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사천리로 예선통과, 오히려 독이 될수도 있겠네요.
2009. 6. 8. 11:59ㆍ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일찍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 짓고, 더구나 일사천리 무패행진을 통해 강한 자신감을 얻어낸
우리 대표팀이 자랑스럽네요.
팀 전력을 떠나서...
홈과 원정을 오가는 장기간의 예선 레이스에서 보통 한두번 정도는 미끄럼을 타곤 하는데
이번 대표팀은 고비가 될만한 이란, 사우디, UAE 원정경기에서 확실하게 3점씩 챙긴 점이
무엇보다도 돋보이는군요.
조기에 본선행을 확정짓기는 했지만, 액면 그대로 마냥 좋아라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이번 아시아 최종예선의 경우, 조편성 자체가 한국/일본/호주의 월드컵 본선 가능성을
50% 이상 잡아주는 시드배정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우리팀이 자부심을 가질만한 부분은...
일본이나 호주와 달리 아시아의 전통적 강호인 이란과 사우디와 한 조에 속하는 악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확실한 승리를 통해 마무리 지었다는 부분이겠죠.
...
역설적이지만... 절체절명의 고비가 단 한번도 없었다는 점이 우선 마음에 걸립니다.
위기를 겪으면서 내재된 문제들이 표출되고,
선수와 코치진 모두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수련의 과정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 아니라 아시안컵 본선이었다면 더 바랄것이 없겠지만
더 큰 무대에서 더 힘든 싸움을 해야할 월드컵 예선이기 때문에
그런 경험 또한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기성용이나 이청용 같이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보면, 더욱 그런 부분이 안타깝습니다.
소속팀에서든 대표팀에서든... 조금 더 담금질을 받고, 좀 더 큰 위기 극복의 경험,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경험... 이런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랄까?
단적으로... 박지성에 대한 의존도가 예상보다 훨씬 크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출전한 경기와
결장한 경기의 차이가 상당히 크게 나타납니다.
실력의 차이도 있겠지만, 정신적 의존이 그만큼 크다는 말이겠지요.
(더 나아가서... 해외파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큽니다.)
심하게 말하면... 베테랑들이 잘 깔아 놓은 마당에서 재능있는 신진들이 맘껏 실력을 펼친 셈이지요.
더 바랄 것이 없어 보이지만, 앞으로 본선에서 우리가 마주칠 상대팀은 이란이나 사우디보다
더욱 강한 팀들이 될테니까요.
월드컵 본선에서는 아시아 무대에서 처럼 박지성이나 이영표, 이운재 같은 베테랑들이 마당을
잘 깔아주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팀의 어린 선수들이 스스로 단련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이것은... 강팀과의 평가전을 통해 경험을 축적하는 것과는 또다른 경험일텐데...
선수들과 코치진의 모든 힘이 뭉쳐져서, 하나로 완성된 120%의 경험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란이나 사우디가 좀 더 강했더라면... (여전히 강하지만... 팀 파워가 나오지 않는 두팀... 아쉽습니다.)
정상적이었다면, 원정경기에서 꼬박꼬박 3점씩 긁어오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 만큼 매 경기에 좀 더 집중하고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겠지요.
단적으로... 앞으로 남은 사우디, 이란과의 홈 경기는
아무런 부담이 없는 경기가 되어버렸으니... 월드컵 본선을 위한 소중한 두 번의 진검승부 기회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07 아시안컵이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때 우승을 일궜더라면, 올 여름 남아공에서 열리는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줄전할 수 있었을 것이고
어떤 평가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좋은 경험을, 월드컵이 열릴 바로 그 장소에서 경험할 수 있었을텐데...
(물론... 지나간 이야기이긴 하지만... 너무 아쉬워서리...)
...
팀 내부적으로 볼 때, 수면위로 두드러져야 할 문제가 감추어지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분명히 득점력에 문제가 있고, 여전히 최전방의 공격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럼에도, 눈앞에 얻은 업적이 있기 때문에 허정무 감독을 포함한 주변의 고민이 100% 절실하게
다가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수비진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 선수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는
수비라인의 답은 없음에도... 승리와 본선티켓이라는 업적에 묻힐 수 있습니다.
앞으로 허정무 감독을 향해 쓴 소리, 질책의 소리가 날아갈 확률은 상당히 적습니다.
감독이 소신껏 준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팀과 감독이 가진 문제점이 활발하게 논의될 수 없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단기전 운용에 강하며, 실속있는 결과를 내는데는 탁월한 듯 합니다.
한국이 브라질을 격파하는 쾌거, 올림픽에서 2승을 올린 성과,
프로팀 감독으로서 FA컵 두 차례 연속 석권...
비록 팀 여건상 장기적인 레이스에서 기념할만한 트로피는 얻지 못했지만
단판 승부 내지 단기간의 진검승부에서는 누구보다 강했으니까요.
(포항 스틸러스 감독 시절인 1995년에 한 번 기회가 있었지만...
박종환 감독의 일화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당시에 만약 지금처럼 규정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면 포항이 우승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챔피언 결정전 직전에 단기 임대로 선수를 보강할 수도 있었고, 심판들의 판정 기준 또한
거친 축구를 구사하는 팀에 더 유리하게 작용을 했습니다.)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도 그런 허정무 감독의 특징이 그대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강한 허정무팀"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적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허정무팀의 특징이다"라고 보여지는 강인한 인상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할 수 있다는, 세계 무대에서 하나의 고비를 넘겨 줄 수 있다는 믿음은 아직 부족합니다.
월드컵 본선행을 조기에 확정지은 댓가로 허정무 감독은 주변의 잡스런 참견꺼리를 1차적으로 차단했습니다.
본인의 구상대로 팀을 강화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일찍 본인만의 구상을 할 시간까지 얻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잘 알려진 허정무 감독의 능력으로 여기까지 왔다면...
아마도... 지금부터가 허정무 감독의 진짜 싸움이 될거라고 봅니다.
월드컵 본선 조편성 결과에 따라, 우리 앞에 놓인 벽은 아주 크고 두꺼울 수도 있을겁니다.
일사천리 본선진출이 독이 되지 않으려면...
오히려... 지금부터 눈을 부릅뜨고 우리 대표팀을 지켜보고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감독뿐만 아니라, 주면의 전문가나 협회의 관계자들, 팬들까지...
기회를 얻었으면 모두 힘을 합쳐서 그 기회를 살려 나가야죠.
행여나, 16강 진출을 못하더라도 본전은 된다는 생각을 할꺼라면 여기서 더이상의 발전은 없습니다.
자력으로 16강만 나가면 소기의 성과는 올린다는 생각도 경계해야합니다.
성적은 좋을 수록 좋겠고... 더 높이 올라갈수록 좋겠지만...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레벨 더 상승된 한국 축구,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한 대회 한 줄의 성과보다는,
객관적으로 월드컵 16강권의 실력을 가진 대표팀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착실히 알차게 준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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