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18. 13:37ㆍ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포항 서포터인 저의 입장에서 보면 FC서울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꼭 이기고 싶은 팀이지요.
1) 우승경험도 별로 없고, 그리 강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명문이나 우승후보로 대접받는 것에 대한 시기
2) 투박한 촌놈 포항에 비해... 괜히 앞서가는 것 같은, 세련된 것 같은이미지가 영 아니꼬움
3) 연고지를 버리고 떠난 '북패륜'의 이미지
4) 포항으로 올 박주영을 뺏어간 바로 그 팀
5) 이상하게 포항에게만 강한 것에 대한 반감과 오기
위의 1~4는 그저그런 감정적이고 치졸한 이유가 되겠고
사실 가장 이기고 싶은 이유는 5번이 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원이나 울산, 성남 같은 경우에는 리그 챔피언을 다투는 중요한 경기에서 만난적이 꽤 되고
또한 우리에게 통한의 패배를 안겨 준 기억들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저 스스로는 수원, 울산, 성남의 경우에는 라이벌 의식이 좀 있습니다.
(물론... 그들 또한 포항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지는 의문입니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수원 서포터 중 한사람... 포항은 안중에도 없더군요... 쩝!)
이에 비해서, 서울은 라이벌이라기 보다는... '미운' 팀에 가깝습니다.
라이벌이란, 상대방을 제대로 인정해 주면서 꼭 이기고 싶은 팀일텐데
FC 서울은 그에 비해서... 그냥 얄밉도록 이기고 싶은 팀이니까요.
정말로... 수원, 울산, 성남에 졌을 때는 그냥 편안하게 잊으면서 다음 경기를 기약할 수 있을텐데
서울에 지면 두고두고 약이 오르니 말입니다.
....
5월 16일(토), 2009 K리그 서울:포항
전반전 실점하기 전까지의 포항 공격은 너무나도 눈부셨습니다.
빠른 공격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경기 내용, 중원에서의 압도적인 패스웍!
전반전 중반까지만 본다면 승패를 떠나서 정말 멋진 K리그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세차례의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날려버리더니..
급기야 수비 몸에 맞고 방향이 틀려 버리는 원쿠션 삐리리 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그와 함께 그 전까지 보여주던 포항의 짜임새 있고 스피디한 공격이 자리를 감추고
지리멸렬 의욕상실 조급증 만땅에 투박한 축구...
어느 한 팀이 천적이 되고, 그 팀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뼈아픕니다.
경기를 잘 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에 부담감 백배 엄습과 결정적인 실수가 따르게 되고,
바늘끝 같은 상대방의 득점이 우리의 목을 내려치는 듯한 불길함으로 다가옵니다.
그것도...
우리의 공격이 가장 불을 뿜으며 물이 오르는 시점에
우리의 득점 찬스는 계속되는 실수로 물거품이 되고
상대편은 한 번의 공격으로 행운의 득점을 올리게 되면
그 짜임새 좋던 공격이 급격히 무너져내리고 경기 주도권은 상대에게 넘어갑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승리를 향한 열정보다는 패배의 전주곡이 울려퍼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지나버린 시간과 장면들을 돌이켜보며 아쉬워할 뿐입니다.
데닐손의 발에 공이 걸렸더라면...
황진성이 발길질이 허공을 가르지 않았더라면...
데닐손이나 최효진의 슛 중에서 하나만 성공으로 이어졌더라면...
최근에 데닐손이 살아나고, 스테보도 살아나기에
이번에야 말로 FC서울과의 악연을 끊을 찬스가 왔다고 왔다고 생각했건만...
이렇게 좋은 반전의 기회를 너무 허무하게 날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패배의 아픔만 두배 세배로 증폭되고 말다니...
....
이번 FC서울과의 경기에서도 나타났지만, 수원과의 개막전을 제외하고
포항은 전반전과 후반전의 경기 내용이 너무 다르다는 약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체력 문제일수도 있고, 집중력의 문제일수도 있고, 전술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부분만 제대로 잡히더라도 2009 시즌의 패배와 무승부들 중 상당수는
무승부나 승리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김기동이 뛸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경기력 또한 눈에 띄게 차이가 납니다.
모든 경기를, 또한 매 경기마다 60분 이상을 김기동 선수가 거뜬히 뛰어 준다면 좋으련만...
김기동 선수의 체력이나 컨디션 문제인지, 아니면 감독의 판단인지 모르겠으나
계속해서 꾸준한 출전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보니,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져 보이네요.
현재 이 상태라면...
그리고, 꼭 사슬을 끊고 가야할 FC서울과의 경기에서 실패하는 전력이라면
앞으로 남은 일정을 극복하기도 쉽지 않을 듯 합니다.
이 난국을 뚫어 줄 뉴 히어로가 있을까요?
파리아스 감독이라면 뭔가 묘수를 내 놓을 수 있을까요?
서포터가 똘똘 뭉쳐서 새로운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 밖에 다른 어떤 무엇이든 간에...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를 만들 수 있을까요?
답답하네요.
아예 경기를 형편없이 못하면 미련이라도 없을텐데...
전반전에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처럼 뛰다가, 후반전에는 포항스틸러스 2군이 되어버리고...
뭔가 될듯될듯 하면서도 실점은 어찌나 전광석화처럼 어이없이 터져 버리는지...
두텁지 않은 선수진을 가지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함께 치러야하는 어려운 형편이기 때문에
K리그에서는 5위권 정도만 유지해 주면 겸사겸사 한 시즌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새 K리그 순위표에서는 한 자릿수 승점에 두 자릿수 순위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
한 명의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합니다.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도 좋고, 원샷-원킬의 수퍼 서브도 좋고,
중원의 싸움닭도 좋고, 수퍼 세이버 골키퍼도 좋고...
포항 스틸러스의 승리 방정식에서 핵심 변수를 맡아줄 한 명의 스페셜리스트가 나타나지 않는군요.
전체적으로 K리그 최강의 선수진을 꾸릴 수 없는 포항이기에
영웅처럼, 혜성처럼 나타나서... 포항 스틸러스와 함께 한 번 미쳐 돌아갈 수 있는 구세주를 기다려 봅니다.
파리아스... 당신이라면 하나 찾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는... 다시 다섯번째 별을 따기 위해 15년간 칼을 갈기는 너무너무 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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