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인천(0:0)포항 - 벌써 내년 맛뵈기?

2021. 11. 29. 17:10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직관), 인천(0:0)포항, 2021.11.28(일), K리그1 Round 37

인천이나 포항이나 남은 리그 경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1부 생존을 위해 리그 마지막 경기까지 몸부림치던 인천은 일찌감치 잔류확정. 포항은 비록 아챔도 놓치고 상위 스플릿도 날아가고 내년 아챔도 물건너가고 FA컵도 남의 잔치가 되었지만, 아챔 준결승에서 울산 쥐어 패면서 신나게 논 것으로 1년치 축구 다 마친 상황!

인천은 팬들에게 인사하는 마지막 홈 경기였고 포항은 그 동안 출전 기회가 없었던 선수들이 부담 없이 놀 수 있는 경기였다.

어쩌면 올 시즌 마지막 직관이 될 수도 있는 경기.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항의 미래를 미리 만날 수 있는 경기라는 점! 그리고, 육성 응원은 못하지만 당당하게 내 팀 포항의 유니폼을 입고 입장할 수 있는 원정경기! 나뿐아니라 서울 근처에 살고 있는 포항 팬들은 모두 같은 심정이었을 것같다. 원정경기, 그리고 별다른 주목을 받을만한 경기가 아닌데도 꽤 많은 서포들이 원정석에 자리를 잡았다.

딱 하나 골이 터지지 않은 것 빼고는 양 팀 모두 부담없이, 공격적으로, 그리고 신나게 맞붙은 경기였다. 인천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홈 팬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포항은 어린 선수들의 신나는 데뷔전을 만들기 위해 모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살벌한 승점 싸움은 없었지만 충분히 박진감 넘쳤던 경기였다!

(다만, 양팀 모두 지독하게 구린 극악의 골 결정력... 포항과 인천이 하위 스플릿에 있는건 다 이유가 있는거지...ㅠ.ㅠ)

이 애송이들이 선발출전?

솔직히 쬐금은 김기동 감독의 저의를 의심했다.

"혹시 이냥반, 자기 아들(김준호)만 데뷔시키기 애매하니까 다른 애들까지 끌고 나온거 아냐?"

ㅎㅎ. 사실이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세 선수 모두 실력만큼은 충분히 검증이 된 것같다. 애들한테 어떤 뽕을 넣었는지는 모르지만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게 마음껏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한 경기, 그것도 전반전만 뛰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 이 선수들은 아마도 내년 시즌이 무척 기대될 것이다. 잘 준비해서 내년에는 더 자주 보도록하자.

조재훈은 측면에서 공을 지키며 끌고 나가는 모습이 좋았고 노경호는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공을 뿌리고 살려주는 모습이 좋았다. 김준호는 아빠와 달리 키가 크네? ㅎㅎ 셋 중에는 제일 밋밋했지만 득점 루트를 따라가는 재주는 셋 중에서 가장 돋보였다.

자기 아들 챙기기? 김기동은 그런 감독은 아닌 것같다. 시즌 막판에 동기부여가 정말 어려운 경기에서 오히려 미래를 준비하는 감독이다. 뭐, 이정도 해 주는 감독이라면 자기 아들 챙겨도 뭐라할건 없지! 게다가... 그 아들놈 공 좀 차는걸!

하프 타임겸 담(배)타임. 20년이 넘도록 별다른 약속 없이도 축구장에서 늘 만나는 친구 왈...

"김기동도 그렇고 조성환도 그렇고... 아무리 선수 없어도 감독이 잘하면 최소 강등은 안당하네..."

"강등은 안당하네"로 마무리 되는 씁쓸한 시즌이지만, 최소한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경기였던 것같다.

형들의 귀환

이들이 왜 이제야 왔냐구... 심상민, 김용환이 좌우에서 딱 잡으니까 각이 딱 나오잖아! 강상우를 수비로 내리고 전민광과 신광훈으로 돌려막았던 포지션, 덕분에 신인 김륜성과 3부리그 박승욱에게 귀한 기회가 주어졌던 포지션, 그럼에도 끝내 완성품을 볼 수 없었던 포항의 수비였는데...

