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포항:수원 - 이런걸 홈에서 쳐발린 경기라고 하지!

2021. 3. 18. 17:58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집관), 포항(0:3)수원, 2021.03.17(수), K리그1 Round 5

 

아직 김광석, 하창래가 없는 중앙 수비가 자리잡지 못했다. 최영준이 떠난 빈자리도 튼튼하지 못하다. 이 두 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시즌 내내 우리 포항 팬들은 다이내믹한 고혈압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것 같다.

 

5라운드 수원전은 업친데 덥친 격! 우리의 수비는 어정쩡한 반면, 평소에는 쉽게 들어가지 않을 골들이 수원 선수들의 발에 착착 감기듯이 꽂혀버렸다. 수비에 불안 요소가 있을 때는 0대3의 스코어가 이렇게도 쉽게 나온다. 수비는 달리기 놀이하는 상대를 뒤에서 “행님아~” 하듯이 쫒아가기 바빴고 강현무는 얼음 땡 놀이하듯이 몸도 제대로 날려보지 못했다.

 

너무나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경기였다. 팀이 아닌 그냥 축구하는 선수들처럼 움직였다. 상대의 역습이 있으면 총알같이 달려가 몸을 부딪치고, 안되면 반칙으로 끊고 경고도 불사하면서 저지하는게 정상일텐데 술래잡기 하는 것처럼 수비했다. 강현무는 상대의 슈팅 타이밍에 각을 좁히거나 예비 스텝도 밟지 못한 채 날아오는 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홈 경기임에도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역전 골을 향해 달리지도 못했다. 오범석의 패스 미스가 나오는 순간, 그냥 경기가 결정되어 버린 것처럼...

 

수요일 저녁, 들뜬 마음으로 찾은 스틸야드를 찾았다가 치열하게 순위 경쟁을 할 상대에게 홈에서 0대3으로 쳐발리는 축구를 보게 된 우리의 동지들은 집으로 가는 내내 드럽고 화딱지 나는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을 것 같다. 이럴 땐 차라리 집관이 낫다. 경기가 끝나면 채널만 돌려 버리면 되니까.... 

 

감독이 후지거나 밉상이면 욕이라도 할텐데, 어려운 집안 끌고 나가는 가장한테 할 소리도 아니고… 다음 경기는 좋아질거야, 이건 분명 일시적인 문제일꺼야, 울산에게 쳐발리지 않았음 된거지, 시즌 초반은 늘 이랬던 것 같아… 등등등의 이유와 변명을 찾으면서 나와 비슷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거라 생각된다.

 

 

 

문제는 수비의 스피드!

1대1 달리기하는 스피드가 아니라 상황상황에 대응하는 스피드가 작년보다 떨어진 것 같다. 패스 타이밍이 늦고 미스도 많다. 그리고, 상대의 압박에 우물쭈물하다가 면피성 백패스를 할 때가 많다.

 

서로 간격을 좁게 가져가면서 쉽게쉽게 패스하면서 강한 압박을 풀고 나오는 것이 포항 축구의 강점인데 그 부분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압박에 눌려서 볼 처리는 늦어지고 패스는 부정확해진다. 그리고, 우리 선수들 사이의 간격도 예전보다 넓다.

 

아쉽게도 오범석은 최영준이 보여줬던 활동량과 스피드에 턱없이 부족하다. 아마 이때문에 지난 네 경기에서 신광훈을 오범석의 자리로 보냈던 것 같다. 상대의 역습을 1차 저지하는 역할 만큼은 확실히 해줘야하고, 공을 소유했을 때는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무슨 버뮤다 삼각지도 아니고… 중앙 미드필더에게 공이 전달되는 순간 공도 여유도 찬스도 안개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오범석의 대안

당장은 신광훈을 돌려막는 것이 방법일테고 장기적으로는 이승모나 이수빈에게 꾸준히 기회를 주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다행히 활동량 많고 공을 자주 건드려주는 신진호가 함께하기 때문에 신진호가 휘젓고 다니는 틈만 잘 막아줘도 지금보다는 훨씬 안정감이 있을 것 같다. 심하게 말하면… 크게 바랄 것 없이 신진호 앞에서 뛰어 다닐 때 뒤에서 백업만 잘해줘도 한결 나을 것같다.

 

일단 그랜트가 부상에서 회복하기를 기다려보자. 개막전에서 갑작스럽게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기술과 센스, 공 연결이 매우 매끄러워보였다. 중앙 수비수로 영입한 것으로 아는데, 개막전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윙백으로도 안정적인 역할을 해 냈다.

 

파이팅이 좋은 권완규와 중앙 수비를 구성할 수도 있고, 지난 개막전처럼 그랜트에게 윙백을 넘겨주고 신광훈이 중앙 미드필더로 옮겨갈 수도 있다.

 

어쨌든! 현재 오범석의 스피드와 활동량으로는 안정적인 중앙 미드필드를 꾸릴 수 없을 것 같다. 수비는 헐거워지고 공격력은 분산되고 있으며 패스는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오범석 자리에 다른 대안을 세우든, 오범석이 커버하지 못하는 곳을 다른 포지션의 선수가 메워주는가 해야할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완전체가 아니다

제주와 수원 모두 최전방 공격수부터 시작하는 전방 압박이 매우 거센 팀이다. 7명의 선수가 하프라인 아래에 포진하고 3명의 최전방 수비수(?)가 위에서부터 막아서는 그림이다.

 

예전처럼 잔쯕 내려앉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방 높은 곳에서 치열하게 볼을 따내고, 그 순간 바로 빠른 역습을 하기 때문에 전방압박에 밀리게 되면 경기가 풀릴 수가 없다.

 

전북이나 울산만 아니면 좀 더 수월하게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까? 제주와 수원에게 한 방씩 먹었으면 우선 반성을 좀 해야한다. 깨끗한 유니폼으로 부상도 없고 옐로 카드도 없이 경기를 마치겠다는 생각은 버리자.

 

몸과 몸을 부딪치고, 상대보다 한 발 빨리 뛰고, 발을 좀 더 멀리 뻗고,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이라도 더 높이 뛰려고 애쓰는… 그런 축구를 해야한다. 공이 떨어지는 곳이 어디든지 우리 선수가 먼저 공을 차지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자랑하는 우이한 패스 워크와 공간 쪼개기도 나오는 것이다.

 

우리 제법 익숙하지 않나? 어려운 상황이지만 헤쳐 나가는 맛이 있고, 고비를 넘으면서 팀은 더욱 단단해진다. 지금은 더욱 치열하고 간절하게 집중해야 할 것같다.

 

 

그래도, 고영준은 꾸준히 보인다

짧은 시간이지만 계속해서 출전 기회를 갖고 있다. 게다가 매 경기 한두번은 슈팅이든 돌파든 찌릿한 순간을 만들어 낸다. 아마 당분간은 이런식으로 계속 기용이 될 것 같다. 때로는 경기를 뒤집기 위한 카드로, 또 때로는 헐거워진 상대를 완전히 눕혀 버리기 위한 카드로.

 

뛰는 시간이 누적되면서 공격 포인트도 나오고 분명히 플레이도 한 층 성장할 것이다. 이런 선수를 지켜보는 것은 늘 즐겁다. 다음 경기에서도, 그리고 그 다음 경기에서도 고영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디가서 라이벌로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우리가 그에 걸맞는 위상을 갖춰야 한다. 울산이 우리보다 위에 있다. 수원, 서울, 성남까지… 꼴보기 싫은 모든 팀들이 우리 위에 있다. 자칫 삐끗하면 아랫물에서 놀 수도 있다. 정신 바짝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