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항:인천 – 잇몸으로도 개막전 승

2021. 3. 1. 16:57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 포항:인천, 2021.02.29, K리그1 Round 1

 

작년 한 해는 단 한 번의 직관도 없었다. 서포터들은 직관에 참 집착한다. 직관을 해야 뭔가 서포터 같고, 홈 직관은 당연한거고 원정직관까지 따라가 줘야 좀 먹어주기도한다. 직관 없이 TV만으로 즐기는 너는 그냥 팬이고, 현장에서 머릿수 한 명 보태는 나는 서포터라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괜히 뭔가 내 책임을 다하지 않는 느낌마져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 서포터들 사이에 직관은 일종의 작은 부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마치 조상심 묘에 벌초하는 것처럼 말이다.

 

개막전 & 홈경기, 무조건 직관이다

무엇보다도 코로나로 보낸 지난 1년 동안 현장이 너무 그리웠다. 탁 트인 경기장과 초록 잔디가 주는 청량감, 현장의 소란과 소음, 팽팽하게 당기는 긴장감, 환호와 욕지거리, 약속 없이 만나는 오랜 시간의 동지들… 더구나 포항 스틸러스는 2020 시즌을 꽤 괜찮게 보냈다. 우승도 못했고 별다른 타이틀을 거머쥔 것도 없지만, 간만에 우리에게 포항 축구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었다. 김기동은 멋진 스타일의 축구를 보여줬고, K리그1의 전 구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고, 2019년처럼 울산을 한 번 개패듯 패주기도 했다. 그게 뭐 대단하냐고? 그런 것 없이 1년을 보내는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게다가 그 반대로 울산에게 쥐어 터지고 1부와 2부의 갈림길에서 헤메면서 이팀 저팀에 승점 자판기 노릇할 때의 거지같은 1년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

 

마음을 벼르고 있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리그 개막 자체가 불문명했지만 일정대로 개막하게 되었다. 게다가, 비록 입장제한이 있긴하지만 관중 입장도 일부 허락이 된다. 무조건 가기로! 달력에 동그라미!

 

새 시즌과 함께 이제 대학생이 될 아들램과 동행하는 포항 여행. 레플리카에 머플러, 모자와 마스크까지 검빨 풀셋 장착. 8시 반 성남 출발, 12시 포항 도착. 점심은 미리 준비한 마눌표 도시락으로 해결. 이렇게 시즌이 시작되는거야!

 

 

포항 서포터스 유스 출신의 아들램^^

 

 

코로나 시대의 경기장 – 마이너스 운영중

작년에 이미 코로나 시대의 경기장 운영 경험이 쌓인 탓인지 상당히 능숙하게 관중 관리를 하는 것 같았다. 모든 곳, 모든 절차에서 거리두기와 방역 체계가 적용되었고 현장 직원과 관중들 모두 매우 익숙하고 일사분란한 모습이었다. 대략 다음과 같이 방역체계 운영중.

  • 현장 티켓판매 없음 (온라인 예매 후 현장에서 입장권 교환)
  • 팬샵 입장인원 제한 (전담 스탭이 입장객 관리)
  • 모든 줄서기에는 거리두기 적용
  • 경기장 체크인 (제시된 번호로 전화걸면 체크인 인증문자 전송. 입장시 확인)
  • 입장시 발열체크, 마스크 필수, 식음료 반입 금지 (단, 경기장내 매점에서 음료는 판매)
  • 경기장 좌석 띄어앉기 및 좌석이동 금지, 복도나 펜스에 무리지어 관전하는거 금지, 함성/합창 금지 (현장 직원이 관중석 돌아다니며 캠페인 및 지속적인 체크)

아쉬운 점 – 화장실에서의 거리두기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하프타임에 우르르 화장실 몰려가는 걸 생각하면, 화장실에서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으면 나머지 방역 아무리 잘해도 도루묵 될 것 같다. 여자 화장실은 어차피 칸칸 구조라서 자연스럽게 한 명 들어오면 한 명 나가는 식으로 줄서기가 잘 되는데, 남자 화장실은 들락날락 안에도 촘촘 ㅠ.ㅠ

 

결국… 관중은 3분의 1밖에 받지 못하는데 현장 직원과 지원 시스템을 위한 비용은 더 들어가는 셈이니 구단 입장에서는 비용은 더 들어가는데 수입은 줄어든 상황이다. 참아가면서, 손해도 보면서, 하지만 또 할 것들은 하면서 이렇게 다 같이 코로나 시대를 꾸역꾸역 살고있다. 그리고, 이 모든 까다로운 제한사항과 절차 속에서도 팬들은 기어이 축구를 보고야만다!

 

 

 

 

아직은 잇몸, 하지만 괜찮은 포항

전반 아길레르에게 선취골 허용했으나 후반에 신광훈, 송민규의 골로 2대1 역전승. 홈 개막전을 산뜻하게 이기면서 출발한 것은 매우 기분좋은 일이다. 게다가 경기 내용에서도 인천보다 훨씬 짜임새있고 다양한 공격 패턴을 보여줬다. 끝까지 좀 더 완성도 높은 마무리를 하기 위한 선수들의 자세도 인천보다 나았다. 우리는 인천보다 더 많은 득점 찬스를 만들었고 찬스를 만드는 과정도 다양했다. 또 여러 선수에게 득점 찬스가 있었다. 아깝게 놓친 찬스와 골 포스트의 선방이 없었다면 더 많은 득점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모습이 지난 시즌 우리 포항 팬들을 사로잡았지! 빠르게 느리게, 측면으로 중앙으로, 전후좌우 넓히고 좁히고, 땅볼로 찌르고 크로스로 넘기는게 상황상황에 따라 다채롭고 빠르게 펼쳐지는 다이내믹 다이내믹 수퍼다이내믹한 축구…(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복귀한 신광훈과 신진호의 포지션은 확실히 안정감이 있었다. 신광훈-팔라시오스, 강상우-송민규로 구성된 좌우 측면도 여전히 위협적이다. 김광석이 빠진 중앙수비도 생각보다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경기 후에 하창래가 입대한 후에도 안정감이 유지되기를 바래본다.

