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의 부상을 보면서

2006. 4. 13. 12:44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먼저 너무 안타깝습니다.
무릎 부상으로 인해 이동국이 월드컵에 나갈 수 없다면
우리팀은 아마 원톱을 사용하는 전술은 그냥 접어야 할테니까요.

박주영이나 조재진을 원톱의 대안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동국을 대신할 카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건 전체적인 기량의 문제가 아니라 플레이 스타일, 파워, 그리고 한 방의 문제입니다.
적진에서 항상 2-3명의 수비수 틈에 외롭게 서서
그들을 끌고 다니면서 공간을 만들어 내고
기술과 잔재주 보다는 힘과 높이, 폭발력에서 정면대결을 해야 하고
어쩌다가 잡은 최소한의 찬스에서는
"저 놈은 한 순간이라도 Free 상태로 놔두면 안된다!"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한 방을 날릴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세계 톱 클래스의 선수들과는 차이가 나겠지만
어쨌든 이동국은 거의 유일한 한국팀의 원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수는 없군요.


이동국, 장단점과 부상

이동국은 체격이 큰 선수입니다. 아니, 덩치가 크다는 표현이 더 맞겠죠?
황선홍과 비교해 보시면 금방 체격적인 차이가 느껴지는데
황선홍은 '덩치가 크다'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으니까요.

이동국처럼 덩치가 있는 선수들은 그만큼 무릎이나 발목에 더 많은 무리가 가게되고
중심을 잃을 경우에는 자잘한 부상들이 많이 따르게 됩니다.

이동국을 오랫동안 보면서 느낀 점은...
그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크게 부상치레를 하지 않는 다는 점이
무척 큰 장점으로 보였습니다.
느려 보이지만... 반면에 그는 누구보다도 좋은 균형감각과 유연성을 가진
선수로 보였고, 그렇기 때문에 최전방 공격수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부상치레는 별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가 순간적으로 달려 나가는 상황에서 균형을 잃는 바람에
부상을 입게 되었다니... 이건 정말 너무 안타깝습니다.
한 순간, 폭발적으로 몸을 튕겨 나가는 상황.
그리고 순간적으로 (거의 동시에) 방향을 트는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네... 축구경기 많이 보신분들 짐작이 가시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다쳤다고 하면 보통은 무릎쪽에 제법 큰 부상을 당하지요... T.T

아마도.. 최근들어 몸이 근육질로 바뀌고
느린 플레이가 아닌 순간 폭발력을 보여주는 플레이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볼 때
어쩌면 그런 부상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호사다마...
그의 플레이 상의 약점이 극복되고, 토실토실한 몸이 근육질의 딱딱한 몸으로 변했고
눈에 띄게 플레이가 살아나는 상황에서
오히려 마가 낀 것은 아닌지...

이런 부분까지 예측하고 대비할 수는 없는걸까요?
글쎄요...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 스타일이 바뀌고
몸의 움직임에 변화가 일어나는 측면에서 볼 때는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는 이와 유사한 플레이 변화를 겪는 선수들에게
미리 주의사항 정도는 체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부상을 숨기는 선수들

이동국의 케이스는 아니겠지만, 선수들 중에는 부상을 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월드컵이든 무엇이든 간에, 자기 가치를 끌어 올릴 기회가 자주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경쟁은 늘 치열하기만 하니까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자면...
한 번의 실패를 이유로 그 선수에게 너무 큰 낙인을 찍어 버리는
우리의 풍토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선수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부담을 주는 것일테구요.

"잰 안돼"
"저 놈도 이제 한 물 같구나..."

우리 팬들도, 그리고 현장의 지도자나 축구인들도
실패를 겪는 선수들에게 좀 더 관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선수가 알아서 극복할 문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관대해 지고, 기대의 끈을 조금만 더 이어간다면
더 많은 보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종수도 좀 더 지켜봅시다 ^^)


수술이라는 낙인

이제는 좀 예전과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선수의 수술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특히, 무릎이나 발목, 허리, 아킬레스건 등의 수술은
지도자들에게 조차도 색안경을 끼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습게도...
선수들이 자신의 부상을 숨기게 만드는 악순환을 가져옵니다.
수술한 부위가 아파올 때, 그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게 되니까요.

몇 년 전에 모 잡지사의 부탁으로 이동국 선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이동국은 부상 치료차 독일에 머물던 시절이었는데...
부상 및 치료, 재활에 관해서 자기의 눈이 번쩍 띄였다고 하더군요.

유럽의 선수들은 수술이라는 것을 우리처럼 금기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수준 높은 스포츠 의학과 재활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감이 있답니다.
수술 기법도 발전을 해서 수술 시간과 부위도 최소화 하고
특히 운동 선수들에게 맞는 수술법이 많이 발달이 되어서
빠른 시일 내에 후유증 없이 치료 및 재활이 가능하고
재활 후에는 전과 다름 없이 플레이를 펼칠 수가 있고
수술 과정에서부터 재활 담당 의사가 동석하여
집도하는 의사와 함께... 아예 수술 시점부터 재활을 염두해 둔다고 합니다.
시설이나 축구문화 등에 대해서도 부러웠지만
부상 치료를 하는 자기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이 정말 하늘과 땅차이 처럼 부럽기만 했답니다.

그런 자신감이 바탕이 되어서
선수들이 부상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으며
수술이라는 것을 '선수 생명의 끝'이라고 금기시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황선홍의 예가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몇 차례나 꺽이고 헤어진 그의 무릎이지만
독일에서 받은 첫 번째 수술이 잘 되어서...
그 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어찌보면 기적같은 일이고 한국 축구에는 엄청난 행운이기도 했지만
기적과 운으로만 볼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독일로 날아간 이동국은...

무엇보다도 확실한 치료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월드컵에 나설 수 없다면...
아쉬움은 너무도 크겠지만 받아 들였으면 좋겠고
만약 운이 닿아서 월드컵에 나갈 수 있게 되더라도
그것이 선수의 희생과 욕심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가능한 방법'에 의해서 그리 되었으면 합니다.

괜히 어정쩡하게...
'잘하면 뛸 수 있다' 라던가... '한 번 해 봅시다' 라는 생각이 더 위험합니다.
'뛸 수 있다'는 의학적인 근거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아쉽고... 선수 본인에게 아무리 피눈물이 나더라도
월드컵의 꿈은 접는 것이 낫겠지요.

아직 50일의 기간이 있습니다.
치료와 재활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못되지만
이 짧은 기간에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만큼
스포츠 의학이 많이 발전해 있을거라고 믿고 싶네요.

오는 6월 독일에서...
그와 함께 개선 행진곡을 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6월이 되든 아니면 12월이 되든...
다시 힘차게 골 그물을 흔드는 그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건투를... 그리고 희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