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팬의 입장에서 본 수원:서울 경기

2011. 10. 4. 12:56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K-리그 순위표에서 포항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는 두 팀의 경기이다 보니
포항 팬의 입장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포항 입장에서는 수원이 서울을 잡아서 2-3위 간의 승점 차이를 유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결국, 포항 팬의 바램 대로 두 팀과 포항의 승점차는 7점으로 유지가 됐고
포항은 남은 3경기에서 1승만 올리면 챔피언스리그 진출권과 리그 2위를 확보하게 됩니다.
(골 득실차를 고려할 때, 2무만 올려도 되겠지요.)

서울의 입장에서는 3위가 문제가 아니라 2위 자리를 다시 찾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원을 잡아야하는 상황이었고
수원은 2위를 노리기 보다는 3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절호의 찬스였지요.
수원과 서울 입장에서는 이 한 경기에 시즌 막판의 농사가 결정된다고 할만큼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명승부의 모든 요소를 보여준 경기가 아니었나 생각되네요.
1대0 박빙의 승부, 무시무시한 빅버드 홈 파워, 거기에 꿇리지 않는 원정팀 서포터스의 열정,
골을 넣은 스테보가 경고를 감수하면서까지 옷을 벗어 던질 수 밖에 없는 만원 관중의 열광,
그리고, 오심과 판정 논란의 '꺼리'까지 제공해 주었지요. ^^

골이 많이 많이 터지고, 그림 같은 득점 장면이 나온다고 명승부가 아닙니다.
단 한 골이 터졌고, 그 골 조차도 오심 논란이 있는 골이었지만...
경기의 중요성, 선수들의 투지, 관중들의 열정이 응집되면 그것 자체로 명승부지요.

서울 입장에서는 심판의 오심이 억울하겠지만...
구경꾼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서울이 경기의 일부로 감당해야 할 듯 하네요.
그 오심이 경기 자체를 훼손하기에는 다른 승부의 요소들이 너무나 풍부한 경기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서울 팬들의 가슴에서는 피눈물이 흐를만한 일이겠지만요...)

때로는 이렇게 명백한 오심조차 경기의 일부로 묻혀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그 만큼 경기의 내용이 충실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매우 아쉽겠지만... 그 정도의 명승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서울에 마가 끼었다고 볼 수 밖에 없겠네요.

수원은 최강 전북과의 경기가 바로 코 앞에 닥쳤다는 것과 챔피언스 리그를 병행한다는 것이 부담일테고
서울은 이번 수원전 패배의 후유증을 털어 버리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습니다.
다행히 서울은 앞으로 2주간 충분한 휴식기를 가질테니 크게 문제되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전북과 포항이 1위와 2위를 굳힐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3위 싸움도 서울과 수원으로 거의 좁혀진 상황.
포항은 챔피언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서 수원이나 서울을 만나게 될테고...

포항 입장에서는 일단 홈에서 상대방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긴 하겠지만
수원이나 서울은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껄끄러운 팀입니다.
서울과 상대할 때는 데얀 보다 더 많은 골을 넣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고
수원과 상대할 때는 힘겨운 미드필드 싸움과 수비벽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요.

이번 수원:서울 경기...
승점 싸움에서는 포항이 비교적 여유있게 앞서는 결과를 얻었지만
1위 전북뿐만 아니라, 3위를 놓고 싸우는 두 팀도
포항에게는 너무나 위협적인 전력을 가진 최고의 팀들이라는 점을 새삼 느꼈습니다.

서울이나 수원을 홈에서 기다린다는 점이 포항으로서는 정말 소중합니다.
백중세의 전력을 가진 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맞대결을 펼치는 단판 승부이기 때문에
홈 경기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포항 스틸러스의 팬으로 20년을 살았지만...
'리그 2위'를 확보한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게 느껴진 적도 없었던거 같네요. ^^
 
마찬가지 이유로... 서울과 수원도 같은 입장에서 끝까지 긴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두 팀이 다시 맞붙을 때, 상암에서 경기가 열린다면 그 때는 또 다른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을테니까요.

이래저래... 올 시즌의 K-리그 챔피언쉽은 굉장히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전북-포항-수원-서울.
모두 화끈한 전력과 막강한 홈 파워, 폭 넓은 팬들을 함께 갖춘 팀들입니다.

K-리그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멋진 경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