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포항(1:2)대구 - 다만 졌을 뿐, 경기는 괜찮았다

2021. 9. 13. 14:36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집), 포항(1:2)대구 2021.09.10(금), K리그1 Round 29


대구가 우리보다 좋은 경기를 펼쳤다. 비슷한 경기력의 양팀이지만 대구가 더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이길수도 있고 질수도 있는 경기에서 대구 선수들이 좀 더 정교하게 움직였고, 우리는 또다시 어정쩡한 수비 실수가 나오고 말았다. 혼전중인 3위 싸움에서 우위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그것도 우리 홈에서 놓쳐버렸다는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뿐이다.

양팀 모두 경기의 중요성을 알기에 남김없이 쏟아붓는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승부처에서 좀 더 과감하고, 좀 더 집중력과 투지를 보인쪽은 대구였다. 그리고, 골대도 대구편이었다.

우리의 첫번째 득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팔라시오스가 측면을 허물고, 중앙의 이승모가 정확하게 쇄도하는 임상협에게 전달, 그리고 깔끔한 마무리. 공의 흐름과 전개속도 모두 나무랄데 없는 장면이었다. 비록 경기는 내주더라도 이런 좋은 공격모습이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자신감이 왜이래?

수비도 공격도 좀 더 자신있는 플레이를 했으면 좋겠다. 수비의 경우 그랜트의 결장으로인한 공백이 있긴했지만 뒤에 강현무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강현무는 요즘 한 경기에서 한두골 정도는 건져주는 놀라운 선방을 계속 보여주고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수비 반경도 넓어졌다.

'내가 뚫려도 뒤에 강현무가 있다'는 믿음으로 좀 더 자신있게 전진하면서 수비했으면 좋겠다. 어정쩡한 위치에서 망설이는 것보다 실수가 있더라도 자신있게 하는게 더 좋다. 권완규를 봐라. 적극적으로 터프하게 태클을 구사하고 공격수 앞에서도 자신있게 공을 다룬다. 가끔 아찔한 장면이나 실수가 나오기도하지만, 이런 실수에 비해 팀에 가져다주는 이익이 훨씬 많다.
(아쉽게도... 작년처럼 '내가 뚫려도 어디선가 나타난 최영준이 커버를 해 준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을 것같다.)

공격도 마찬가지! 좀 더 자신있고 적극적인 슛이 나왔으면 좋겠다. 특히, 이승모는 골 찬스를 잡아내는 좋은 감각을 지녔으면서도 소녀감성 새가슴 슛 때문에 좀처럼 득점을 올리지 못하고있다. 유독 골대 맞추기를 잘하는 이승모, 골 운이 따르지 않는 이승모... 가장 큰 문제는 자신감이 아닌가싶다.

득점을 올리면 자신감도 더 살아나고 좋을텐데 좋은 찬스에서 계속 득점에 실패하는 바람에 반대로 자신감이 더 떨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포지션에 대한 불안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이승모만의 축구센스가 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타쉬의 부진으로 인해) 중앙 공격수로 출전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예전보다 훨씬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원래 먼 거리에서도 위력적인 슛을 쏠 수 있는 선수이다. 침착하고 내정할 줄 알고 정확성도 좋다. 딱 하나! 슛 찬스에서의 빠른 결단과 자신있는 슛만 장착하면 쉽게 득점이 따라올 것 같다.

너무 변화무쌍한 전술구사

전술이 유연한 것이 김기동 포항축구의 특징이긴하지만... 이가 없어 잇몸으로 때우고, 잇몸이 무너지면 혀도 버티면서도 싸우고 이겨는게 포항의 축구이긴하지만... 요즘은 유연해도 너무 유연하다. 전반전과 후반전의 전술이 완전히 다르고 때론 이게 먹히고 때론 이것 때문에 무너진다.

정답이 어느쪽인지는 모르겠다. 특히, 김기동 감독은 혼자 독단적인 결정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팀의 집단지성을 끌어내는 스타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이렇게 매경기 유연하게 바뀌는 전술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종합된 최적의 합의점일 가능성이 높다.

잘 되면 모든게 오케이다. 팀이 함께 완성하는 전술이 먹히는 순간, 선수 한두명이 빠지든 상대팀이 누구든 우리의 플레이를 맘껏 펼칠 수 있다.

팀의 베스트 전술을 고정시키고 안되는 부분을 반복 보완하면서 완성도를 높일것인가, 아니면 지속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유연성을 극대화할 것인가... 왠지 유연성을 극대화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게 아닌가 싶다. 어느쪽으로 가는 것이 현실적인지 판단해 볼 시점이 아닌가 싶다.

강상우 시프트, 신광훈 시프트, 그리고 신진호 시프트까지 등장했다. 감독과 고참 선수들이 너무 많은 책임을 떠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쯤이면 어린 선수들 중에 한 명은 앞으로 쭉 치고 나가면서 영플레이어상에 접근해 있어야하는데... 상당히 많은 출전 기회가 제공되고 있음에도 올해는 그런 선수가 나오지 않은 부분이 매우 심하게 상당히 아쉽다. 분발하자!!!

그 놈의 세징야!

세징야의 컨디션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체력과 스피드 모두 전보다 떨어져있었고 힘있는 드리블 돌파와 강한 몸싸움도 다소 위축된 모습이었다.

그래도 세징야는 세징야...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도 포항 수비를 크게 흔들었다. 공을 쉽게 내주지 않았고 어떻게든 대구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연결했다. 포항은 페널티 에리어 근처에서 특히 세징야에게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최대한 신체접촉 없이 세징야를 둘러싸면서 슈팅과 이동을 차단하려했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잘 막았지만 딱 한 순간에 한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페널티 에리어 바깥, 타이트하던 수비가 살짝 물러섰고 골키퍼는 약간 전진한 상태. 순간적인 기회포착과 빠르고 정확한 슛! 그리고... 골!

대형 선수, 팀의 중심을 이루는 선수의 능력이란 이렇게 탁월한거다. 100%가 아닌 상태에서도 팀을 끌고갈 수 있고 경기를 결정지을 수 있는 힘과 정신을 가졌다. 정말 탐나는 선수다. 포항이 품었으면 싶은 선수일뿐만 아니라 대표팀에서 품기에도 손색이 없는 선수다.

포항은 앞으로도 세징야에 대한 수비만큼은 100% 이상을 지향해야할 것 같다. 단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을뿐더러 우리 수비가 생각하는 이상의 것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

포항과 대구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전력을 보여줬다. 지난 전북전과 이번 대구전은 승패와 관계없이  안정된 모습이었다.

같은 시간 열린 울산(0:0)전북의 경기도 득점만 없었을뿐 정말 좋은 경기였다. 확실히... 주말에 펼쳐진 성남(1:1)서울의 하위팀 경기와는 확연히 다르게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다.

이제 아챔 16강 원정, 그리고 그 다음이 울산과의 경기다. 치열한 순위 싸움 맞대결, 아챔, 그리고 절대 놓칠 수 없는 동해안 더비까지 힘겹고 부담되는 경기의 연속이다.

우리 선수들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게 분명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힘겨운 일정과 싸움에 맞서는 팀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순위가 어떻든 난 몰라, 상대가 누구든 난 몰라하는 식의 경기를 펼치는 팀들과는 멘탈의 레벨이 다르다는 것을 선수들 스스로 느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의미없는 경기란 단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