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13. 15:34ㆍ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2018.03.10 (토) – 콘사로레 삿포로 : 시미즈 S-Puls, 삿포로 돔
콘사도레 삿포로의 2018 J1리그 홈 개막전
“xxx가 삿포로로 발령났대~”
세상에 놀러 갈 핑계가 참 많기도 합니다. 일본사는 지인이 도쿄에서 삿포로로 발령났다고 삿포로 놀러 가자는 황당한 제안. 자기는 이미 숙소까지 예약했으니 비행기표만 끊으면 된다고 꼬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꼬시면 바로 덥석 물어버리는 나!
삿포로에는 축구팬들에게 매력적인 것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삿포로 맥주, 그리고 또 하나는 축구와 야구를 함께 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경기장인 삿포로 돔 (Sapporo Dome). 마침 일정을 맞춰보니 3월 10일(토) 콘사도레 삿포로의 홈 개막전 날짜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콘사도레 삿포로는 홋카이도 삿포로시를 연고지로하는 J리그 팀입니다. 성적은 대략 리그 중하위권으로 2017년에 J1 리그로 승격되었습니다.)
부럽다, 경기장!
처음 경험하는 돔 경기장. 비싼만큼 좋은 경기장입니다. 추운 날씨, 경기장 밖은 온통 눈이 쌓여있었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로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시설 훌륭하고 관중석에서 바라보는 시야도 좋았습니다. 음향시설과 대형 스크린 모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습니다. 경기장 곳곳에서 손쉽게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삿포로돔 자체가 작은 스포츠 테마마크 같이 운영되는 것 같더라구요.
게다가 아이를 동반한 가족을 위해 “Kids Park”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단위 팬들이 아주 많았고, 특히 팀 레플리카를 함께 갖춰입는 나이 지긋한 노년의 부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만족감 하나… 제대로 갖춘 흡연실! 보통은 흡연실이 따로 없어서 관중석 바깥족 야외 통로 한 구석에서 담배를 피는데, 돔 경기장(실내 경기장이죠) 성격상 그런 흡연지역이 있을리 없죠. 그래서 별도의 흡연실을 만들어 놓았는데, 오히려 비흡연자들에게 간접흡연의 피해가 가지 않아서 훨씬 좋을 것 같네요. 흡연자는 흡연자대로 눈치 안보고 뻑뻑뻑~
경기 내용은 뭐…
“위 아~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를 외치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선수입장, 그리고 서포터스의 카드섹션으로 개막전 분위기 후끈! 개막전답게 준비를 참 잘했네요!
개막전 기선제압! 선수입장과 함께 펼쳐진서포터스의 카드섹션
경기 수준은 K리그1의 중하위권 팀간 경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홈 팀이 좀 더 공격적이고 원정팀은 선수비 후 역습을 주요 작전으로 경기를 진행하는 모습도 비슷했구요. 삿포로에는 구성윤(GK), 김민태(DF) 선수가 소속되어 있는데, 두 선수 모두 선발출전해서 풀 타임 활약했습니다. 시미즈에는 정대세 선수가 있죠. 지난 시즌 막판에 부상을 당했었는데, 그 때문인지 후반에 교체로 투입되었습니다.
경기 결과는 1:3, 원정팀 시미즈가 이겼습니다. 삿포로가 공격적이긴 했지만 세밀함이 좀 딸리더군요. 시미즈에 비해 Long Ball 위주의 전략을 썼는데, 전체적으로 삿포로의 점유율이 높은 경기였지만 찬스에서의 세밀함과 결정력은 시미즈가 더 좋았습니다. 역시 축구는 확실한 마무리 능력이 있는 팀이 내용에서는 밀리더라도 승리를 가져가는군요.
그리고, 삿포로 팀 선수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오노 신지 선수도 있습니다. 네, 바로 그 오노 신지~ 이동국과 동갑! 노장 선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노 신지인데… 1:3 정도로 끌려가면 한 번쯤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끝내 볼 수 없었습니다. 이동국은 아직 펄펄하게 뛰는데… ^^
원정팀이 득점하면 철저히 쌩깐다!
