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의 팀, 희망적이지 않나요?

2011. 9. 22. 22:54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오만과의 올림픽 예선에서 2대0 승리를 했지만 대체적으로 문제점을 많이 지적하는 분위기입니다.
지적하고 있는 문제점들은 모두 맞는 말이지요.
최전방에서의 해결능력 부족,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수비라인의 빵꾸, 후반 막판으로 가면서 압박능력이 떨어지는 모습, 전반 초반의 긴장과 밋밋함, 알맹이 선수들의 부재... 등등등

그러나, 저는 감독으로서의 홍명보와 팀으로서의 모습에는 어느 감독과 팀 보다도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두 가지 유형의 감독을 한 번 가정해 보겠습니다.

첫번째 유형은 선수들 중심으로 팀의 전술을 극대화하는 감독입니다.
두번째 유형은 감독이 추구하는 팀을 먼저 만든 후에 선수들을 바꾸거나 보강하는 감독.

이 두 유형은 감독의 성향이기도하지만 주어진 환경의 영향이 더 큽니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이렇게 둘로 나눌 수도 없겠지요.
적절한 절충점을 찾는 것이 당연히 현명한 방법일거구요.

홍명보 감독이 처한 상황은 선택의 여지 없이 두번째 유형의 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가 원하는 선수를 모두 뽑을 수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 뽑기가 여의치 않고, A-대표팀의 일정에 따라 또 몇명의 선수를 양보해야하고...
이런 상황에서 홍명보 감독 입장에서는 선수 중심의 팀이 아닌, 조직력 위주의 팀을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홍명보 감독이 조직력 위주의 팀을 잘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팀 전력이 어느 정도 잘 갖추어 질 것인지를 한 번 살펴봐야겠지요.

....

제가 홍명보 감독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는
일찌감치 선수 선발 위주의 전략이 아닌, 훈련 위주의 팀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비록 긴 소집기간이 주어지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홍명보 감독은 처음부터 훈련에 함께할 수 없는 선수는 선발하지 않는 길을 택했습니다.
해외파가 여의치 않으면 아예 국내파로 구성하고, 거기서도 빠져나가는 선수가 있으면 대학 선수들로 팀을 구성했습니다.
울며 겨자먹기의 심정일수도 있겠지만...
자신과 함께 훈련을 통해서 팀을 만들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팀에 아예 부르지 않는 것이죠.
비행기 타고 날아와서 컨디션 조절을 한 후, 미리 보장된 포지션에 배치되는 선수는 없다는 선언!

약간 무모하고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하지요.
과감하고 단호하지만 지금 당장은 위험해 보이기도 하구요.
큰 무대에서 뛰고, 큰 경기 경험이 있는 한 명의 선수가 얼마나 큰 보탬이 되는지는 자명하니까요.

하지만, 그런 계산조차 없을 정도로 무모한 홍명보는 아닐겁니다.
2002년 히딩크의 팀은 어땠는지요?
황선홍과 홍명보가 처음부터 팀의 주축이었던가요?
황선홍은 부상으로 초기 멤버가 아니었고 홍명보는 히딩크로부터 '경기 출전하지 않더라도 팀에 남을 수 있겠느냐?'는 존심 상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비교적 넉넉한 훈련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히딩크가 선택한 방법 역시
애초부터 자신과 함께 훈련이 가능한 선수들로 기본적인 레벨 이상의 팀을 먼저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의 눈높이를 채워준 선수들에게 먼저 기회를 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팀 위에 숟가락 얹기를 했지요. ^^

내가 만든 팀은 이렇다.
새로 합류하는 너희들은 지금 이 선수들보다 나은 모습으로 팀에 보탬이 되어야한다.
너의 플레이에 팀을 맞추지 않는다.
너의 경쟁 포지션에 있는 다른 선수의 자리에서 그 이상의 모습으로 나의 팀 플레이를 해야할거다.

이렇게 팀의 뼈대가 강건하게 만들어진 후에 숟가락을 얹으면
그 팀은 정말 강한 팀이 되겠지요.
맨 마지막 팀의 구성 멤버는 처음 시작할때와 많이 달라지겠지만, 살아 남은 선수도 새로 들어온 선수도
서로 완벽한 팀 조직력을 구사할 수 있을것이며, 감독의 미션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정예부대일 것입니다.

...

홍명보 감독에게는 불행히도 2002년의 히딩크와 같이 충분한 훈련 시간이 주어지지는 못하는 상황입니다.
어쩔 수 없이 팀 조직력 위주로 전력을 만들어야하는 상황이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해 온 올림픽의 모습은 흔들림 없이 전진하는 모습이 아닌지요?

오만과의 경기에서 비록 몇 가지 약점을 노출하긴 했지만
후반 25분 경까지 선수들은 팀의 전형을 매우 충실하게 유지했습니다.
몇 번의 기습적인 위기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페널티 에리어 근처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마지막 마무리가 좀 아쉬웠지만 중앙을 파고드는 움직임, 측면에서의 연결, 때로는 긴 스루패스까지 상황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공격 패턴을 보여줬구요.
막판에 조금 힘이 딸렸지만 공을 중심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차단하는 팀 전체의 움직임도 흐트러짐 없이 유지했습니다.

요약하자면, 기술적인 완성도와 경험, 심리적인 자신감은 부족했을지언정
감독이 만들고자하는 팀의 색깔만큼은 선수들이 최대한 표현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전 경기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였고 주력 멤버들이 바뀐 상황에서도 승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구자철, 기성용, 이청용, 지동원이 없는 팀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빈자리가 보이기는 했지만
그들이 있었으면 어느 정도의 내용에 어느 정도의 스코어가 나왔을까요?
경기 직전에 합류한 그들이 주축을 이루는 팀이었다면, 나머지 선수들과 함께 지금과 같은 조직력을 보여주었을까요?

지금 당장은 그 선수들의 빈자리가 클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없는 상태에서 팀은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그 일을 홍명보 감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해내고 있는 것도 분명하고요.

올림픽 예선을 그리 쉽게 통과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지요.
여전히 감독이 원하는 훈련 시간을 확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테구요.

수 많은 경기 경험, 그가 겪었던 많은 감독들, 그리고 선수 시절부터 보여줬던 전략가적인 두되와 냉정함.
저는 홍명보 감독의 역량이라면 올림픽 예선에서 고꾸라지는 팀을 만들지는 않을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예선을 통과한 후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올겁니다.
부족했던 포지션의 선수를 바꿔치기하는 것이 아니라
업그레이드 된 팀, 그리고 그 팀이 요구하는 업그레이된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이 보강될 것입니다.
훈련할 수 있는 좀 더 긴 시간도 주어질테고 양질의 평가전 기회도 주어지겠지요.

이번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올라간 홍명보의 팀...
역대 최강의 올림픽팀과 국제적으로 성공한 감독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려보다는 너무나도 기대가 되는 팀이 아닌지요?



PS) MB라고 같은 MB가 아닙니다. ^^
홍MB야말로 우리의 축구 대통령!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