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포항 스틸러스는 우승 피로감과 싸우는 중

2010. 4. 21. 12:53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최근 포항의 경기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렇고, 또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보는 눈도 그렇고...

일단, 경기력은 좋습니다. 내용도 좋구요.
문제가 나타나는 부분이 몇 개 있는데...
하나는 마지막 마무리가 약한 것,
둘째는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력 저하,
셋째는 최근 들어 선수들이 평상심을 잃은 모습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의 근원은 '우승 피로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작년 한 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클럽 월드컵 3위라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리그 컵 대회도 우승했습니다.
비록 K-리그 챔프와 FA컵은 놓쳤지만, 우승팀에 못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많은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 마디로... 최고의 한 시즌을 보냈지요.

올해는 그 피로감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아마도 당분간 쉽게 헤어나지 못할 듯합니다.

에너지 방전 증후군

작년 한 해 동안 수 많은 경기를 치렀습니다. 해외 원정도 많았습니다.
경기력이 좋았던 탓에 토너먼트나 플레이오프에서도 초기에 탈락하는 일 없이
참 많은 경기를 치렀지요.
많은 경기를 치르는 만큼, 선수들의 자신감과 경험, 조직력은 몰라보게 향상되었지만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즌을 마친 후에 파리아스 감독의 갑작스런 이탈 문제로
팀의 리듬과 구심점이 흐트러지고, 동계 훈련에도 차질을 빚게 됩니다.
또한 몇몇 선수들은 작년의 활약에 힘입서 대표팀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지만
그 만큼 팀 훈련에서 빠져야 했고, 휴식의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체력 훈련을 제대로 못한 것이 아니라, 훈련에 앞서 필요한...
특히, 작년 같은 시즌을 보낸 포항에게 꼭 필요한 '휴식'의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큽니다.

왕짜증 증후군

요즘 포항의 플레이를 보면, 예전에 비해 선수들의 항의라든가 평정심을 잃은 모습이 좀 보이죠?
그리고, 작년에 비해서 팀 플레이 보다는 본인이 직접 해결하려는 모습도 더 자주 보이고
경기중에 무리수를 두는 경우도 종종 보입니다.

이것 역시 우승 후유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또한 자기가 경험한 베스트 상태의 포항 플레이를 선수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베스트 플레이가 나왔을 때 경기가 어떻게 풀려 나가고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선수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 시즌에 그게 잘 안나오는겁니다.
몸도 안따라 주고, 선수단의 변화도 좀 있었고, 감독도 바뀌었고...
내가 보는 눈 높이, 내가 바라는 모습은 저 높은 곳에 있는데... 지금 그게 안되는거죠.
그러다보니, 자기가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무리한 플레이도 시도하게 되고, 마음은 급해지고,
결국은 평정심도 잃어버리고...
다 이긴 경기를 비겨 버리거나 개운하지 못하게 경기에 지고나면 더 짜증나고...
그 짜증을 풀어 버릴 새도 없이 다음 경기가 기다리고 있고...
선수들도 답답할테고, 어떻게든 극복해보고 싶겠지만 현실적으로 잘 안풀리니 미칠것 같고...
이런 왕짜증 증후군은 점점 증폭되면 증폭되지 쉽게 가라앉지가 않습니다.

상대 감독들의 노련함

경남의 조광래 감독이 포항을 잡는 모범 답안을 보여줬습니다.
미드필드에서 정상적인 경기력 대결을 피하고, 포항이 제 플레이를 못하게 해라.
경기력으로 맞서지 말고 반칙으로 끊으면서 포항의 리듬을 깨뜨려라.

이 작전은 적중했습니다.
포항 팬의 입장에서는 깨끗하지 못한 전략으로 보이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지요.

덩달아서... 다른 팀들도 포항을 상대할 때는 이런 전략을 생각할 테고
포항 선수들의 왕짜증 증후군에 부채질을 솔솔 하는 꼴이 되어 버리는거죠...


해결 방법은?

우선, 리그 최종 목표를 좀 낮게 잡아야할 듯 합니다.
현재까지 각 팀의 전력을 볼 때, FC 서울과 전북이 Top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포항은 3위 정도를 목표로 하면 객관적인 목표치로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물론... 3위도 쉽지는 않겠지만요.

상반기에는 순위 싸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길 경기 확실히 이기면서 최소한의 승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기기 위한 운영을 할 경기와 포항의 색깔이 잘 나타나는 아름다운 축구를 할 경기를 구별해야지요.
아름다운 경기를 위주로 하면서 중간중간 이기기 위한 축구를 구사하면서...
하반기 역전조차 불가능한 수준으로 밀려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유지하고...
그리고... 월드컵 휴식기간 동안에 회복의 기회를 잡아야 할 듯 하네요.

엔트리의 변화는 분명이 있을겁니다.
감독 입장에서도 현재야 같은 상황이라면 좀 더 많은 선수들을 가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올 시즌에도 만만찮은 수의 경기를 치러야하고,
리그 종반으로 갈수록 경쟁도 치열해지고 팀의 누수 포인트도 많아질테니까요.
레모스 감독 부임 첫 시즌입니다.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감독이 시험과 적응을 마칠 수 있도록 상반기는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게 낫습니다.

...

우리 포항의 팬들은 어떻게 해 주면 좋을까요?

믿고 기다리는 것!

이것 만큼은 K-리그 서포터들 중에서 포항이 최고 아닙니까?

비록... 믿고 기다렸다가 파리아스를 놓치기도 했지만... ^^

그래도, 포항의 뚝심으로 믿고 기다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