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라(Tazara) 열차 - 탄자니아 to 잠비아

2010. 5. 29. 06:37월드컵 여행 - 2010, 케냐에서 남아공까지/2. 탄자니아

[5월 27일]

2박 3일간의 긴 여행이었습니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타자라 열차를 타고 잠비아의 카피리음포시로(Kapiri Mposhi), 카피리음포시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Lusaka)까지!
장장 52시간의 여행이었습니다. (이쯤되면...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나...ㅋㅋ)
국경 근처에서 맞은편에서 오는 열차와 교차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이래저래 중간 중간에 서기도 많이 서고... 그리하야, 무려 6시간이나 연착을 했습니다.
예정대로였다면 루사카에 일찍 도착해서 좀 더 여유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처음에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다르에스살람의 타자라 기차역에 도착하니 1등석 전용 라운지가 있더군요.
에어컨까지 시원하게 나오는데 살짝 감동까지 밀려왔습니다.
(아프리카와서 에어컨 구경하기 쉽지 않아요. T.T)

헌데... 기차에 오르자마자 밀려오는 실망감이라니...
아마 나이로비에서 몸바사 가는 기차가 워낙 좋아서 실망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1등석과 2등석의 차이는 한 방(컴파트먼트)에 침대가 4개냐 6개냐의 차이일 뿐, 나머지는 똑같습니다.
그나마 침대가 4개인 것으로 만족해야죠.^^
침대 상태 안좋아요... 나사 풀어진 것 많고, 전기 스위치 여러개 있지만 동작하는 건 하나 뿐입니다.
침대등 켜지지 않고, 방에 붙어있는 선풍기는 그냥 폼이고, 전기 플러그도 있지만 전기 안들어오구요.^^

하여간... 주섬주섬 자리를 잡으니 룸메이트가 들어오더군요.
잉글랜드에서 온 스티브라는 친구인데, 우간다에서 봉사활동 마치고 여행중이라고 하더군요.
그나마 다행인지, 룸메이트가 상당히 괜찮은 친구였고 4명이 쓰는 방이지만 우리 둘 뿐이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넉살 좋은 녀석이 우리방을 찾아 왔습니다. 대합실에서 이미 스티브와는 통성명을 한 상태.
아일랜드에서 온 필이라는 친구인데, 자기도 월드컵을 보러 가는 길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이 기차에 월드컵 보러가는 이스라엘 친구가 한 명 더 있는 것까지 알려주더라구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 이스라엘 청년 아론까지 합세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우리 방에 침대가 비어서 아론은 그냥 우리 방을 쓰기로 했습니다.

잘 뭉쳤죠 뭐. 월드컵 보러가는 3인 + 잉글랜드 출신 1인.
바로 뭉쳐서 맥주 마셔대고, 월드컵 이야기 주절주절하고...
저는 가방에서 김, 오징어 따위 맥주 안주 꺼내고, 아론이랑 스티브는 가방에 꼬불쳐 놓은 위스키 꺼내고...
한 참을 꽤 마셔대고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아론은 다음날 음베야(Mbeya)라는 곳에서 먼저 내렸고, 나머지 셋은 루사카까지 계속 동행했습니다.
저랑 스티브는 비교적 컴파트먼트에서 개기면서 창밖 풍경 보면서 이야기하고, 중간중간 맥주 좀 마시면서 소일하는 스타일.
하지만, 필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쑤시고 다니는 듯 했습니다.
잠시 이야기 하다가 다른 곳으로 가고... 또 조금 있다가 다시 나타나고...
다시 나타나서는 목적지까지 얼마가 남았고 몇 시간 정도 걸릴거라는 걸 알려주고...^^

아론은 약간 히피 기질이 있는 친구랄까?
통통하고 귀엽게 생겼는데, 능글능글 싱글싱글하면서 잘 어울리더라구요.
제가 펴 놓은 김이 맛있다면서 연신 집어먹으면서 위스키 홀짝홀짝... ^^
다 좋았는데 이번 월드컵에서 자기는 아르헨티나 응원할거라고 해서 1점 감점 당했습니다.

룸메이트였던 스티브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28살된 친구인데 우간다에서 봉사활동하다가 우간다 아가씨랑 사랑에 빠졌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누구나 만나보면 영국신사라고 할 만큼, 점잖고 남을 잘 배려할 줄 아는 괜찮은 청년입니다.
영국에서는 수제 액자 만드는 일을 한다는군요.
영국의 부자들이 그림에 돈을 많이 쓰기 때문에 수제 액자도 비싸게 팔리는 편이고 돈벌이도 괜찮답니다.
이번 여행이 끝나면 나이로비에서 여자친구를 만난 후 자기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그림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이니 그때까지 돈 좀 모은 후에 다시 우간다로 와서 여자친구랑 살거라네요.^^
자기는 우간다가 너무 좋고, 여자친구도 너무 좋답니다.
스티브 덕분에 긴 여행길을 안심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또 지루하지 않게 같이할 수 있었습니다.
2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과 동행한다는 것은 큰 기쁨이지요.

스티브! 넌 정말 멋진 신사야!



