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3. 17. 09:45ㆍ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일본 선수들, 아니 어쩌면 일본 사람들에게 해당할 수도 있는데
항상 웃는 얼굴과 매너있는 표정관리
수줍은 듯 하기도 하고 소심한 것 같기도 하고...
한일전이 벌어지면
한국은 이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분위기로 덤비지만
일본을 보면... "우리는 그렇게까지..."라는 투로
약간 한 발 빼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경기에 진 후에도...
한국이라면 '제2의 국치일'이라는 식의 감정적 표현을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패배를 인정하는 듯 하면서도
속으론 그렇지 않은 묘한 이중성이 있습니다.
이치로...
이 선수는 아니더군요.
왜 그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의 선수가 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이 30년 동안 일본을 이길 생각을 못하도록, 그렇게 열심히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이치로의 30년 망언'이라는 수준으로 보도가 되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본 선수 중에서 그 정도로 도발적이고, 전투적이고, 솔직하게 표현한 선수도
보기 드물죠.
그리고, 그것은 한국에 대한 폄하라기 보다는 그 선수의 비장한 각오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제 경기에서도...
저는 그의 당돌한 투지와 승리에 대한 집착을 보면서
지금까지 본 일본 선수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본 선수 중에도... 저런 선수가 있구나.."
일본 선수들은 늘 뭔가 밋밋해 보였는데...
이치로라는 선수는 좀 날이 선 느낌이 들더군요.
내노라하는 세계적인 타자지만
무사에 주자가 1루에 있는 상황에서는 무모한 타격 보다는
번트를 대고 전력질주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도...
경기중에 관중에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모습이라든가
경기에 진 후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듯이 성질을 내는 모습 등은
승리에 대한 그의 투지와 집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보여주는 것 같더군요.
"오늘은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치욕적인 날이다"
브라질 축구 대표팀이 한국에 졌을 때
가령, 호나우딩요 같은 선수가 그런 반응을 보일지...
설사 그런 감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터뷰에서 직접 그렇게 표현을 했을까...
한국 축구 대표팀이 몰디브에 패했을 때
과연 우리 선수 중에 이런 반응을 보일 선수가 있을까...
(당돌한 이천수 정도?)
아마 다른 선수들은 겸허히 패배를 받아 들이거나
아니면, 단지 한 게임 더 한국에 졌을 뿐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중 한 명인 이 선수는
한국팀을 상대로 자신의 실력으로 확실히 제압하고자 하는
그리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자존심과 오만함, 투지...
어쩌면... 이치로 같은 선수가 한 두명 더 있었다면
일본팀은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승부에 대한 투지와 자신감을 말하는 것입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를 눌렀다는 내용의 보도 일색이지만...
저는 그가 보여준 진정한 선수로서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이번 패배를 되새기면서
자기 야구 인생에서 가장 치욕적인 날을 털어버리기 위해
설욕의 기회를 찾기 위해 다시 자신을 갈고 닦겠죠.
뭐랄까...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거침 없이 표현하는 모습에서
꼭 한국사람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_^
PS) 90년대 초, 한국 축구가 일본에 밀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한국 축구가 느꼈던 감정을 지금 일본 야구가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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