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4. 23:54ㆍ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이상한 팀들끼리하는 이상한 축구 리그가 있었습니다.
이 리그에서는 홈 팀에게 매우 강력한 어드밴티지가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 홈 팀은 벤치가 있지만 어웨이 팀은 벤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웨이 팀의 후보 선수들은 바닥에 앉거나 서서 경기를 봅니다.
팀에 따라서는 어웨이 팀에게 유료로 벤치를 제공하는 곳도 있구요.
입장료도 다릅니다. 어웨이 팀의 팬들은 2배가 넘는 입장료를 내야합니다.
그런데도 좌석은 2층의 구석진 코너에 딱 100명까지만 입장 가능합니다.
홈 팀에서 임명한 심판이 한 명 더 있어서 어웨이 팀의 반칙은 속속들이 찾아 냅니다.
이 심판에게는 주심에게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이 때 주심은 반드시 비디오 판독을 해야합니다.
물론... 홈 팀에서 임명한 심판이기 때문에 자기 팀이 유리할 때만 이의 제기를 합니다.
홈 팀은 보호 선수를 1명 지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 상대팀이 이 선수에게 반칙을 가할 경우 무조건 퇴장 당하며, 반칙 위치에 상관 없이 페널티킥이 주어집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홈 어드벤티지를 인정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그 최하위의 약체 팀도 홈에서는 거의 승리를 따낼 수 있습니다.
물론... 아주 강한 팀의 경우에는 매우 불리한 어웨이 조건 속에서도 승리를 쟁취하기도 하지요.
비록 전력이 약하고 리그 성적도 낮은 팀이지만 홈에서는 많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관중 수입은 거둘 수 있었습니다.
풍부하지는 않지만... 구단을 운영할 수 있었고 조금씩 조금씩 구단도 발전을 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이제 어느정도 약팀의 굴레를 벗어나서 상위권을 넘보는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리그 우승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
이런 시스템에서는 당연히 리그 강팀들의 반발이 심합니다.
영원한 강자의 자리가 조금씩 흔들립니다.
그동안 다방면으로 노력해서 홈 어드밴티지를 지속적으로 축소해 오긴 했지만
여전히... 과도한 홈 어드밴티지가 약팀에게는 너무나 큰 방어무기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서로 동등한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리그 전체에 동등한 규칙을 적용하려고 했는데 각 팀의 이해 관계가 너무 다릅니다.
그리고, 이 이상한 리그에는 리그 전체를 관장하는 사무국이나 연맹 없이
각 팀의 구단주들이 모여서 결정을 하기 때문에 리그 전체에 동등한 규칙을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긴 해도... 강팀들의 입김이 세기 때문에 대부분 강팀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갑니다.)
이 때, 강팀들이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팀과 팀이 일대일로 협약을 맺자!
이름하여 자유축구협정, FFA(Free Football Agreement)
그래서, 강팀들은 각각 다른 팀들을 상대로 팀 대 팀 협약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강팀과 강팀 끼리는 서로 힘겨루기가 너무 심해서 일단 보류하고
리그의 약체 팀들과 먼저 규칙을 맺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강팀들은 약팀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우리에게도 벤치를 줘. 우리도 너네한테는 벤치를 줄께."
"우리 서포터들에게 1천개의 좌석을 줘. 우리도 너네한테 똑같이 줄께"
"우리 둘이 시합할 때는 양팀 모두 번외 심판을 둘 수 있게 하자. 공평하잖아?"
"너네는 홈 경기에서 2명의 보호 선수를 지정할 수 있어.
대신 우리가 너네 홈에서 경기할 때, 우리에게도 1명의 보호 선수를 지정할 수 있게 해 줘.
우리 홈에서 할 때는 양쪽 다 보호선수는 1명씩만 하지 뭐. 이건 우리가 양보하는거야"
"너희 팀은 전통적으로 골키퍼들이 좋지? 우리는 공격수가 좋고. 너희는 골키퍼에 한해서는 무한대로 교체를 할 수가 있고, 대신 우리는 필드 플레이어 1명을 추가로 교체할 수 있게 하자."
"너네 구장에 우리가 매점을 열 수 있게 해줘. 당연히, 너희도 우리 구장에 매점을 열 수 있지!"
...
그렇게 해서 두 팀 사이에 협정을 맺었습니다.
우리도 강팀의 홈에 가서 동등한 경기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다면서,
우리가 먼저 협정을 맺지 않으면 우리와 비슷한 다른 팀이 먼저 협정을 맺을 것이고, 우리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어웨이 경기를 할 수 밖에 없다면서,
우리도 강팀의 홈에 가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거라면서,
우리에게 유리한 부분도 있으니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면서....
물론, 협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구단 회의에서 최루탄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지요.
하지만, 약팀의 구단주가 하는 사업이 강팀 구단주의 사업에 따라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구단 고위층에서는 반대파를 무시하고 그냥 협정을 맺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 시즌이 시작되자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강팀의 경기장은 훨씬 좋습니다. 후보 선수들은 각자 비행기 1등석 같은 의자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어웨이팀에게 주는 벤치는 자기네 것보다 훨씬 후진... 그냥 나무벤치 입니다.
가난한 약팀의 경기장에서는 어차피 나무벤치를 쓰는데, 너희의 벤치와 똑같은 것 아니냐면서...
강팀은 어웨이 경기에 서포터를 위한 버스를 지원하기 때문에 언제나 1천명 정도의 서포터가 움직입니다.