하여간 재밌는 친구들과 뭉쳐진 덕택에 비교적 재미있게, 또 믿음직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카피리음포시에 도착한 후에도 저랑 스티브, 필은 같이 뭉쳐서 루사카까지 왔습니다.
루사카에 도착한 후에 저는 예약해 놓았던 Kuomboka Backpackers로, 스티브는 Chachacha Backpackers로, 그리고 필은 루사카에 있는 여자친구 만나러 같습니다.^^

오늘 여기서 하루를 마감하고, 내일 아침에 바로 빅토리아 폭포(Victoria Falls)가 있는 짐바브웨로 떠날 예정입니다.
피곤하긴하지만 움직일 때 쭈~욱 움직이고 짐바브웨에서 며칠 묶으면서 여유를 좀 찾을까 합니다.
뭐, 루사카에서 그닥 할 일도 없고요.^^

그럼, 다르에스살람(탄자니아)에서 카피리음포시(잠비아)까지의 타자라(Tazara) 열차에서 찍은 사진들 올립니다.
다르에스살람은 여름처럼 덥고 습하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점점 가을 빛을 띕니다.
잠비아에 들어서면 한국의 초가을을 연상케하는 풍경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거! 뉘엿뉘엿 떨어지는 석양을 보면서 맥주 한 잔! 기차는 흔들흔들 요람처럼 잘도 가고....



기차에서 맞이하는 아침도 빼 놓을 수 없지요.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고, 살짝 안개가 낀 상태...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아침 같습니다.

잠비아의 와카와카(Wakawaka) 호수


아프리카 여행은 불편합니다. 하지만, 견딜만 하구요.
또한 위험합니다. 하지만, 잘 살피고 조심하면 위험한 것들은 피할 수 있지요.
그러나... 제게 가장 불편한 것은 도저히 일정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개의 문제가 여기서 생기지요.
오후 4시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새벽 4시에 도착하게 되면 바로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 다음 여행 일정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니 불편함이 바로 찾아 오겠지요.

결국, 아프리카 여행이란 좀 더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여러 나라를 종횡무진 움직이기 보다는 어느 한 곳을 정하고 그곳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시간이 더욱 넉넉하다면 여러 나라를 천천히 돌아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아프리카가 아름답냐, 여행지로 추천할만하냐... 이런건 물어보나마나입니다.
얼마나 좋은지 궁금하시다면 얼른 아프리카를 경험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보고 느끼기 전에는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를테니까요.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한 지 열흘쯤 되니까, 이제 비로소 현지인들이 별로 의식되지 않네요.
옆에 앉은 아저씨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고, 내 옆에 아프리카 사람이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매일같이 보고 만나고 부딪치는 사람들이니까요.
물론 제 얼굴도 많이 까맣게 변해가는 중이구요 ^.^



타자라 열차를 타고 오는 동안, 열차가 지나는 곳 마다 아이들이 나와 기다립니다.
그냥 달려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고, 정거장에 정차해 있을 때 다가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싱긋 웃기만 하는 아이들도 있고, 손을 흔들어 주면 반갑게 같이 손을 흔들어 주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돈이나 물건을 달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고, 뭔가 팔 것을 내밀면서 사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맨발로 자갈 투성이 철길을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어떤 아이는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서인지 자꾸만 등에 업은 젖먹이를 앞으로 돌려 세워서 보여줍니다.
다른 사람들을 봐도 특별히 돈이나 물건을 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한 참을 창밖에 서서 기다립니다.
헬로, 하우 아 유, 웨어 아 유 프럼, 왓츠 유어 네임...
기브 미 썸 머니, 기브 미 애니씽 왓 유 해브... 플리즈... 머니... 머니...

이 것만큼은 아직 잘 적응이 안됩니다.
물건이나 돈을 줘야할지, 물건을 사줘야 할지, 그냥 이야기만 나눠주고 손만 한 번 잡아주면 될지,
아니면 그냥 멋적은 웃음만 띤채 슬그머니 외면해야 할지...
지금까지는 몇 마디 주고받다가 슬그머니 피하고 있습니다.
물건을 팔아주거나 돈을 주자니 그게 과연 그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그게 과연 여행자로서 맞는 행동인지로 모르겠고,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이 달려드는데 모두 다 해 줄 수도 없고...

뭐... 여행을 계속하면서 저도 저 나름의 방법을 찾겠죠.
그들에게 실례가 안되면서 저 자신에게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방법이 있겠지요.
잠시나마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면 모두 하나 같이 호기심 많고 수줍은 많은 평범한 아이들이란걸 금방 느낄 수 있거든요.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주면 아이고 어른이고 하나 같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처럼 여행하는 한 구석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언젠가 저도 다시 아프리카를 찾겠지요.
유럽이나 미국, 호주, 아시아에서 경험하지 못한 아프리카만의 느낌이란 것이 제 가슴속에 남아 있을테니까요.
위험 때문에, 불편함 때문에, 또는 미개발 대륙이라는 이유로 아프리카를 멀리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준비가 되신 분들은... 여행이건 사업이건 아프리카 땅에 발을 디뎌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아프리카만의 아름다움, 아프리카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확신합니다.

레게 음악 비슷한... 잠비아의 노래를 들으면서...
하루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