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혼비의 책들 (피버 피치, 어바웃 어 보이, 하이 피델리티)
2009. 9. 15. 20:20ㆍ사는게 뭐길래/볼거리먹거리놀거리
영국에서는, 그리고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유명한 작가였겠지만
제가 닉 혼비(Nick Honby)란 작가를 알게 된 이유는 역시나 축구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작품 '피버 피치(Fever Pitch)'는 축구 팬들 사이에 매우 유명한 책입니다.
닉 혼비는 소설가이면서 또한 축구팬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광'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축구를 즐기는 영국인들의 정서를 생각할 때 그냥 축구팬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피버 피치'는 닉 혼비의 축구팬으로서의 자서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서 축구장을 찾게 된 것을 시작으로
자기가 축구장에서 겪었던 일, 기억에 남는 경기와 선수들이 마치 일기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지간한 축구팬들에게도 낯선 선수들의 이름이 많이 나오고
영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작가의 글이 100% 전달되지는 않지만
축구를 즐기고, 자기가 좋아하는 팀과 함께 인생의 스토리가 쌓여가는
전형적인 축구팬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아마 제가 '피버 피치'를 재미있게 읽은 가장 큰 이유는
나중에 나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간직하고, 또 글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니면, 우리 아들녀석에게 닉 혼비의 어린시절과 같이
아빠와 함께 했던 축구장의 기억들을 남겨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 재미 없습니다.
닉 혼비가 아스널과 함께 인생을 살듯이, 자기가 좋아하는 팀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분들이라면
아주 재밌겠지요. ^_^
축구 경기를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팀의 입장에서 보시는 분들이라면
닉 혼비 문장들이 팍팍 가슴에 꽂힐겁니다!
...
'피버 피치'가 계기가 되어 닉 혼비의 다른 책 두 권을 더 읽게 되었습니다.
닉 혼비의 이야기는 유쾌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소소하게 놓치는 작은 것들을 그만의 시각으로 재미있게 풀어가는 재주가 있습니다.
틈새의 묘사라고 할까요?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인지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수 많은 과정들의 대부분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지만, 닉 혼비의 이야기에서는 그 수 많은 과정 사이에 낀
작은 틈새 같은 이야기들을 찾아서 좀 더 의미 있는 이야기로 풀려 나옵니다.
'피버 피치'가 축구팬으로서의 자서전이라면,
'하이 피델리티(High Fidelity)'는 음악팬 닉 혼비의 자서전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물론 자서전 아닙니다. 소설속의 주인공 또한 당근 가상의 인물이지요.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다가오는 느낌은...
글을 쓴 문체와, 내용과, 작가가 다 일치하는 것 같이 다가옵니다.
소설을 잘 썼기에 그럴 수도 있고, 닉 혼비 스스로가 그와 비슷한 인생경험을 했을 수도 있겠지요.
...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의 주인공 또한 왠지 닉 혼비 같은 느낌!
특별히 의욕을 가지고 하는 일 없는 백수이고 자유인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굴러먹진 않고 뭔가 의미 있는 고민을 안고 살며,
아이처럼 철없고 유치하면서도 또한 아이처럼 착하고 순진하며,
귀차니즘으로 무장한 히피 같으면서도 따뜻한 정과 소심한 책임감은 놓치지 않는...
그러니까, 닉 혼비는(정확히는 닉 혼비가 쓴 세 권의 책에 등장하는 남자들을 한 사람으로 축약하면)
축구팬이면서 음악을 좋아하는 히피 기질의 비현실적인 낭만파쯤 될까요?
그게 아니라면, 닉 혼비의 책을 읽은 저 자신이 약간 그런 부류이기 때문에
쏙쏙 감정이입이 된걸 수도 있겠지만... 그닥 저 자신과 일치하는 것 같지는 않군요.
...
이 세권의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은?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의 남자로,
축구를 좋아하며,
혼자만의 몽상이나 엉뚱한 상상을 일삼고,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 싫고,
사랑을 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음에도... 여전히 정착민이 아닌 유목민처럼 느껴지는 사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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