물론 우리 K리그에서도 홈 팀의 득점과 원정팀의 득점 상황은 천지차이가 납니다만… 삿포로 경기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심하게 원정팀을 쌩까네요^^
당연히 득점장면 리플레이 아예 안보여줍니다. 서포터스와 관중석에서는 탄식의 소리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아나운서는 차분하고 짧게 득점자만 언급합니다. 서포터스는 그냥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자기들의 노래를 부르고 원정팀의 셀레브레이션은 묵음 처리된것처럼 슬쩍 지나갑니다.
세상에나… 이렇게까지 쌩까다니… 아니, 저는 오히려 탄식조차 하지 않는 관중들이 더 신기했습니다. 우리나라 경기장에서는 상대편이 득점하면 탄식의 한숨이 흘러나오고 서포터스도 잠시 멘탈이 다운되는데 말입니다.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 특유의 모습일까요? 그런거보면 우리나라 관중들은 감정 표현을 참 격하게 하는 편인가 봅니다. 저는 우리나라 특유의 감정 100% 이입되는 관중석 분위기가 훨씬 편하고 좋습니다. ^^
이것은 축구 콘서트!
축구 경기는 90분 경기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경기 시작하기 두 시간전부터 관중들이 슬슬 모이기 시작하고, 서포터스는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예열을 시작합니다. 관중들은 경기장의 스낵바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먹고 여러 차례 맥주잔이 오갑니다. 경기 한시간쯤 전에는 선수들이 경기장에 등장하여 워밍업을 시작하고 서포터스의 함성도 시작되지요. 그리고, 댄싱 팀이 등장하고 경품을 관중석으로 쏘아 보내는 홈 팀의 팬 서비스와 이벤트가 잠시 벌어집니다.
경기 시작 10분전 쯤에는 양팀 선수들이 소개됩니다. 특히, 홈 팀 선수를 소개할 때는 우렁찬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멘트와 관중들이 리액션이 합쳐져서 경기장 분위기 후끈 달아 오르죠. 그리고, 입장 음악과 장내 아나운서의 리드에 맞춰 선수들이 입장하고, 전 관중이 기립해서 머플러를 펼쳐 선수들을 환영하고, 서포터스는 이제부터 100% 풀 파워로 서포팅을 시작합니다.
90분의 경기가 끝난 후… 개막전에서 홈 팀이 패했지만 마무리는 확실하게 합니다.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선수들은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면서 관중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맨 마지막에는 서포터스 앞에서 서로를 위로하면서 함께 격려하고 경기를 마칩니다.
물론 우리 K리그 경기장에서 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경기가 진행되지만, 과정 하나하나의 디테일은 역시 J리그가 앞서는 것 같습니다. 깔끔하고 완벽한 기획은 구단에서만 준비한 것이 아니라, 선수들과 팬들이 오랜 시간 서로 익숙하게 약속한 시나리오를 공유하듯이 잘 구성된 느낌이었습니다.
본부석 맞은편의 2층 구역. 우리 K리그로치면 2등석 위치에 해당. 1인당 3천 6백엔. 단순히 90분간의 축구경기를 본다면 결코 싼 가격은 아닙니다. 유럽의 리그처럼 월드 스타들이 즐비한 경기도 아니었구요. 하지만… 90분간의 축구경기가 아니라 180분짜리 축구 콘서트 티켓으로는 지불할만한 가치가 있는 티켓이었습니다.
훌륭한 시설, 분위기, 서비스. 그리고 90분의 축구경기! 토요일 저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콘서트였습니다.
2018년, J리그는 180분짜리 축구 콘서트를 팔고 있는데 K리그는 지금도 90분짜리 축구 경기를 팔고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선은 90분짜리 경기를 잘 만들고, 그 다음에 120분, 다시 150분짜와 180분 짜리 경기로 만들어가야겠죠. 아쉽지만 이게 현실이네요. 아쉽지만…. 부럽네요… ㅠ.ㅠ
그래도 나에겐 우주 최강 포항 스틸러스가 있다! 다 뎀벼~~! ㅎㅎ
그냥 축구보고 먹고 마시는 2박 3일이었네요~
금요일 밤 도착 : 먹고 마시고
토요일 아침 : 숙소 주변 산책
토요일 낮 : 점심식사, 커피 한 잔, 시내 한바퀴, 라면 한그릇
토요일 저녁 : 삿포로 돔에서 축구보고, 다시 먹고 마시고
일요일 아침 : 귀국 비행기
먹은 것 : 징기스칸 구이요리, 초밥, 게요리, 라면, 그리고 에브리 타임 삿포로 생맥주 벌컥벌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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