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30. 16:27ㆍ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집), 포항(4:1)조호르 다룰 탁짐, 2021.06.28(월), ACL G조 예선(3)
앞서 나고야와의 경기에서 3대0 패배, 그리고 신광훈의 퇴장까지 있었기 때문에 행여나 위축되고 불안한 경기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전반 초반 그저그런 상대의 슛이 굴절되어 재수없는 경로를 따라 떼굴떼굴 우리 골문으로 굴러 들어갈 때는 "어라? 왜이러지?" 하면서 혹시라도 운빨 더럽게 나쁜 경기로 흘러가지 않을까 불안했다.
크게 패한 후 바로 다음 경기에서 운빨 디지게 나쁜 실점을 하고, 상대는 왠지 능글능글한 플레이로 전후반을 보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PK + PK + PK
다행히 경기는 잘 풀렸다. 페널티 킥으로 쉽게 동점을 만들 수 있었고, 또 역전에 추가골까지! 조호르는 정교함이 떨어지고 수비가 다소 약해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득점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데 상대의 어설픈 수비덕에 이른 시간에 손쉽게 동점골을 넣을 수 있었다.
특히, 두번째 강상우의 페널티킥은 우리에게 행운이었다. 만약 골키퍼가 먼저 움직이면서 라인에서 발을 뗀 것을 심판이 잡아내지 못했다면 역전골의 기회도 날려버리고, 우리의 페이스도 잃어버리고, 강상우의 멘탈로 쳐져 버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심판의 정확한 판정 덕분에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에겐 역전, 상대에겐 멘탈 붕괴의 전환점이었다.
사실 강상우가 키커로 나섰을 때 내심 불안했다. 강상우도 킥이 정교하고 좋은 선수고 PK는 성공 확률이 더 높기 때문에 강상우가 차더라도 무방하겠지만, 실패 했을 때의 댓가가 워낙 크기 때문에 대담함과 좋은 킥력을 갖춘 전담 키커가 차는게 바람직하다.
세번째 임상협의 PK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임상협은 ACL 직전에 가졌던 광주와의 경기에서 PK를 실패한 적이 있어서 더욱 불안했다. 결과적으로 모두 득점에 성공하긴 했지만, 두번째도 세번째도 모두 타쉬가 전담해서 차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반대일 수도 있다. 같은 선수가 계속 차게되면 골키퍼에게 읽혀버릴 수도 있고, 혹시 실수했을 때의 여파로 인해 선수의 멘탈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스트라이커는 득점을 최종 책임지는 실력과 책임감과 멘탈을 함께 감당하는 선수인만큼 다른 선수들 보다는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스트라이커로서는 당연히 감내해야 할 역할인거고, 다른 선수들 입장에서는 스트라이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의 표현이기도 하다.
권기표, 넌 어디서 나타난거야?
익숙하기 않은 선수가 나타날 때는 항상 이유가 있다. 팔라시오스와, 크베시치의 이탈로 인해 우연찮게 기회가 주어졌겠지만, 분명히 연습 과정에서 감독의 믿음을 살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랏차부리와의 경기에서 잠깐 얼굴을 보인 이 선수... ACL 무대에 데뷔하는 주제에 긴장감은 1도 없고 당돌한 돌파는 송민규를 능가하네? 그 긴장된 와중에 대기심이 자기 등번호 잘못 셋팅한거까지 수정해주고, 게다가 플레이 스타일이 완전 에너지 넘치고 전후좌우 종횡무진!
물론 조호루를 상대로 넣은 골은 고영준이 거의 숟가락에 얹어서 건네주긴 했지만, 그 타이밍에 그 위치에서 찬스를 잡은 건 권기표 뿐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골 넣는 선수의 특징이고 골 넣는 선수의 집념이다. 게다가 깔끔한 마무리와 유쾌한 셀러브레이션까지!
긴 시즌을 치르다보면 여기저기 이탈도 생기고 구멍이 생기는데, 그럴 때 권기표처럼 짜잔~ 등장해서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선수가 있다. 한 번의 우연이 아니길 바란다. 그 유쾌하고 활발한 모습을 다시 보고싶다구!
고영준은... 이렇게 선발 출장해서 긴 시간을 뛴 적이 있었던가? 자칫 어렵게 끌려갈 가능성이 큰 경기였는데 이른 시간 고영준의 빠른 돌파를 통해 얻은 페널티킥 찬스로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음에도 끝까지 에너지를 끌어 올리고 권기표의 쐐기골까지 만들어냈다.
이승모-고영준-권기표! 후반 막판 상대도 우리도 모두 지친 타이밍에 끝까지 집중력과 세밀함을 유지한 이쁜 것들! ㅋㅋㅋ
경기 후, 포항의 인스타그램은 난리! 난리!
조호르의 팬들이 몰려와 PK 판정을 문제 삼는 댓글을 엄청 쏟아냈다. 심판을 돈으로 매수한 것이 틀림없다, 포항 선수들은 배우처럼 연기를 잘해서 심판을 속였다, 선수들이 약해 빠져서 반칙도 아닌데 툭툭 나가 떨어졌다... 등등
같은 축구팬, 그리고 서포터의 입장에서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심판의 판정은 아무리 공정하고 정확하더라도 때론 어느 한 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를 냉정하게 돌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포항이 더 정교하고 냉정한 축구를 했고 조호르는 거칠고 투박했고 수비는 느렸다. 그런 경기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다른 강팀을 만났을 때 똑 같은 결과가 다시 주어질 것이다.
...
공교롭게 다음 경기(7/1, 목) 상대는 다시 조호르! 어떤 실력 차이가 있는지 확실히 보여주기 바란다. 그들은 더 거칠고 더 신경질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수줍은 듯 사뿐히 즈려밟아 주기를!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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