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지금이 어쩌면 행복할꺼야...

2006. 4. 28. 11:31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이동국의 부상과 월드컵 출전 불가능 소식은
제게는 매우 절망적인 소식이었습니다.
데뷔시절부터 워낙 소중하게 보아 온 선수일뿐더러
팀의 넘버 원 스트라이커가 꺾인다는 것이
팀의 득점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그 동안의 축구 경기에서 너무나도 뼈저리게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황선홍이 공격력의 50%" 라고 말한
차범근 감독의 표현은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이 말은... 황선홍의 실력이 다른 선수들보다 절대 우월하다는 표현이 아니라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라는 자리는, 그 만큼 독보적인 열할과 책임이 따르는
아주 아주 특수한 포지션이라는 뜻입니다.
(흔히 표현하는 'i'자 위의 점과 같은 존재라는 뜻이지요.)

이동국의 부상과 월드컵 출전 좌절...
자신을 갈고 닦으며, 그리고 감독과 팀이 탐내는 멋진 기량으로
월드컵을 준비한 그로서는 무척 좌절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에게 지금의 행복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때론 술에 쪄들어 길거리에 퍼질러진 채 밤을 보내고
때론 사랑하는 여자와의 문제로 눈물을 흘리고
때론 세상과 사회에 대한 부조리와 불만에 몸을 떨고
때론 친구들과 무작정 어울리며 하루하루를 노는 것으로 소일하고
때론 배낭 하나 덜렁 메고서 여행을 떠나고
또 때로는 한 번 옴팡지게 책과 씨름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는...

돌이켜보면 저의 20대는 그런 시간들로 채워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한 여자를 알게 되고,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가지게 되고...
그래서 행복을 느끼게 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20대의 방황과 혼돈, 고민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소중한 경험과 추억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이동국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을까...

19살에 프로에 데뷔하여 스타의 길을 걸어 온 이동국으로서는
지금까지 스타 플레이어로서의 화려함과 함께
살벌한 경쟁과 비판, 부상과 회복이라는
지극히 외로운 혼자만의 줄타기를 해 왔을 것입니다.
그이 십자 인대가 끊어진 것은
단지 그 한 경기에서의 동작 때문만은 아닐겁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그의 인대는 조금씩 낡고 헤어지고 늘어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며...
선수의 본능, 골과 승부에 대한 욕망, 팀과 팬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등에 업고
그냥 그렇게 뛰었을 것입니다.

재활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미래도 불투명합니다.
육체적인 고단함과 정신적인 공황이 선수들을 힘들게 한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저는 그에게 그 시간의 행복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선수가 아닌 관중으로 즐겁게 축구 경기를 보고
때론 아내의 부엌 일을 거들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 향긋한 음식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고
집 근처의 이웃과 꽃과 나무를 소중하게 느끼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일 없이 빈둥거리며 낮잠과 잡스러운 짓거리로 소일을 하고...

이수진님의 미니홈피에서 퍼옴


이동국 선수의 아내인 이수진씨의 미니 홈피에 있는 이 사진...
골을 넣고 상대를 침몰시킬때의 짜릿함과는 다른
또 다른 행복을 느끼는 듯한 얼굴이 보기 좋습니다.

이동국!
행복해라...
비록 지금 아픔 절망속에 있겠지만...
지금까지 미뤄 두었던 축구장 밖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거야.

아내가 출산을 하는 날은
설사 그 날이 월드컵 예선 한일전이라 해도
경기 출전을 포기하고 분만실로 뛰어 갈 수 있는 남자가
경기에서 승리의 골을 넣는 남자보다 더 행복한 남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