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노병준.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

2011. 7. 28. 13:46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포항과 서울의 FA컵 8강전(7/27)은 포항의 4대2 승리!
연장 승부끝에 얻은 갚진 승리, 그리고 FA컵 준결승 진출!
게다가 상대는 FC서울!
포항 팬으로서는 일타쌍피, 일타삼피의 쾌감이지요 ^^

결국, 엇비슷한 경기력의 팀간 대결에서는
누가 더 치밀하게 준비하는가, 누가 더 이기려는 의지가 강한가,
그리고 꼭 이겨야만하는 절심함이 누구에게 더 강한가...
이런 부분이 승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황선홍 감독이 포항과 자신의 컬러 대신 승리를 위한 전술을 택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드필드에 힘을 잔뜩 싣고, 짧고 빠르게, 여러 곳을 찌르며 들어가는 포항 특유의 전술 대신 수비 3명이 중심을 잡으면서 경기 템포는 살짝 느리게... 전반전은 조심스럽게 찬스에서만 집중하되 전체적으로 자제하는 분위기...
기관총으로 냅따 갈겨버리는 대신 "움직이면 쏜다" 모드로...

사실 포항은 가끔 주체할 수 없는 조급함이 화를 부르는 적이 있었거든요.
특히, FC 서울의 데얀처럼... 송곳 같은 득점력을 가진 선수가 버티는 팀을 상대할 때는
포항의 공격적이고 빠른 경기 운영이 실점의 빌미가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포항의 공격 템포가 빠른만큼, 포항이 전진하는 만큼...
상대팀의 역습도 빨라지고 상대 공격수는 더 깊숙이 침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포항은 파리아스 시절부터 그 전술을 고수해 왔습니다.
잃을 것은 잃고 얻을 것을 얻겠다는 것인데...
요즘처럼 마지막 마무리에서 어긋날 때는, "내용은 좋았지만..."으로 결론을 맺기도 쉽습니다.

전반전 초반의 경기 양상은 0대0으로 끝날 것 같은 분위기 였습니다.
포항이 의도적으로 경기 템포를 느리게 가져가는 모습이 확연했거든요.
만약 포항이 전반전에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면, 어제 경기는 지지부진하게 60분 정도를 끌고 가다가 한 골차로 승부가 마감되는... 다소 재미없는 경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경기를 끌고 가려는 것이 황선홍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가 생각되네요. 경기후의 인터뷰를 봐도 그런 냄새가 많이 풍깁니다.)

다행히 포항이 먼저 앞서가면서 서울도 보다 적극적인 경기를 할 수 밖에 없었고
후반 일찍 서울의 만회골까지 터지면서... 드디어 '정상적인(^^)' 경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박터지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

...

고유의 전술을 버리고 승리에 초점을 맞춘 전술을 택한 것만 보더라도 황선홍 감독과 포항이 얼마나 서울을 이기고 싶어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점잖은 황선홍 감독이지만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승부 근성, 그리고 포항 레전드로서의 자존심은 펄펄 끓고 있었던 셈이지요.
여기에... 중요한 길목에서 같은 팀에게 같은 스타일의 패배를 두 번 당하지 않는..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제대로 갖추게 된 것이지요.

게다가... 조우커들이 제 몫을 해 주었습니다.
황진성은 자칫 느슨하게 흘러갈 수 었었던 경기를 팽팽하게 만들었고
조찬호는 활발한 움직임과 스피드로 서울 수비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노병준의 득점!

같은 조우커라도 기대하는 것이 틀립니다.
가령, 조찬호에게는 활발함을 기대하고 황진성에게는 다양한 공격 루트와 템포를 기대합니다.
반면에 노병준에게는 골을 기대하지요.
사실, 최근까지 노병준의 경기력은 기대에 못미치고 있었습니다.
조우커라고해서 들어갈 때마다 골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최근의 노병준은 짧고 간결하게 골을 노리기 보다는 측면의 넓은 곳에서 수비수들을 달고 움직이는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선발로 출전할 때와 조우커로 출전할 때가 틀린데...
그 동안 노병준은 조우커로 투입되었음에도 선발 출전한 전반전 같은 움직임이었습니다. 뭔가... 컨디션이 저조하거나 전술적인 엇박자가 생겼다는 말이겠지요.
어제도 후반전 투입 당시에는 다소 평소의 모습이었지만, 연장전에서는 중앙에서의 득점 찬스 포착에 주력하는 날카로움이 살아났습니다. 어제 경기에서 소중한 두 개의 득점을 올리면서 특급 조우커의 모습을 다시 찾은 듯 합니다.
두 개의 득점 모두 정확한 타이밍에 빠르게 파고들면서 만들어낸 전형적인 노병준표 득점!
선발과 조우커를 오가는 선수들, 특히 노병준처럼 득점 기계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을 함께 기대하는 조우커라면 장단 맞추기가 참 어렵지요. 노병준은 그 동안 그런 역할을 남달리 잘 해왔고, 잠시 주춤했지만 이번 경기를 계기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기를 기대합니다.

포항에게 있어서 이번 FC서울과의 FA컵 8강전의 가장 큰 소득은
4강 진출이 아니라 노병준의 귀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처럼 중앙 공격수의 부재에 시달리는 포항에게...
"내용은 좋았지만..."이라는 아쉬움이 가득했던 포항에게...
고비 때마다 깨알 같은 득점을 해 주는 노병준은 큰 도움이 될겁니다.

노병준... 당신은 10분만 뛰고도 90분 뛴 선수 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도 있는 선수야 ^^
한 시즌 20 득점이 아닌, 깨알 같은 다섯골 만으로도 스타 대접을 받을 수도 있고!
후반전.. 터치라인에서 교체를 기다리는 것으로도 팬들에게 확 각인되는...

짧고 굵게!

한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