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5. 12:01ㆍ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집), 광주(2:3)포항, 2021.10.03(일), K리그1 Round 33
타쉬에게서, 아니면 이승모에게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득점 장면이 신인 이호재에게서 나왔다. 시즌 내내 후반 막판 헤딩 경합하러 교체투입되는게 전부였던 신인 선수가 데뷔 첫 유효슈팅을 골로 연결하더니 추가 결승골까지 넣었다. 그것도 매우 이상적이고 교과서적인, 딱 포항이 장착했으면 했던 그런 방식으로!
첫 골은 높은 타점을 이용한 헤딩 슛, 두 번 째 골은 수비를 등지고 버텨내면서 구석으로 터닝 슛, 비록 골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세 번 째 슛도 각도가 모자란 상황에서 강하고 정확하게 날아갔다. 다른 선수들이 시즌 내내 그렇게 노력해도 보여주지 못하던 장면을, 몸빵이나 하는 줄 알았던 신인 선수가 한 경기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에 다 보여 줄 수 있는건지...
결국 피지컬이 깡패고 유전자가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일까?
광주가 초반부터 매섭게 나왔고 포항이 적잖이 고전한 경기였다. 후반에도 광주가 내용에서도 앞섰고 동점골에 이어 역전골이 나올 때까지 완전 광주의 페이스로 경기가 흘러갔다. 솔직히 5연패로 가는건 아닌가하는 불안함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다만, 광주도 후반 중반 이후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역전골 이후 엄원상이 교체아웃 되면서 전체적으로 느슨한 모습이 보였다. 이 타이밍에 포항은 이호재와 이수빈을 투입하면서 기동력과 힘을 보강했다. 아주 적절한 교체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이호재가 그렇게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줄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김기동 감독은 훈련 과정에서 그런 낌새를 봤다고했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이호재가 투입되는 시점에도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본 이호재는 경기의 스피드를 따라 가기에도 버거워보였고 중앙에서 제 위치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마디로 움직임이 무겁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이따금씩 헤딩을 따내긴 하지만 세컨볼 찬스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타겟형 스트라이커는 위치나 방향을 선점할 줄 알아야하고, 또 그 위치와 방향을 수비수들 틈에서 지켜낼 수 있어야하는데 이호재는 그동안 위치나 방향을 잡는 것조차 늦고 서투른 선수였다.
그런데... 광주전에서는 좀 달랐다. 투입되자마자 패스를 받을 수 있는 루트를 따라 움직이면서 공을 자주 터치하더니 경합 상황에서도 수비보다 먼저, 또는 높은 곳에서 공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종전까지 볼 수 없었던 모습!
광주 수비수들이 지친 것도 한 몫을 했겠지만 이호재의 움직임은 분명히 이전 경기들과 달랐다. 훨씬 효율적이었고 자신감도 넘쳤다. 그 동안 많은 노력을 했다고 들었지만.... 다시 느끼지만... 그러나 역시... 피지컬이 깡패고 유전자가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된다.
당분간 선발보다는 비슷한 타이밍에 교체 투입되는 경우가 많을 것같다. 하지만, 팀 내에서의 비중과 신뢰는 이전과 비교도 안되게 상승했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는 이호재가 투입되는 시점부터 팀의 공격패턴이 이호재를 중심으로 재편되지 않을까 싶다.
이수빈과 이준도 좋았다
이준은 지난 경기의 말도 안되는 실수로 심리적인 타격이 꽤 컸을 것같아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극복한 것같다. 여전히 어정쩡하게 앞으로 튀어 나오면서, 다소 급하게 공을 처리하려는 모습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강현무의 공백을 잘 메워줬다.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경험과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처음부터 주전으로 뛰지 않으면 좀처럼 기회를 얻을 수 없는 포지션이다. 강현무가 돌아오면 다시 벤치로 물러설지도 모르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가급적 많은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수빈의 움직임도 좋았다. 우리팀 공격이 신진호의 패스에 워낙 크게 의존하는지라 신진호가 빠지면 공이 우왕좌왕하면서 길을 잃을까 걱정했는데, 이수빈이 비교적 깔끔하게 커버했다. 많이 움직이면서 공 점유율과 세컨볼 차지에 결정적인 힘을 보탰고 막판에는 좋은 패스로 득점까지 이끌었다.
경기전부터 걱정을 많이했었다. 선수들도 많이 지쳐보였고, 무엇보다도 4연패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나 거지같았기 때문에 팀의 멘탈도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매우 중요한 경기를 아주 안좋은 타이밍에 치르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한꺼번에 거둔 경기가 됐다.
연패를 끊었고, 상위 스플릿(A)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했고, 이준이 골문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줬고, 이호재의 포텐이 터졌고, 하늘도 도우셨는지 팔라시오스의 득점도 나왔다.
하지만, 80분까지는 광주에게 내내 고전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가장 주된 원인은 떨어진 체력과 자신감일 것이다. 다행히 월드컵 예선을 위해 2주간의 리그 휴식기가 생겼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
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나고야를 잡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울산이 전북을 잡고 4강에 올라온다면 4강전도 재밌어질 것 같다. 올시즌 동해안 더비에서 영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아챔에서 한 방에 크게 빚을 갚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천까지 잡고 스플릿 A에서 파이널 라운드를 치르게 된다면 완벽한 10월이 될 것같다.
우주의 기운이 그런 시나리오를 쓰는 것 같다. 왼쪽 발바닥에 왕(王)를 새겨보면 어떨까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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