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L결승]알힐랄(2:0)포항 - 가슴 쫙 펴고, 위풍당당하게!

2021. 11. 24. 17:03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집), 알힐랄(2:0)포항, 2021.11.24(수), ACL 결승(리야드, 사우디)

큰 경기를 지고난 후유증은 크다. 지난 경기의 여러 상황들을 돌아보면서 부질없는 가정과 상상을 하기도한다. 이러면 어땠을까, 저러면 어땠을까...

 

경기 시작하자마자 어영부영 첫 골을 먹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크베시치는 왜 그렇게 엉성하게 수비를 했을까, 이준이 살짝 먼저 반응했다면 손끝에 공이 걸리지는 않았을까...

뒤 이어 나온 신진호의 슛이 골대를 맞고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면 경기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 바운드 된 공을 임상협이 골로 연결했다면 어땠을까

어웨이가 아닌 홈 경기였으면 어땠을까

포항 서포터스가 200명쯤만 날아갔다면 어땠을까

이승모가 함께 갈 수 있었다면, 타쉬가 부상이 아니었다면, 강현무가 부상이 아니었다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온다. 그만큼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경기이고, 이 한 경기를 끝으로 아챔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내년에 우리는 아챔에 나가지 못한다. 게다가 현재의 전력이라면 당분간 아챔 무대에 다시 등장하지 못한 채 몇 년이 흘러갈지도 모른다. 하물며 아챔 결승에 다시 올라서는 날은 또 언제가 될까...

 

어쩌면 10년 동안 다시는 아챔 결승에 오른 포항을 못 볼 수도 있다. 설마 포항이 그럴리는 없겠지만, 지독하게 운이 따르지 않고 요모냥 요꼴로 구단 운영이 계속된다면... 만에 하나 내 평생에 다시는 아챔 결승에서 포항을 볼 수 없을 수도 있다.

 

어렵게 어렵게 아챔 결승에 올라온 우리 팀이 무척 자랑스럽다. 비록 전력의 역부족을 느끼면서 지긴했지만, 먼 곳에서 고독하게 힘든 싸움을 펼쳤을 우리 선수들에게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면서도 계속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리고,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까... 꿈만 먹고 사는 축구팬의 생활이 얼마나 거지같은지 알기 때문에 계속 아쉬움이 남는 것같다.

 

아챔 결승을 끝으로 포항의 시즌은 막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우승 경쟁도 아챔 진출권 경쟁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강등 경쟁도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한 번 더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1분이든 10분이든 더 뛰는 것이 큰 보람이긴 하겠지만... 사실 나에게는 남은 두 경기에서 전패를 해도 전승을 해도 크게 의미가 없다.

 

돌이켜보면 아챔 우승은 올 시즌 우리가 도전하기에 너무 큰 목표였다. 그저 다시 아챔에 나가는 것으로 좋았고, 한 경기라도 더 이기는 것이 좋았다. 8강에서 나고야를 꺾었을 때는 이걸도 이미 목표는 초과달성 했다고 생각했고,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울산을 잡았을 때는 몇 년치 축구를 다 본 것처럼,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뻤다.

 

그랬다... 그걸로 충분히 행복한 시즌이었고 멋진 기억으로 가득찬 한해였다. 결승에서 지고난 후에는 마치 아챔 우승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것처럼 상실감이 크지만, 이번 시즌도 우리는 엄청난 스토리를 새로 만들어 냈고, 이 빌어먹을 축구팬 노릇을 끊을 수 없는 마약 주사를 또 맞고 말았다.

 

이번 패배도 준우승도 우리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초라하거나 궁상맞은 역사가 아닌 아주 뜨겁고 자랑스러운 역사, 온갖 어려움을 뚫고 올라선 영광스런 역사로 기억될거라 생각한다. 축구팬들에게는 2020년 울산의 우승보다 2021년 우리의 준우승이 더 감동적이고, 더 후끈하고,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거라 생각한다.

 

우리의 준우승이 울산의 우승보다 더 재밌으면 됐다.

우리 엠블럼이 알힐랄 엠블럼보다 멋있으면 됐다.

그래, 그거면 됐다. 이렇게 멋지게 여기까지 헤쳐온 팀이 내 팀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매우 행복했던 시즌으로 기억에 남을 것같다.

 

언제 다시 아챔 우승에 도전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시아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이유를 내년에도 백개쯤은 너끈히 찾을 수 있을 것같다.

 

변함없이... 여전히 우리가 축구를 젤 재밌게 하는 것같다! 이건 변함이 없지! 암!!

 

가씀 쫙 펴고, 위풍당당하게~ 니들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