독들이 그리 선호하지 않는 스타일의 선수일수도 있는데, 김학범의 올림픽 팀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성장하는지 보고싶다.
무엇보다 경기의 전체적인 흐름이 좋았다.
경기 초반부터 상대진영에서 바로 바짝 붙으면서 수비하고 압박하는 전술이 잘 먹혔다. 홈 팀을 상대로 초반부터 힘싸움을 벌였고, 우리 선수들이 더 절실하게 뛴 것 같다.
전체적인 빌드업과 선수들 사이의 호흡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짧은 연결로 압박과 밀집상황을 벗어나면서 공격의 속도를 올리는 포항 특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난 2년간 평범하다 할만큼 흔히 나오던 이 모습을 9라운드가 되어서야보다니... 그만큼 많은 변화, 많은 핵심 선수들이 떠난 결과겠지...
경기가 제대로 풀리려니까 점유율 지배하는 딱 좋은 타이밍에 득점이 나왔다. 코너킥 찬스에서 나온 강상우-송민규 콤비의 득점이었는데, 그 전까지 포항이 계속 다양하게 밀어 붙이는 좋은 흐름이 이어진 결과였다.
비록 조금 뒤에 실점이 있었고 잠시 서울의 기세가 올라오기도 했지만 경기 내용과 흐름은 포항이 주도하고 있었고 실점 뒤에도 끝까지 팀의 전형이 무너지지 않았다. 이렇게 흐름을 내주지 않으면 막판에도 계속 찬스를 만들 수 있더라구.
그리고 후반전에는 크베시치와 타쉬를 투입하면서 공격력을 더욱 끌어 올렸다. 이미 포항쪽에서 결승골이 나오는게 당연한 분위기로 흘러갈만큼 경기 흐름이 잘 이어졌다.
수비가 한 번에 뚫려버리는 약점은 아직 남아있긴한데 이광준이 비교적 잘 버텨줬다. 한동안 상무 말년병장 아닌가 의심스러웠던 강현무도 서울전에서는 빛나는 눈빛과 집중력 장착!
반면에 기성용과 고요한이 빠진 서울, 확실한 중앙 공격수가 없어 팔로세비치를 센터 포워드로 올려야하는 서울의 공격력이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점유율 우위, 스코어 리드, 밸런스 유지, 그리고 승리까지! 거칠게 부딪치고 여러 개의 경고를 먹으면서까지 따낼 가치가 있는 중요한 경기를 이겼다.
그리고, 걱정했던 임상협이 한 건을 했지!
사실 전민광이 신광훈 대타 오른쪽 윙백으로 출전하면서 임상협-전민광으로 구성된 오른쪽 라인이 좀 버벅대지 않을까 걱정했다. 전민광은 오른쪽 윙백으로도 종종 뛰었지만 아무래도 왼쪽의 송민규-강상우 라인보다 무게가 떨어져 보였다.
후반으로 갈수록 불안불안해지고... 상대의 힘이 떨어졌을 때 팔라시오스가 휘저어주면 좋을텐데, 팔라시스오스 처럼 공격력에 비해 수비가 약한 선수를 쓰기에는 전민광이 덜 미더웠다. 원정이라고 승점 1점에만 만족하기에는 경기 내용이 너무 아깝고, 수비가 걱정되긴하지만 결국은 팔라시오스를 투입하지 않을까 싶은 바로 그 타이밍에 임상협의 결승골!
재주가 좋지만 확 풀리지 않는 선수가 아닌가 싶었다. 얼굴로 축구하면 국대에서도 뛸텐데... 얼굴만큼만 공 차면 좋겠다 싶기도 했다. 선발과 교체를 오갈뿐 풀타임 전력은 안되는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선발 뛸 때 뭔가 확실히 보여주지 않으면 다음 경기에는 다시 교체 멤버로 가지 않을까 예상했다. 지난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지만 기복이 있는 선수 같아 보였고... (하여간 온갖 안좋은 쪽으로만 생각^^)
그런 임상협이 골을 넣었다. 지난 경기에 이어 2게임 연속 득점. 이번엔 결승골! 팀 입장에서는 좌우 윙포워드가 모두 득점을 쏘아대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아마 지난 경기 득점을 계기로 자신감이 한결 올라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난 전북전 막판에 움직임이 참 좋다 싶었는데, 이번 서울전까지 잘 이어온 것 같다. 물 들어올 때 바짝 노 저어 보자~ 얼굴만큼 축구해 보자~ ^.^
타쉬 & 크베시치, 0.5 득점 정도는 지분 인정해 준다
타쉬 도움 크베시치 데뷔골 겸 결승골 세트상품 기회가 골대를 강타하면서 날아가 버렸다. 임상협의 결승골을 도우면서 드디어 타쉬가 공격 포인트를 올렸지만 득점 기회에서는 아쉽게도 슛이 빗나가 버렸다.
타쉬는 볼 터치, 시야, 패스, 슈팅 등에서 탁월하게 정교하고 부드러운 스킬을 가지고 있다. 공을 따내고 잡고 연결하는 동작들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빠르고 부드럽고 정확하다. 몸싸움과 끈적끈적한 플레이를 꺼리고 뒤죽박죽 상황에서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림 좋은 득점 장면을 종종 보게될 것 같다. 두 선수 모두 문전에서 움직임 경쾌해졌고 순도 높은 유효슈팅 나오기 시작했다. 곧 득점이 터지지 않을까 싶다.
다음 경기는 광주 원정. 그리고 이어지는 두 개의 홈 경기 상대는 수원FC와 제주. 영점 조정된 상태에서 하위 팀들과의 경기가 이어진다. 득점발 올리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가 또 있겠냐? 우리 포항이 하위팀이 아니라는걸 너희의 골로 증명해 주었으면 좋겠어!
...
아직 아랫동네에 있는 우리. 하지만, 하나씩 올라가자. 일단, 다음 한 경기를 이기면 더 예쁜 순위표를 받을 것 같다. 수원-서울 수퍼매치는 아랫동네에서 열리고 포항-울산 동해안 더비는 윗동네에서 벌어지는게 바람직하지! 우리 손으로 우리에게 바람직한 순위표를 만들자구!
기타등등
- 이수빈은 지난 경기보다 경쾌하고 많이 움직였다. 이수빈이 수비에서 착실하게 길목을 차지하니까 신진호도 한결 가볍게 움직인다. 신진호는 좌우로 배달, 이수빈은 커팅 후 전방 택배! 모처럼 활기찬 포항의 미드필드!
- 이승모는 때때로 공격 포지션에서 뛰기도 하지만, 이번 경기처럼 좋은 득점 기회가 오기는 힘들지. 1년에 한 번 오는 기회에 골대를 때려 버리다니... 확실히 수비역할 보다는 윗쪽 라인에서 플레이할 때 더 돋보이긴 하지만 수비형 미들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수비할 때 반발짝 더, 쬐금 더 악착같이, 더 과함하고 위협적이어야 할 것 같다. 실점장면에서도 블로킹 할 때 좀 더 확실하고 터프하게 붙어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 팔로세비치는 포항에서 만큼 팀 케미가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컨디션 탓일수도 있고 적응 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포항에서는 많이 뛰면서 온갖 길목에서 공을 터치하고, 프리킥을 차고, 킬 패스를 만들고, 득점도 올리는 선수였다. 한 마디로 경기의 중심에서 공격을 창조하는 주연배우였는데... 서울에서는 조연 공격수가 됐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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