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95...

2015. 10. 28. 22:59사는게 뭐길래/난 그냥... 남자!

언제나 시작은 우연히..

작년 봄, 초등학교 시절 무던히도 같이 어울리고 장난치던 친구들을 30여년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만고만하게 춘천시 효자동 어느 골목에서 같이 모여 놀던 코딱지들이 마흔 여섯이 되어 다시 코딱지 놀이를 하게 됐는데...
그 중 한 놈... 국민카드에서 일하는 넘... 무슨 마라톤 컨셉의 마일리지 적립카드를 만든다면서 이벤트 이름을 뭘로하면 좋겠냐는 둥두리 둥둥둥 머라머라...

"어? 가만... 요맘 때 춘천 마라톤 하지 않나?"
"같이 함 뛰까? 10키로만 뛰어볼래? 더 뛰면 죽을지도..."

10km... 대략 삼성역에서 교대역까지 간 다음 거북곱창에서 한 잔하고 다시 삼성역으로 돌아와야되는 거린데...
이거 가능할까? 하자 말자, 된다 안된다... 된다, 될꺼다... 같이 함 뛰어 보자...

그렇게 해서, 몇몇 늙은 코딱지들은 놀이삼아 운동삼아 춘천 마라톤 10km짜리를 뛰면서 한바탕 재밌게 놀았습니다.
그리고 체중 0.1톤 넘어가는 넘 포함하여 참가자 5명 전원 2014 춘천마라톤 10km 완주!

회사원 2명, 군인 1명, 자영업 2명. (대략 스타일과 체형 등등을 보면 알 수 있음^^)



음... 할만한데?

회사에서 간간이 축구를 하긴 했지만, 10km를 달리는 상쾌함은 남달랐습니다. 게다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예쁜 고향도시 춘천에서 코딱지 친구들과의 한바탕 놀이같은 이벤트! 완전 신났죠...^^

근데 말임다... 막상 뛰어보니까 10km가 생각보다 뛸만 하더라구요.
성취감도 크고 기분상쾌하고 한 동안 잊고 살았던 달리기 본능도 꿈틀거리고!!
내 다리와 폐가 아직 쓸만하다는 뿌듯함!!!

10km쯤 되는 먼 거리, 그리고 한 시간 가량을 쉬지 않고 달려본 기억이 언제더라...
10년전? 20년전? 까마득해도 너무 까마득하지만... 한 때는 나도 거침없이 달렸는데 말야...
다시 한 번 뛸 수 있을까?

왕년에는 정말 잘 뛰었는데... 완전 날았는데...
하필 내 나이 또래에 황영조랑 이봉주가 태어나는 바람에 올림픽 메달을 못땄지만... ㅋㅎㅎㅎ

춘천 마라톤 10km 뛴 후에도 간만에 느끼는 달리기의 상쾌함을 잊기 싫어서 10년 이상 접어 두었던 조깅을 다시 시작했고, 조금씩 조금씩 달리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어느새 10km 정도는 가볍게(?) 적응이 되어가더군요.


하프... 함 도전해 볼까?

하프 한 번 도전해 볼까? 내년엔 뛸 수 있을까? 대회는 언제, 어디서 열릴까?

저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마라톤 대회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대략 조중동이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는 알았지만, 막상 뛸만한 대회를 찾아 봤더만 전국방방곡곡 시군구마다 하나씩은 마라톤 대회가 있을 정도!
마음만 먹으면 1년 내내 매 주말마다 적당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도 있겠더라구요. 거짓말이 아니고 1년에 전국에서 열리는 각종 마라톤 대회가 100개는 넘고도 남습니다. (당신의 고향 시군 이름으로 마라톤을 검색해 보시오!)

