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2. 16:22ㆍ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직관),성남(2:1)포항, 2021.03.21(일), K리그1 Round 6
시즌 초반 6경기에서 3패다. 초반 2연승 후 1무 3패, 그리고 3패 중에는 최근의 연패가 있다. 시즌 시작할 때 다소의 불안 요소가 있었지만 잘 극복하면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5라운드에 홈에서 수원에게 세 골이나 쳐발리면서 패하긴 했어도 성남 원정에서 승리를 따낸다면 그런대로 팀을 추스리며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성남 원정까지 패하면서 나쁜 흐름에 빠지고 말았다.
몇 가지 좋지 않은 흐름,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징조가 보인다. 팀의 성적과 전력을 떠나 포항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흐름이 만들어져 버렸다.
나쁜 흐름, 나쁜 징조
자책골을 포함해 수비 실수에 의한 실점이 계속 나오고 있다. 수비라는 것이 늘 실수도 생기고 상대 공격수에게 뚫리는 일이 다반사지만, 최근 포항의 실점 장면들은 다소 어이없는 실점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골키퍼의 대응 미스, 백패스 상대팀에 헌납, 걷어내는 볼 삑사리 등의 장면에서 실점이 나오곤 한다. 한 마디로 다리 힘빠지는 장면들…
이런 실점이 상대팀의 원더 골에 의한 실점보다 더 무섭다. 팀의 분위기를 가라 앉히고 선수간에 불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남전에서는 실점 후에 선수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축 쳐지는 장면이 보였다. 빨리 추스리고 경기에 집중을 하던가,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 대장이 나서서 따끔하게 정신줄 잡아 당기도록 호통을 쳤어야했다. 다들 어리둥절, 왕짜증 모션, 왠지 내 탓이 아니고 쟤 탓 같은 느낌, 허리춤에 손 올리고 하늘만 바라봐….
상황들이 안좋았다. 수원전에서는 상대의 모든 슛이 그림처럼 날아가 꽂혔고, 성남전에서는 상대의 킥 미스가 우리의 자책골로 이어졌고,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는 공격수 송민규가 전반에 퇴장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물론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작은 실수들이 빌미를 주었거나 그런 실수들이 반복되면서 생긴 결과지만, 운빨도 우리를 좀 빗겨간 것 같다.
성남전, 실점하기 전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선수들의 인식이다.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고, 조급한 모습이 보인다. 선수들도 조급하고 감독도 조급한 것 같다.
문제의 첫 실점이 있기 전까지는 경기 내용이 참 좋았다. 성남은 수비 지역에 사람만 많았지 효과적인 수비를 펼치지는 못했다. 차분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압박하면 상대는 허둥대변서 시간과 체력만 소모할 것 같았다. 그렇게 경기가 흘러가고 후반 중반쯤에는 완전히 우리가 주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승점도 3점 따내면서 팀의 플랜A 전술도 좀 더 단단하게 하고, 새로 합류한 외국인 선수들의 적응과 페이스도 도울 수 있는 좋은 흐름으로 경기가 흘러가는 듯 했다.
하지만, 안좋은 첫 실점이 있은 후 선수들의 플레이가 투박하고 거칠어졌으며 포항 특유의 짧고 간결한 짜임새가 깨져버렸다. 송민규의 퇴장도 그렇다. 퇴장 장면 자체는 송민규의 의도한 반칙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송민규를 포함한 공격수들의 플레이는 첫 실점 후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다소 무리한 플레이들이 많이 나왔다.
실점 후에도 경기 초반처럼 빠른 패스워크와 움직임으로, 포항이 잘하는 잘근잘근 씹어 들어가는 플레이를 정상적으로 펼쳤다면 충분히 추가 골을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경기장 안에서 그런 역할을 해줄 누군가가 없었던 부분도 아쉽기만하다.
별것 아닌 실점 하나로 경기가 나쁘게 흘러가고, 그것 때문에 결과도 뺏기고, 송민규는 다음 경기 결장, 실수한 놈은 죄인이 되어 버리고, 팀 내부에는 대화가 사라지는… 한 경기에서 승점 3점 말고도 잃은 것이 좀 많다.
세상에 성질 부려서 잘 되는 일은 없더라. 특히, 축구 경기에서는 더 그렇더라!
중앙 수비형 미들의 빈자리
성남전에서는 오범석이 빠지고 이승모가 선발 출전했다. 지금까지 이승모가 풀타임을 소화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 경기에서는 마치 자책골 실점 후에 질책성으로 교체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출전 시간을 늘여가면서 자꾸 자신감을 쌓아가야할 선수가 자칫 위축되면서 자신감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중앙 수비형 미들은 올 시즌 가장 크게 구멍이 느껴지는 포지션이다. 신진호가 중앙 미드필드에 돌아왔지만 수비를 안정시키기 보다는 공격할 때 강점이 많은 선수다. 따라서, 공격 지역에서는 여기저기 분신술 부리듯이 나타나지만 수비 지역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지난 시즌의 최영준처럼 폭넓게 움직이면서 상대 공격수와 직접 몸을 부딪치며 공격을 지워버리는 유형의 선수는 현재의 포항에 없다. 이승모 또한 수비 보다는 공격 성향이 큰 선수이고 오범석은 스피드와 활동량이 떨어져있다.
어떻게하면 좋을까…? 새로 합류한 그랜트가 우리 기대 만큼의 기량을 가졌다는 전제 하에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그랜트를 중앙 수비수가 아닌 수비형 미들로 기용하거나, 오른쪽 윙백 신광훈을 중앙 수비형 미들로 돌려막기할 수 있을 것같다.
