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바르 - 확 눌러 앉고 싶다니까!

2010. 5. 25. 07:58월드컵 여행 - 2010, 케냐에서 남아공까지/2. 탄자니아

[5월 23일]

당초 잔지바르에서 2일을 보낼 계획이었는데, 몸바사에서 다르에스살람 올 때 버스에서 하도 진을 뺀 탓에 하루만 잔지바르에서 보내게 되었네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무리 힘이 들었어도 잔지바르에 왔어야 했습니다.
이곳의 아름다움, 평화로움, 시골 섬마을 같은 따뜻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네요.
하룻밤만 묵고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이 너무 큽니다.

다르에스살람에서 잔지바르에 갈 때는 페리를 이용합니다.
저는 1시 페리를 타러 갔는데, 마침 12시 30분에 출발하는 페리가 있어서 그걸 바로 탈 수 있었습니다.
에어컨 나오고 자리도 편안한 1등석 끊었습니다. ($40)
뭐... 결론적으로 굳이 1등석 끊을 필요는 없었네요...
출발하면서 잠깐 눈 좀 붙이고, 나머지 시간은 밖에 나가서 바다 구경 하면서 갔으니까요.^^
마침 날씨도 너무 좋아서 새파란 바다 보면서 짠냄새 실컷 맡았습니다.

약 2시간 후, 드디어 잔지바르 섬



잔지바르에 도착하면 마치 국경을 넘는 것처럼 출입국 서류를 작성해야 합니다.
잔지바르를 포함한 인근 섬지역(Zanzibar Archipelago)은 말이 탄자니아일 뿐, 독립적인 자치구나 마찬가지 입니다.
문화도 완전히 틀리고요.

잔지바르는 아프리카 문화라기 보다는 아랍이나 인도 냄새가 많이 납니다.
길에서도 아랍인들과 인도인들 심심찮게 만납니다. 시간이 되면 무슬림들의 기도 소리도 들리고요.
지금이 비수기라고 하는데, 그래도 관광객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아시아 사람들도 제법 있지요. (한국 사람은 못본 듯)

여기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동양인들이 별로 이방인 취급을 받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유도 있겠지만, 아랍과 인도 문화가 공존하기 때문에 동양인들이 완전히 낯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마침 케냐에서 샀던 터스커(Tusker)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지나가면, "헤이, 터스커!" 이러면서 말을 붙이거나 그냥 혼잣말처럼 "터스커"라고 중얼거립니다.
여기서도 터스커 맥주는 꽤 유명한 모양이네요.
티셔츠 하나 입었을 뿐인데... 터스커 티셔츠 덕분에 이곳 사람들이 좀 더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네요.^^

굉장히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잔지바르는 본래의 모습을 많이 간직한 듯 합니다.
사람들의 순박함도 보이고 스톤타운 골목 골목의 그늘에 앉아 한여름의 땡볕을 피하는 모습들이 굉장히 편안해 보이네요.
이곳에서는 좀처럼 새것을 보기가 힘듭니다.
집도 오래 되었고, 나무도 크고 굵습니다. 지도에는 Street, Road 이런 식으로 표시되시만 차 2대 지나가기에 벅찬 골목길들이 대부분입니다.
지도에 Stree이나 Road라고 표시되어 있다고 해서 큰 길 찾으면 절대 답 안나오지요.^^


잔지바르의 중심가는 Stone Town입니다. 작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지요.
Town이라는 말에, 그리고 미로라는 말에 겁먹지 마세요.
반나절만 걸어 다니면 거의 모든 구석을 다 지나치게 됩니다.
미로에서 길 잃어도 괜찮습니다. 그냥 계속 가다보면 타운의 끝자락에 닿게 되니까요.^^

스톤 타운에서는 새것을 찾기가 힘듭니다. 낡고 오래된 것들 천지입니다. 오래된 집, 오래된 나무, 오랜 전통이 뭍어나는 사람들...

내리쬐는 햇볕과 더위도 피할 겸, 기념품 구경도 할겸, 그리고 잔지바르의 진짜 모습도 구경할 겸... 다리품 좀 파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밖에 아무리 강한 햇볕이 내리쬐어도 스톤 타운의 골목길 안쪽은 더위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합니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의 스톤 타운. 조금 어둡긴 하지만, 겁먹을 정도는 아닙니다.^^



저는 Mauwani Inn 이라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고 있습니다. (싱글룸 $40)
우리네 시골 여관이나 민박집쯤 된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가족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 인데, 저렴한 만큼 시설들도 낡고 골목 안쪽에 있지만 아주 편안하고 좋네요.
인터넷을 쓸 수 없지만... 하루나 이틀 인터넷 안쓰는 것도 축복이지요.^^
(거리에 나가면 인터넷 카페 쉽게 찾을 수 있어요.)

Mauwani Inn Single Room ($40)

청명한 날씨와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비교적 때가 묻지 않는 평화로운 섬마을.
제가 지금까지 여행한 여러 여행지 중에 첫째 아니면 둘째로 꼽을 만큼 좋은 곳입니다.
언제든 맘만 먹으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해변이 지척에 있고, 거리에서는 몇 백원만 내면 오렌지나 코코넛을 사먹을 수 있습니다.

