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포항(2:4)제주 - 동해안 더비의 후유증

2021. 9. 27. 19:15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집), 포항(2:4)제주 2021.09.25(토), K리그1 Round 32

안좋은 시기에 동해안 더비를 놓쳐 버리면서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쳤다. 강현무의 계속된 결장, 화요일(21일)에 동해안 더비 치르고 4일 뒤에 맞이한 경기. 그래도 홈 경기니까 좋은 분위기로 바꿀 수 있을거라 기대했지만 결과가 너무 참담하다. 4대0까지 끌려가는 동안 우리가 보여준 경기력이 어찌나 초라하던지... 막판에 2골 따라붙은 것을 보면서 다행이라거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위안을 삼을 수도 없는 경기였다.

우리는 느린 운영, 수비 위주의 전략으로 전반을 시작했으나 제주는 처음부터 조성훈을 우리의 아킬레스건으로 삼았는지 적극적으로 슛을 쏘면서 공격을 주도했다. 전반에만 3실점, 내용도 결과도 모두 내주고 말았다. 이번 시즌 내내 수비 조직력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데, 여기에 골키퍼 변수가 추가된 꼴이다.

강현무가 다음 경기에서는 돌아올 수 있을까? 만약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면, 조성훈이 좀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조성훈의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을 것같아 걱정이다.

강현무의 결장은 골키퍼 포지션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다. 송민규의 이적보다도 더 크게 팀을 위축시키고 말았다. 아마 선수들은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강현무의 공백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경기에서 첫 실점을 당하는 순간 급속도로 불안감에 휩싸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일단은 모든 선수들이 자신감과 투지부터 찾았으면 좋겠다. 제주가 원래 그렇게 골을 잘 넣던 팀이었던가? 아니라... 우리 골키퍼를 아래로 보면서 자신있게 슛을 때리니까 평소보다 더 좋은 골이 나오는거다. 반대로 우리는 뒷문 불안을 느끼면서 수비를 하다보니 전보다 더 경직된 수비를 하게 되고 과감하고 빠른 공격을 하지 못했다.

권완규가 팀 내에서 어떤 캐릭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럴 때 흐트러진 팀의 투지와 수비 라인의 책임감을 한 번 다잡아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시적으로 강상우를 다시 윙백으로 내려야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수비라인이 좀 더 결연하게, 끈끈하고 투지 넘치게, 그리고 자신있게 중심을 잡아줘야 할 것같다.

초반에 경기를 느리게 운영하면서 후반에 공격으로 승부를 보는 전략은 너무 불안정하다. 오히려 수비 진영에서의 패스 미스, 볼 키핑 실패로 상대에게 찬스를 헌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오범석은 팀의 스피드를 현저하게 저하시킨다. 그라운드에서의 파이팅은 좋지만 볼 처리가 느리고 공격 전개가 날카롭지 못하다. 선발보다는 후반 막판 지키는 축구를 할 때에 투입하는게 나을 것같다.

수비력이나 파이팅은 약하더라도 좀 더 많이 뛸 수 있는 미드필드진을 구성했으면 좋겠다. (예, 신진호-신광훈-크베시치 또는 신광훈-이수빈-신진호) 전방부터 많이 뛰면서 상대 압박하고 세컨 볼 차지하는게 우선이다. 뒤에서 천천히 만들어 나가기에는 우리의 스피드나 정교함이 상대의 압박을 벗어날만큼 완성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긴 패스나 긴 크로스로 찬스를 잡기에는 중앙이 허약하다.

우선은 전반전 시작부터 가급적 높은 곳에서 터프하게 공을 차지했으면 좋겠다. 전술이나 작전에 의존하기 보다는 좀 더 많이 뛰면서 서로 믿고 의지하는 아주 원초적인 축구에 집중해야 하지않을까... 지금은 감독이 아니라 선수들이 힘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다. 감독과 스탭은 전술적인 고민보다는 선수들이 힘을 발휘하고 투쟁심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이 와중에 그랜트의 연속 득점이 그나마 고무적이다. 득점보다는 수비 안정성이 우선이겠지만, 워낙 득점원이 씨가 마른 탓에 새로운 득점 루트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반갑다. 앞으로 세트 피스 상황에서 그랜트 효과를 좀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랜트의 득점이 아니더라도 다른 선수들에게 좀 더 많은 득점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부디 이 작은 성과가 팀 공격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면 좋겠다.

...

우물쭈물 어정쩡하게 3연패, 아챔 출전권 경쟁은 커녕 하위 스플릿으로 순위가 급락해 버렸다. 연패는 참 나쁘다. 팀이 나쁜 공기에 휩싸이면 사소한 것에도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되고 잘하던 것들도 이상하게 꼬이게 된다.

지금 우리가 딱 그런 상황이다. 유난히 부족하고 어려운 시즌... 여러 난관을 뚫고 여기까지 왔는데 또 하나의 큰 시련이 앞에 놓여있다.

자칫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부디 이번 고비도 잘 넘겨서 올 시즌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줬으면 좋겠다.

팀을 떠난 선수도 많고 제대로 활약을 못하는 선수도 많다. 지금 남아있는 선수들이 몸으로 버텨내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버텨 냈으면 좋겠다. 여기서 주저앉기에는 발버둥치면서 달려온 이번 시즌이 너무 아깝다!

강릉에 가야겠다... 거리두기 관전수칙 때문에 작은 목소리도 보탤 수 없겠지만, 눈빛은 보탤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