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의 축구를 기다리며...

2010. 8. 11. 11:11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오늘 조광래 감독의 대표팀 첫 경기!
나이지리아라는 만만찮은 팀을 상대로 첫 선을 보이겠군요.

조광래!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 독고다이형 캐릭터, 뭔가에 항상 목말라 보이는 눈빛.
이회택, 박종환과 같이 들개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감독!

과거 경상남도의 명문 고등학교 중 하나인 진주 고등학교에 시험을 쳐서 들어갔고, 거기서 인연이 되어 축구 선수로,
그리고 다시 연세대학교에 체육특기자가 아닌 시험을 쳐서 들어갔다는...
역대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선수 중 유일하게 인수분해를 할 줄 안다는 전설아닌 전설의 주인공. ^^
K리그 팀 감독을 하다가 다른 K리그 팀의 코치로 가는 것을 받아들일 만큼 축구에 대한 전투력을 가진 사나이.

과거 국가대표 시절... 편파판정을 하는 심판에게 대들다가 퇴장당하는 선수에게, "나가는 김에 저 새끼 한 때 까고 가라!"라고 말하는 강단과 독기...

대학시절... 잘 읽히지 않는 원서지만 끝까지 끼고 다니면서 어떻게든 그 내용을 알아 내고야 말았으며, 축구 유학은 꿈도 못꾸던 시절에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났던 축구계의 개화파...

조광래는 참 독특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대단히 어울리지 않는 인물일수도 있습니다.
조광래 감독처럼 자기 색깔과 기준이 뚜렷한 사람의 경우, 하위 팀들을 완전히 휘어잡아서 자기 색깔을 입힐 때는 무서운 힘을 발휘하지만...
최고의 기량과 명성, 자기만의 개성과 자존심, 고유의 플레이 색깔을 가진 국가대표 선수들을 다룰 때는 상황이 좀 달라지니까요.

그때문인지... 조광래 감독은 무명의 선수를 과감하게 발굴해서 키우고, 변변한 스타 플레이어가 없는 팀을 최고 수준의 경기력으로 무장시킬 줄 압니다.
그의 팀이 보여주는 축구는 조직적이며 간결합니다.
한 선수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부품화된 전체 선수들의 합체된 힘을 위주로 합니다.
강한 체력과 기동력, 스피드가 요구됩니다.
아무리 약한 팀이라도, 아무리 약한 선수들이라도... 제대로 훈련을 거쳐서 이런 팀을 만든다면 결코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갖추게 되고, 아무리 강팀을 만나도 기본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보잘것 없을 줄 알았던 경남을 탄탄한 전력의 팀으로 만들어 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상당한 수준의 팀 파워를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우승이나 기대 이상의 성적은 감독의 힘만으로 되지 않으니까요.
결국 중요한 고비를 헤쳐가거나, 상식의 틀을 깨는 상황을 만들거나, 승리를 위한 꼭지점을 찍는 것은 선수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한국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국가대표팀입니다.
최고의 선수들을 조합하여 최고의 팀 파워를 만들어 낼 때 국가대표팀은 성공적인 팀이 되는 것입니다.

조광래 감독도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점을 찾겠지요.
조직력에 100% 헌신하는 선수들과 자유롭고 창의적인 축구를 구사하는 선수들을 최상의 조건으로 조합하거나
아니면 조직력에 100% 헌신하면서도 개인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축구를 함께 구사할 수 있는 선수들을 위주로 팀을 만들거나 하겠지요.

감독의 첫 경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와 같이 감독이 타협점을 찾기 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그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의 가장 원시적인 냄새를 맡을 수 있을겁니다.
물론 첫 경기이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가 모든 선수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는 힘들겠지요.
그러나, 어쨌든 선수들은 짧은 훈련 기간 속에서도 신임 감독과 전임 감독의 차이를 분명히 캐치했을 것이고
새로운 감독이 원하는 색깔을 맞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을 할 것입니다.
90분 내내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15분~30분 정도는 의식적으로 새 감독의 색깔을 맞추기 위해 뛸겁니다.
그리고... 경기를 거듭하고 훈련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감독과 선수들이 적절한 타협점을 찾으며 색깔을 섞어 가겠지요.

첫 경기, 그리고 당분간...
날 것 그대로의 조광래 축구를 보고 싶습니다.
다른 감독이면 몰라도, 들개의 냄새가 나는 조광래 감독이기에...
첫 경기라고 해서 무색무취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축구를 구사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