그 중에서 내가 뛸만한 하프 마라톤을 찾아보는데... 아무래도 나와 인연이 깊은 고향 도시인 춘천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매년 3월 1일 열리는 삼일절 하프 마라톤, 그리고 4월에 열리는 호반 마라톤!
어느걸 뛸까? 3월은 너무 추울까? 그때까지 준비는 될까? 넉넉잡고 4월에 뛸까? 너무 늦나?
일단, 둘 다 신청해 놓고 입금은 나중에 할까? 등등등

일단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춘천 삼일절 마라톤에 나갔습니다. 아직 추운 날씨, 처음 출전하는 하프 마라톤, 무슨 생각이었는지 스마트폰까지 손에 들고... 힘들게 힘들게 완주는 할 수 있었습니다.
장갑을 끼지 않았더니 손은 떨어져 나갈 듯이 시리고... 멋모르고 초반부터 달리는 바람에 마지막 몇 키로는 허기를 느끼면서 허부적허부적 들어왔습니다!!

어쨌든, 오호라... 달리기 시작하고 6개월만에 하프까지 왔구나!

그 후 몇 개 하프 대회를 더 뛰었습니다.
뛸까말까 고민했던 춘천 호반 마라톤을 뛰게 되었고(4월) 제천 의림지 마라톤(5월)을 뛰었습니다. (6월~8월은 꼴에 농사일이 바빠서 패~쓰!) 그리고, 충주복숭아.앙성온천 마라톤(9월)까지 네 번의 하프 마라톤 완주!  하프 최고 기록은 1시간 51분, 춘천 호반 마라톤.


마이너 대회의 즐거움

제천의림지 마라톤이나 충주복숭아.앙성온천 마라톤은 대회 이름이 즐겁지 않습니까?
저는 주말마다 단양 시골집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토요일 대회는 참가가 어렵겠더라구요.
그래서, 가급적 일요일 열리는 대회 중에서 단양-성남 오가는 길목에서 참가할만한 대회를 고르다보니 제천이나 충주가 가깝더라구요.^^

요런 대회... 저는 너무너무 사랑스럽니다^^
우선, 저 같은 입문자들이나 하프 정도 뛰는 참가자들이 많습니다. 기록을 남기기 위한 대회 보다는 축제 성격이 강하고 정말 남녀노소 다 참가하는 마라톤 운동회 같습니다. 약간은 잔칫날 분위기에 적당히 어수선... 당연히 참가 부담 같은건 제로!

여기는 제천의림지 마라톤


게다가... 막걸리를 줍니다 ^_^
그것도 무한리필. PET 병에도 기꺼이 담아줍니다!!

마라톤 대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식음료와 간단한 간식(바나나, 초코파이, 빵 등)을 제공하는데, 지역 대회에서는 막걸리와 잔치국수 두부김치까지 제공!!!
(물론 지역 대회라고 모두 제공하는 것은 아니고 고런 대회를 잘 찾아 다니면 된다는...^^)
심지어 참가자뿐만아니라 동행한 가족들도 다 함께 한 상 받을 수 있습니다.
하프 코스를 완주하고... 막걸리 한 사발, 잔치 국수 한 그릇, 두부김치 한 접시 받아들고 그대로 자리틀고 앉아서 먹는 맛이 마라톤 맛보다 더 좋았습니다.
저는 어쩌면 이 맛 때문에 앞으로 당분간 요런 깨알 재미가 있는 지역 하프 마라톤 대회만 찾아 다닐지도 몰라요~~^^


1년간 약 800km, 100 시간의 연습

풀코스 준비하면서 1년동안 연습한 거리가 대략 800km 내외가 되는것 같습니다. 대략 서울-포항 왕복 거리쯤 될 것 같고, 시간으로치면 대략 100시간쯤 될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 앱 Runkeeper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자그마한 마라톤 기록용 시계도 하나 샀구요. 거창하게 기록을 관리했다기 보다는 하나하나 흔적을 남기는 과정에서 재미도 느끼고 동기부여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누적된 훈련량을 보면서 풀코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조금씩 누를 수 있었고요.
하프코스를 두 번쯤 완주한 후부터는 주말 연습 거리가 어느새 10km 이상으로 늘어났고, 9월부터는 주말 기본 연습거리 17~18km, 긴 시간 연습할 때는 약 30km(4시간)까지 거리가 늘었습니다.
여전히 풀코스를 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연습량은 아니지만... 최소한 막연한 두려움은 어느 정도 누를 수 있었습니다. (30km 뛰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12.195km를 어찌 더 뛰라는건지... 헐~)

