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빠른 포항, 레모스 감독 경질

2010. 5. 11. 00:55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포항 스틸러스가 전격적으로 레모스 감독을 경질하는군요.
포항 팬으로서는 아쉽습니다.
지금까지 36년의 포항 스틸러스 역사에서 감독이 중도하차한 경우는 박성화 감독에 이어 레모스 감독이 두번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번 신임한 감독은 최대한 그의 임기까지 믿고 맡기는 것이 포항의 우직한 전통인데...
이제는 그런 우직한 전통은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한 번 벌어지는 일은 그 한 번 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 벌이진 일은 언제든 더 많이 생길 수 있는 법이니까요.

...

지금처럼 성적부진에 팀의 경기력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술이나 전략을 말하기 이전에, 훈련이 안된 상황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프로축구 팀이라면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져야할 기본적인 요소가 지금의 포항 스틸러스에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자... 이럴 때 구단 경영진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딱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1) 완전힌 신뢰로 믿고 맏긴다. 그리고,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2) 깨긋하게 접는다.

위의 1) 또는 2)를 빠르게 결정만 내리면 문제 없다고 봅니다.
제일 나쁜 것이 전적으로 믿지도 못하고, 그러면서 감독을 교체하지는 않은 채 짤라 낼 명분이나 구실만 찾으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지요. 그 사이에 팀은 병들어가고 팬들은 외면하고...

포항은 2번을 택했습니다.
1번이 맞는지 2번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1번을 택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감독에게 확실히 힘을 실어주고, 감독이 진단하는 팀의 문제점 중에서 구단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죠. 심지어, 감독과 코치가 궁합이 맞지 않으면 코치를 경질하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포항 스틸러스의 결단에서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미지근하게 질질 끌지 않고 빠르고 과감하게 판단을 내렸다는 점입니다.
레모스 감독을 선택한 구단 경영진 자신들의 실수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텐데...
그걸 깨끗하게 감수하고, 스스로 잘못된 결정임을 인정하고, 바로 행동에 옮긴 부분은 구단의 힘과 의지가 잘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레모스 감독이 구단에 신뢰를 심어주지 못했다는 말이니까요.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반발에 의한 감독 경질은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선수들이나 코칭 스태프에서 감독을 신뢰하지 못해서 경질되었다면...
그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얼핏 보면... 아래로부터의 의견수렴이 잘 된 민주적인 판단 같지만...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하는 스포츠 팀의 특성상, 아래로부터의 경질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지요.
감독이 아무리 못났다 하더라도, 그런식으로 의견이 모아져서 감독경질이라는 결과를 나았다면 그 팀은 절대로 단합된 팀 파워를 내지 못합니다.
잘 된 결정이든, 잘못된 결정이든... 당연히 구단 운영의 책임을 가지는 의사결정 담당자들의 판단이어야하지요.
상당히 신속하게 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다행히도 제가 우려하는 바와 같은 아래로부터의 반발에 의한 감독 경질은 아니었다고 생각되는군요.

...

차기 감독이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따라 아마도 대대적인 변화가 발생할 듯 합니다.
감독 경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코칭 스태프까지도 재구성되는 큰 변화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당분간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력은 예측불허 상태로 빠질 수도 있고요.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든... 박창현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키든...
감독 경질에 대해 빠른 의사결정이 내려진 만큼, 후속 조치도 더욱 빠르게 이루어져야 하겠지요.
칼에 피를 묻힌 이상,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할테니까요.

...

레모스 감독... 너무 아쉽습니다.
성적여하를 떠나서 제대로 자신의 축구를 심어 주었다면, 파리아스의 축구에 자신의 색깔을 한 번 더 입혀 줬다면...
포항은 정말 K- 리그에서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지는 포항 특유의 축구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레모스의 실패... 결국은 파리아스가 구축한 포항 스타일의 축구가 끝내는 완성되지 못하고 허물어진 채...
다시 새로운 포항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5년에 걸쳐 다져온 포항의 축구가 반년만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원통합니다.
레모스의 말처럼... 정말 아름다운 축구를 포항이 만들어 낼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이번 감독 경질은 감독 한명을 빠구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차기 감독을 누구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지난 5년간 포항 스틸러스의 축구로 구축해온 것을 허물어 버리는 손실까지도 감당해야 할 지 모릅니다....

잘못하면... 1992년 우승 이후 15년간 어둠 속에서 몸부림쳤던 것처럼
다시 그와 같은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빠른 의사결정을 내린 만큼, 부디 차기 감독을 선임함에 있어서 이번 실패를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좋은 결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