개막전에서 잠시 보았을 때, 그랜트는 피지컬로 찍어 누르는 대형 중앙 수비수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개막전에서는 왼쪽 윙백으로 잠시 뛰었는데, 공을 이쁘게 잘 잡아 놓고 길게 또는 작게 열어주는 패스가 좋아 보였다. 어쩌면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잘 해낼 것 같다.
하지만, 활동량이 많으면서 넓은 영역을 커버하는 유형의 선수는 아닐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신진호와 크베시치가 그랜트보다 위에서, 신광훈과 강상우가 좌우에서 공간을 메워주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골 맛이 만병통치
송민규와 고영준 외에는 골 맛을 본 공격수가 없다. 타쉬, 크베시치, 팔라시오스, 임상협, 이현일, 이호재 모두 아직 골 맛을 보지 못했다.
타쉬와 크베시치가 아직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고 팀 케미도 완전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아직 골이 없다는 점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골은 커녕 득점에 근접하는 위협적인 찬스나 슈팅조차 보지 못했다.
플레이 모습으로 볼 때 실력을 의심할 선수들은 아닌 것 같다. 하루 빨리 득점을 통해 팀에도 기여하고 자신감도 올렸으면 좋겠다.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빠른 팀 적응, 가장 빨리 폼을 끌어 올리는 길이 아닐까 싶다.
다른 공격수들도 마찬가지다. 공격수는 득점이든 도움이든 공격 포인트를 올려야 플레이도 살아나고 동료들과 팬들의 인정도 받는다. 더 적극적으로 슛을 쏘고, 더 과감하게 골을 노렸으면 한다.
관중석 어딘가에는 포항의 팬들이 있다!
마침 지금 사는 곳이 성남이다. 성남, 수원, 서울, 인천에서 열리는 포항 경기는 가급적 챙기면서 직관하고있다. 특히 탄천 종합운동장은 집에서 차로 움직이면 대략 10분쯤 걸리는 가까운 곳이다. 어제(3/21,일)도 주섬주섬 챙겨입고 경기장에 갔다. 늘 하던 습관대로 좌석은 S석(원정석)을 예매해 놓았다.
성남 경기는 포항 팬들에게 제2의 홈경기 취급을 받는다. 성남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탄천종합운동장에서는 그다지 홈 팀 특유의 압도하는 관중석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서울과 수도권에 적잖은 팬을 가지고 있는 포항 원정석의 열기가 더 뜨거운 적도 많았으니까.
요즘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원정석을 따로 운영하지 않는다. (원정팬들의 응원은 물론이고 원정팀 티를 내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음) 그때문에 평소의 원정석 답지 않게 성남 팬들이 원정석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내 눈에는 꽤 많은 포항 팬들이 원정석에 있었다. 평소처럼 응원을 할 수도 없고 팀을 표현하는 머플러나 레플리카도 입을 수 없었지만 분명히 포항 팬들이 꽤 있었다.
성남의 응원 리드에는 아무런 반응도 안하면서 포항 위주의 리액션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포항이 찬스 놓치면 아까비 한숨, 성남이 찬스 놓치면 안도의 한숨. 포항 득점 시 방긋, 성남 득점 시 무반응 & 씨바표정) 포항 출신 선수의 국대 유니폼을 입은 팬도 있었고 소심하게 가로 검빨 무늬가 살짝 드러나는 티셔츠를 입는 사람도 있었다. 포항 팬인 내 눈에는 꽤 많은 포항 간첩들이 포착되었지!.^^
그러니까말야… 선수들아, 비록 소리를 지르면서 너네들과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경기장에 있단다. 북 소리도 못 내고, 입은 꽉 막혔고, 박수도 맘껏 못치지만 원정석 어딘가에서 여느 때와 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함께 뛰고 있지!
경기 안풀려서 고개 떨어지려고 하거든 원정석을 한 번 돌아보기 바란다. 거기 관중들 속에는 분명히 포항의 팬들이 있을거야.
안보여? 못찾겠어? 그래도 믿어줘~ 우린 분명히 거기 있을꺼야. 위장막 속에 숨어있지만 분명히 거기 있다구~^_^
…
우리 위에 무려 여섯 팀이 있다. 울산이 두 계단 떨어지는 동안 우리는 무려 네 계단을 내려왔다. 꼴보기 싫은 서울은 그 사이 2위까지 올라갔다. 가급적 전북이랑 울산과 다투고 싶은데 수원, 성남, 제주가 당장 우리 위에 버티고 있다.
다음 상대는 홈에서 대구. 만약 이 경기를 잃게 되면 지난 성남전과 비교도 안되는 타격을 입을 것이다. 다행히 홈 경기고 충분한 회복 시간이 주어졌다. 송민규가 결장하겠지만 새로운 선수들은 좀 더 완성된 모습으로 출전이 가능할 것이다.
얘들아~ 집밥 먹고 힘내자~
칼날 바짝 세워서 나오자!
PS) 요즘 이렇게 쾌적한 흡연구역 보기 힘들죠? 비록 축구전용구장의 뷰도 없고 최신식 경기장도 아니지만, 탄천종합운동장에는 제대로 된 매우 인간적인 흡연구역이 있습니다. 일반 관중석과 완전 분리, 실내부스 아닌 야외. 맑은 공기와 함께 흡연할 수 있는 청정흡연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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