수레에 오렌지 싣고 있는 아이가 있어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하나에 100실링이라네요. (대략 100원 근처^^)
하나 달라면서 1000실링 짜리 돈을 줬더만... (마침 잔돈이 없어서리)
아이고 이녀석...
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꼬깃꼬깃 말라 비틀어진 200실링 지폐를 네 장 꺼내네요.
그러면서 은근 슬쩍, 그냥 2개 사라는 눈짓 보내면서 오렌지를 하나 더 집어 들고 내 눈치를 보는겁니다.
그래... 그래... 그냥 두 개 줘.
그랬더니 살짝 웃으면서 오렌지 두 개를 칼로 갈라 주네요.^^

또 한 번은 레게 머리를 한 청년한테 500실링짜리 물 하나 샀는데, 물 줄 생각은 안하고 잔지바르 자랑만 줄줄이 늘어 놓고 있더군요.
한 참을 듣다가...
"근데 물 안주니?"
"응? 물? 하나에 500실링이야. 시원한 것도 있어" (뭔 소리여... 돈 내고 거스름돈까지 다 받았는데..)
"아니, 내가 물 샀잖아."
"아... 미안 미안... 여기 시원한거 있어! 이따가 저녁에 요기서 내가 먹을거 파는데, 나머지 돈은 그때 써라.^^"

^__^

마눌님 한테 문자 보냈습니다.
다음에 우리 가족이 함께 여기로 여행 오자고...^^

그 만큼 아름답고 편안한 곳이네요.

가족 여행 올 때는... 비행기 타야겠죠? ㅎㅎㅎ


'Amore Mio'라는 식당에서 바라본 해변 모습 (이곳에서 점심 먹었습니다.)

점심 메뉴 - Sea Food Pasta + 콜라 (대략 1만 2천원쯤. 맛있는건 기본!)


스톤 타운의 랜드마크인 Old Fort. 이 앞에는 잔지바르 항구와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Forodhani Garden이 있습니다.


한 창 햇볕 쨍쨍한 오후. 나도 첨벙 뛰어들고 싶다!!!


잔지바르 항구의 배들 (어선도 있고, 화물선도 있고, 여객선도 있고...)


요렇게... 옛날에는 적들을 향해 불을 뿜었겠죠?



길을 걸어가다 보면 현지인들이 말을 많이 걸어옵니다.
그냥 외국인이니까 재미삼아 말걸어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자기가 가이드 해 주겠다면서 좀 더 질기게 달라붙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그 중에는 덩치가 좀 있어서 살짝 겁을 낼만한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그냥 현지 사람들일 뿐입니다. 삐끼는 그냥 삐끼에요.
도둑도 아니고 강도도 아닙니다.
당신 뜻은 알겠는데 나는 그냥 혼자 둘러 보겠다고 두 세번 말하면 알았다고 하면서 인사하고 갑니다.
그 사람은 그냥 손님 하나 놓친 것일 뿐, 저를 이상하거나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구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외국 사람들이 가락시장에 가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어요?
시장 길 걸어가는 내내 호객하는 소리에, 팔 잡아 당기고, 어리버리하면 살짝 바가지도 쓸 수 있고...
하지만, 가락시장의 사람들은 장사를 하려는 것일 뿐이지 손님한테 해코지 하려는게 아니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바가지를 좀 쓸 수도 있고, 약간 속을 수는 있겠지만...
이곳에서 느낀 잔지바르의 호객꾼들은 그냥 우리 나라의 호객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네요.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페리 선착장에 내리는 순간부터 호객꾼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제일 먼저 택시 기사, 그 다음 자칭 가이드, 그 다음은 호텔 정하셨어요... 이런 식입니다.
호텔 정하셨으면 바로 택시 타시면 되고, 완전 무계획이라면 그냥 됐다고 말하고 스톤 타운이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하고 물어보세요.
그리고,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스톤 타운이 나오니까...
슬슬 걸어 다니면서 음식점도 찾아보고 숙소도 찾아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짐 짊어지고 다니면 그 만큼 호객꾼 만날 가능성이 높겠죠? 숙소는 가급적 미리 정하심이 좋을 듯!
예약을 하면 좋겠고, 설사 안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듯 합니다.

해질녘, 해변 모래사장에서는 신나게 축구 한 판! (모래사장이 약간 딱딱한 편이라서 축구하기에 좋겠더라구요.)


축구공 하나만 있으면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답니다.



숙소에서 물어 봤더니 해 떨어진 다음에는 좀 조심하라고 하더군요.
밤에 나갈 때는 값이 나가는 물건, 현금, 여권 같은 것은 숙소에 맡기고 가는 것이 좋답니다.
세계 어디서나 밤길은 조심해야지요.
그리고, 우리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하고,
현지인을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여행자는 항상 조심하고, 겸손해야지요.

숙소 근처 중국식당(Pagoda)에서 늦은 만찬 (마늘과 고추로 맛을 낸 게찜 - 대략 1만원 안됨)


새우 볶음밥 (쌀만 틀리고 나머지는 한국에서의 새우 볶음밥과 거의 비슷함 - 참고로, 잔지바르에서도 벼농사 짓습니다.^^)



하루만 묵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너무 아쉬울 뿐입니다.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해변, 그리고 친근하고 순박한 사람들...

참 아름다운 섬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답니다.

마눌님아, 우리 여기서 한국 게스트 하우스라도 함 해볼까나?
나 여기 넘 맘에 드는데... ㅋㅋ



그리고... 짜~잔!

케냐에 터스커(Tusker)가 있다면 탄자니아에는 킬리만자로(Kilimanjaro)가 있다!

케냐도 그헣고 탄자니아도 그렇고, 의외로 아프리카 맥주가 괜찮네요. 썩 훌륭합니다!
가격도 무척 저렴하구요. (1천원 조금 넘을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맛을 볼 수가 없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잠비아 맥주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