 

하지만, 무엇보다 일류첸코와 팔로세비치의 빈자리가 크다. 새로 합류할 외국인 선수들(크베시치, 타쉬치)이 제 몫을 해준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지지만, 그만큼 작년에 두 선수의 활약과 인상이 크게 남은 탓이겠지… 특히, 스스로 득점도 많이하면서 일류첸코와 팔라시오스의 플레이까지 살려주었던 팔로세비치의 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먼저 열린 전북:서울의 경기에서 서울은 왠지 팔로세비치를 50% 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디 가로 검빨 입던 선수가 세로 검빨 입으면 1년을 죽쑨다는 전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강상우 없었으면 어쩔!

사실 경기가 쉽게 풀린 것은 아니다. 오범석이 교체되어 나갔고 팔로세비치의 빈자리가 이승모만으로는 제대로 채워지지 않았다. 만약 강상우가 없었다면 굉장히 힘들게 굴러갈뻔한 경기였다. 윙백 강상우는 미드필더로, 나중에는 거의 중앙 공격수 역할까지 책임졌다. 그리고, 교체 투입되었던 그랜트가 부상으로 나가자 다시 원래 포지션인 윙백으로 복귀해서 마무리!

 

한 경기에서 거의 1인 3역을 해낸 셈이다. 멋진 골을 기록한 송민규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됐지만, 강상우가 없었으면 경기가 매우 어렵게 흘러갔을 것같다. 신광훈과 신진호의 복귀도 큰 역할을 했다. 아직은 팀에 구멍이 좀 많을 시기인데, 역시 베테랑 강상우 신광훈 신진호가 시즌 초반의 구멍을 잘 메워주는 것같다.

 

김기동 감독의 과감하고 빠른 전술 변경도 재밌었다. 90분 동안 중앙 공격수를 소화한 선수는 이현일-임상협-팔라시오스-고영준-강상우-이호재까지 6명이었고 팔라시오스, 강상우, 신광훈의 포지션 변경이 있었다. 특히, 후반 중반 이후 강상우와 고영준을 공격라인에 배치하고 송민규와 함께 빠르고 돌파력 좋은 세 선수가 인천의 수비를 뚫고 들어가는 모습은 전포항만이 펼칠 수 있는 최강의 변형전술! 발이 느리고 간격이 넓어진 인천의 수비는 빠른 공격을 감당하기 버거워 보였다. 그리고, 이런 전술을 가능하게 한 김기동 아바타 강상우! 제발 그 사랑 변치마오~~

 

 

 

 

새로운 얼굴들

이호재 – 좋은 골 찬스를 놓쳐버린게 너무 안타깝지만 매우 강렬한 데뷔전. 수준급의 힘, 높이, 스피드를 기본장착했고 볼 간수도 잘한다. 데뷔전임에도 침착하고 잔 실수가 없었다. 특히, 전방에서 상대가 공격 전환할 때 바로 체크하면서 공을 따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랜트의 부상으로 느닷없이 데뷔했는데, 왠지 고영준과 함께 반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유용한 카드가 될 것 같다. 선발출전한 이현일보다 느닷없이 출전한 이호재가 더 임팩트 강함! 잘하면 영밀만 홀란드(Erling Braut Håland)가 될지도 모르겠다. ^^

 

그랜트 – 중앙 수비로 알고 있었는데 왼쪽 측면 수비로 출전. 키는 크지만 피지컬 보다는 기술로 수비하는 스타일. 볼 처리가 매우 깔끔하고 안정적이며 볼 간수 능력, 패싱 능력도 좋아보임. 상황에 따라 포지션이 좀 더 공격쪽으로 올라올수도 있을거 같은데… 경기 막판 갑작스럽게 부상으로 교체아웃됐는데, 부상 후에 벤치 분위기로 봐서는 생각보다 큰 부상인 것같기도 하다. (아니면, 부상에 졸라 민감하고 상당히 까칠한 스타일의 선수일수도 있음.^^)

 

근데, 의외...

스틸야드 개막전이면 꼭 있어야 할 하프타임 해병 의장대 시범이 없었다. 무슨 군사독재 냉전 시절의 유물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 해병대는 포항과 포항스틸러스의 한 부분이 된지 오래이며 홈 개막전은 어떤 형태로든 해병대와 함께 했었지... 내년 홈 개막전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멋진 해병 의장대를 볼 수 있기를!

 

“우리는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

김기동 감독의 말이다. 더 좋아질 일만 남은 희망적이고 설레이는 시즌 초반이기도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불안정한 시기이기도하다. 새로운 선수들이 제 몫을 하기까지 잘 버텨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예기치 못한 여러번의 선수 교체와 전술변화가 있었지만 그 때마다 흔들림 없는 조직력과 감독이 원하는 패턴이 펼쳐졌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 시작하는 시즌이지만 그리 나쁜것 같지 않지는 않다. 더 좋아질 일만 남았겠지?

 

울산은 개막 첫경기부터 강원을 5대0으로 발라버렸다. 산뜻하고 완벽한 출발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더 나빠질 일만 남은 건가? 그런거겠지?

 

이렇게 또 한 시즌이 시작되는구나~~ 신난다! ^_^



1라운드 현재 3위. 지난 시즌 1, 2, 3가 같이 출발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울산이 우리보다 위에서 출발하는군...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