단 한 경기에서 바로 자리를 잡아버린다. 간만에 출전한 조성훈의 활약도 좋았지만, 클린시트가 혼자만의 작품은 아니다. 우리 윙백, 아니 우리 포백이 이렇게 안정적인거야? 씨바... 이들이 여름에만 왔어도, 아니 한 달만 빨리 왔어도 올 시즌 결과는 달라졌을텐데...

내년 시즌이 시작할 때까지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수비라인에서는 여러가지 조합과 변화가 가능할 것같다.

쭈뼛쭈뼛, 멀리서 뭐하는거야?

경기 후, 선수들이 먼 발치에서 서포터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의 인사라기 보다는 서로간에 느끼는 교감의 표현이 맞겠지...

그런데, 이 선수들 볼 때마다 참 답답하다. 지난번 아챔 준결승처럼 큰 경기에서 이기고 신났을 때는 춤추고 노래하면서 방방 날아 다닐줄도 아는 선수들인데 왜 그리 먼 발치에서 쭈뼛거리는지 모르겠다. 눈과 마음은 관중석의 팬들에게 있으면서도 몸은 전혀 다가오지 않는 선수들...


귀찮거나 힘들어서 서포터스 앞까지 다가가지 않는 것이 아니란거 안다. 그냥 그게 여전히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팬들과의 교감이 서툴다. 팬들과 교감하는 것조차 경기의 일부이고 선수로서 느끼고 누릴 수 있는 큰 기쁨일텐데, 우리 선수들에게는 영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늘 저만치 먼 곳에서 수줍게 인사할 뿐이다.

어찌보면 안타깝다. 어린 시절에는 선수가 아닌 팬으로 살았어야했는데... 축구를 시작한 이후 줄곧 선수의 길만 걸어왔기 때문에 팬심을 간직하고 키울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려서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를 보면서 자라온 선수들이지만, 그 어린 마음에도 자기들은 선수였지 팬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선수들의 준비에는 비교할바가 아니지만 팬들도 간절한 마음으로 경기를 준비한다. 미리부터 스케줄을 잡고, 꿀같은 주말을 반납하고, 유니폼과 머플러를 챙기고, 와이프의 레이저건 같은 눈총을 외면하고, 몇 시간 전부터 입장해서 오늘의 한 경기를 함께 준비한다. 경기장을 직접 찾은 팬들의 마음이 그렇다.

결코... 주말 저녁을 부담없이 즐기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이 아니다. 경기에 지면 행복한 주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경기장에 간다. 그 많은 걸개와 깃발, 북을 챙겨가서 선수들도 도착하지 않은 경기장에서 오늘의 한 경기를 준비한다. 하물며 원정경기는 어떻겠는가?

 

인천 아나운서의 장내 멘트 속에서도 꿋꿋하게 포항의 북소리를 울리는 저 모습을 한 번 봐라. 육성 응원이 금지된 경기장. 선수들이 90분 내내 들었을 포항의 응원 리듬을 위해 저 무거운 북을 메고 함께 경기를 치른거다.

부디 더 가깝게 팬들과 교감하기바란다. 다가가기를 망설이지 말기 바란다. 팬 서비스고 뭐고... 그딴거 다 신경쓸 필요없다. 이쁘게 보일것도 멋지게 보일것도 없고 억지 미소를 지을 필요도 없고 스타가 아니라고 위축될 것도 없다. 예의 따위는 2%만, 무례하지 않을 만큼만 지키면 된다. 스타킹 내린 채로, 일그러진 얼굴 그대로, 땀에 젖은 그대로 그냥 당신들과 함께 90분 경기를 치른 동료들처럼 다가가기 바란다.  함께 경기를 뛴 동료들에게 다가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