"1만 시간의 법칙" 이라는 책이있죠?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1만 시간 정도는 오롯이 매진할 때 우리는 가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답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이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일은 한 가지나 두 가지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일하는 직업, 그리고 약간은 도를 넘어선 취미 정도가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는 절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내가 즐길 수 있을만큼, 또는 살짝 발을 담글만큼, 남들하고 같이 즐길 수 있을 정도까지만 해볼만한 것들은 많이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배우는 데 1만 시간의 1%인 100 시간만 노력을 기울여도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연습하면서 Runkeeper라는 스마트폰 앱을 사용했습니다. 운동 내역을 간단히 기록해 주는데 무료버전만 써도 큰 도움이 되더군요. 초보 주제에 기록을 관리한다기 보다는 앱을 통해 기록하는 과정에서 약간은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기록이 좋아지거나 달리는 거리가 늘어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하여간, 완주했습니다.

컨디션도 좋았고 상쾌하고 기분 좋게 출발했습니다. 춘천 마라톤 코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강을 따라 달리기 때문에 경치가 아주 좋았습니다. 전날 비가 내려서 하늘도 깨끗하고 막 단풍이 익어가는 계절이라 달리는 동안 매우 즐거웠습니다. 단.... 20키로미터 까지만... ㅠ.ㅠ

20키로까지는 어느정도 일정한 페이스로 달릴 수 있었는데... 하프를 주로 연습해서 그런지 그 이후로는 정말이지 꾸역꾸역 달려서 완주했습니다. 30키로쯤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입질이 오더니 35키로부터는 질질 끌듯이 달리다가 40키로 지점에서는 아예 200~300미터를 그냥 걸었습니다. (에리 모르겠다... 남은 2키로 정도면 걸어가도 30분이면 가겠지... 힘들어 죽겠는데 5시간이면 어떻고 6시간이면 어떻냐 하는 심정^^)

그러다가... 골인 지점에 다 왔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완주를 독려하는 사람들이 계속 화이팅을 외쳐주고 가족들인지 친구들인지 모르지만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리고... 걷기가 좀 쪽팔리기도 하고... 그냥 덩달아 응원하는 사람들 기운에 다시 다리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막판에 1키로 정도는 그냥 달려 지더라구요^^

완주기록 4시간 48분 01초!


                


당초 목표를 3개 정도 잡았습니다. 

1) 완주하자 

2) 가급적 5시간 안에

3) 이왕이면 4시간 30분 안에

연습을 좀 더 했더라면... 30키로 달리기를 한 두 번 더 했더라면 막판 35키로 지점에서 퍼지지 않았을지도 모를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2번까지는 성공했으니 3번은 다음 기회로 남겨 놓을까 합니다.

다음 기회... 디지게 힘들긴 했는데 욕심이 좀 나네요 ^^

쫌만 젊었어도 황영조나 이봉주랑 함 붙어 볼텐데... 아쉽습니다^^ 

ㅍ ㅎㅎㅎ




참고로 춘천 마라톤은 각자 개인 기록에 따라 출발 그룹이 정해집니다. (아마 다른 대회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엘리트 선수들이 9시 정각에 제일 먼저 출발한 후 기록이 좋은 순서로 A그룹부터 G그룹까지 차례로 출발합니다.
는 F그룹(4시간 50분 이상)으로 출발했는데, 엘리트 선수들이랑 A~E 그룹 출발한 후 9시 25분경에 출발했습니다.(기록은 신발에 별도로 장착하는 기록 칩으로 관리됩니다. 출발 시간과 상관없이 스타트 라인 통과 시점부터 기록 측정되구요.)

4시간 48분에 완주했으니 다음부터는 E그룹에서 출발합니다. 머랄까... 학점 올라간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