하지만, 약팀은 기껏해야 50명의 서포터들이 자비를 들여서 어웨이에 따라가기 때문에 1천개의 서포터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강팀의 경기장이 훨씬 크고 관중도 많기 때문에 50명의 목소리로는 작은 메아리도 만들지 못하는 상황...
강팀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경험이 풍부한 퇴역 심판 몇 명을 스카우트하고 경기장에첨단 비디오 시스템을 설치합니다. 그래서, 상대팀보다 더욱 정밀하고 치밀하게 어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약팀이 3개 정도 어필해서 하나의 판정을 뒤집을 때, 강팀은 5개 어필해서 모두 판정을 뒤집어 버립니다.
강팀의 보호 선수는 개인기가 매우 좋고 빠른, 거액의 특급 용병입니다. 반칙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막을 수가 없고
반칙을 유도하는 기술도 훨씬 좋습니다. 이 선수 하나가 경기 결과를 좌지우지할 때가 많습니다.
약팀은 골키퍼를 무한대로 교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기에서는 골키퍼를 교체할 일이 없었습니다.
강팀은 필드 플레이어 1명을 추가로 교체하면서 톡톡히 재미를 보게 되었습니다.
강팀이 약팀의 구장에 새로 오픈한 매장에서는 강팀의 스폰서가 판매하는 좋은 물건들을 값싸게 판매합니다. 물건들도 훨씬 다양하구요. 약팀의 많은 팬들이 될 수 있으면 자기네 매점에서 물건을 사려고하지만... 자기네 매점에 없는 물건들은 강팀의 매점에서 살 수 밖에 없고, 그 물건을 사는 김에 아예 거기서 모든 것을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구단에서 매점의 임대료를 조금 깎아주고 리모델링 비용을 일부 대주기도 했지만... 새로 들어온 강팀의 매점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네요.
...
결국은...
예전에 확실한 홈 어드벤티지를 구사하던 시절에 비해서 홈 승률이 더 떨어지고
어웨이에서도 그다지 재미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성적도 떨어지고 관중도 떨어지고...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강팀을 이기기가 힘들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지요.
어쩔 수 없이... 약팀은 자기보다 더 약한 리그 최하위권 팀을 하나 골라서 똑 같은 방식으로 협약을 맺었습니다.
그렇게해서 그나마 손실을 조금 만회하고 승리를 조금 더 차지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강팀을 꺾을 수 있는 방법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군요.
좀처럼 팀이 좋아지지도 않구요.
멀잖아 약팀과 협약을 맺었던 리그 최하위의 팀은 리그에서 떨어져 나갈테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우리 팀에게 옮겨올테고...
어떻게 해서든지 리그 최하위권은 면하면서, 2부리그에서 새로 올라오는 만만한 팀을 찾아서 협약을 맺어야합니다.
앞으로 그런 일들이 계속 반복될 것 같고...
리그 강팀을 이기기는 도저히 어려워보이고, 그저 2부리그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
어떻게 해서든지 홈 승률을 높이고, 팀 성적을 올리고, 조금이라도 관중을 더 많이 끌어 모으고...
그렇게 발버둥치면서 노력에 노력을 하고, 그래서 더 좋은 팀을 만들어야 할텐데...
애초부터 강팀과 약팀 사이의 동등한 자유협정은 약팀에게 불리한 것이었습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우리 홈 관중들, 우리 선수들 밖에 없습니다.
경기에 지더라도 계속 우리 경기장을 찾아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무조건 우리 팀 매점에서 우리 팀 스폰서의 물건을 사주고
강팀의 매점에서 판매하는 물건은 쳐다보지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허리띠 졸라 메고, 한 명이라도 더 어웨이 경기 응원에 나서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 받더라도 우리 팀 선수로 계속 남아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부득이하게 입장료를 올려야겠는데... 그래도 계속 관중들이 찾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구단주와 팀의 고위층은 입장이 좀 다릅니다.
강팀의 매점에서 거두어 들이는 소득이 짭잘하고, 우리 경기장에 오픈한 강팀의 매점에서 들어오는 입대료도 있기 때문에 그들의 수입에 타격을 입지는 않았거든요.
어쩌면... 팀 성적에 따라 변동이 심했던, 홈 팬들의 코묻은 입장료와 미미한 중계권료에서 벌어들이던 불확실한 수입보다는 강팀의 매점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훨씬 안정적인 측면도 있거든요.
하지만, 팬들과 선수들, 매점 사업자들은 너무 힘듭니다.
우리 팀은 특정 강팀에게 맨날 지는데...
그 팀이 우리 홈 구장을 제집 드나들 듯 활개치는 것이 못마땅한데...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던 매점 수입은 강팀의 매점이 들어오면서 자꾸 줄어들기만 하는데...
팀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연봉은 별로 오르지 않고, 부득이하게 다른 팀으로 옮기다보니 실력에 비해 합당한 대우를 받지도 못한 채 서둘러 계약을 하게 되고...
팀의 발전을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희생하고, 더 열심히 살고 있는데...
구단주와 팀의 고위층은 자기들에게 보장된 수입의 일부를 경기장과 선수들과 팬들에게는 쓰려고 하지는 않는군요.
이제 이 팀은 어떻게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하면 당당하게 더 좋은 팀, 더 강한 팀, 언젠가는 리그 우승을 할 수 있는 멋진 팀을 만들 수 있을까요?
현실을 인정하고 팬과 선수들이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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