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꼭 히딩크처럼!

이번 호주 평가전 명단을 보면서, 허정무 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의 선수 차출 문제를 놓고 벌어진 갈등 때문에 만들어진 명단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허정무 감독이 그 정도의 낮은 수준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지요.

유난히 올드보이들에게 인색했던 허정무 감독입니다.
박지성과 이영표, 이운재를 제외하고는 모두 새얼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그 선수들만을 가지고 월드컵 예선을 무패로 통과했습니다.
득점력이 빈곤했고 뭔가 한 곳에 나사가 빠진 듯한 구멍이 있었지만
뚝심있게 끌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번 호주와의 평가전에는 올드보이들이 이름을 올립니다.

▲GK=이운재(수원) 김영광(울산) 정성룡(성남)
▲DF=이영표(알 힐랄) 김동진(제니트) 오범석(울산) 이정수(교토) 강민수 조용형(이상 제주) 김형일(포항) 조원희(위건)
▲MF=박지성(맨유) 김남일(고베) 기성용 김치우(이상 서울) 이청용(볼턴) 염기훈(울산) 김정우(성남) 이승현(부산)
▲FW=이동국(전북) 박주영(AS모나코) 이근호(이와타) 설기현(풀럼)

자... 한 번 이야기를 풀어 보자구요.

간만에 이름을 올린 김남일, 설기현. 그리고, 지난 파라과이전부터 이름을 올린 이동국.

이들에게 대표팀은 이제 상당히 낯선 팀이고, 넘어야할 벽이 생겼습니다.
즉, 그들 없이 꾸려지는 팀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지난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이동국 또한 여실히 보여줬지요.
이미 그와 손발을 맞추던 팀이 아니었습니다.
결국은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마무리된 대표팀 복귀전이 되어 버렸고
이동국 본인은 물론 그 경기를 지켜본 다른 올드보이들에게도 같은 느낌이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저의 성급한 결론일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이번 호주와의 평가전은 매우 높은 수준의 경기를 펼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간만에 함께 발을 맞추는 선수들의 경기력이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더 낫다고 봅니다.)
그리고, 자기들 없이 꾸려진 기존의 선수들 대비 우수성을 스스로 입증해야만 합니다.

좋은 결과로 호주와의 평가전이 마무리된다면, 허정무 감독은 슬쩍 웃음을 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존 선수들만으로는 부족했던 부분을 메꿈과 동시에
올드보이들에게도 더 높은 수준의 희생, 보다 낮은 자세에서의 팀 플레이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아울러, 기존 선수들에게는 자극제가 되고 더 높은 수준의 목표지를 주게 됩니다.

만약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손해 볼 것은 없겠죠?
이미 '허정무의 팀'을 하나 만들어 놨으니까요.
그리고, 아직 남은 기간은 길고... 최종 멤버 구성은 얼마든지 변경 가능하니까요.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지만... 이 정도를 우연에 기댈만큼 허정무 감독이 허술한 사람이 아닐겁니다.
그들을 불러들일 적절한 타이밍을 찾았을 테고
대표팀 차출 갈등 문제에 부딪쳤을 때,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면서 프로연맹에 끌려가기만 하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결코 갈등을 야기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은게 좋은거로만 가지도 않을 듯 합니다. ^.^

호주와의 평가전이 기대되는군요.
위에 멤버를 함 보세요. 이들이 제대로 팀웍을 이루어 내고,
거기서 다시 베스트 11을 가려낸다고 생각해 보면 괜찮은 그림이 나올 듯 합니다.

히딩크도 그랬지요.
이미 과거에 명성을 쌓고 기량이 검증된 선수들의 경우에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빈 자리를 메울 자신의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부동의 수비수 홍명보 마저도 앳된 송종국과 주전 다툼을 할 정도로...
유명 선수들에게는 인색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존 선수들을 칭찬하면서도, 부상중인 황선홍이 복귀할 자리는 생각을 했었고...

한 때 주름잡았던 선수들....
이 선수들 결코 허깨비가 아닙니다.
딱 하나만 보면 됩니다. 몸 상태와 정신이 준비 되었는가!
그거만 되어 있다면 팀웍이나 감독의 의도, 전술적인 움직임은 금새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의
기량과 경험을 갖춘 선수들이니까요.

하지만...
허정무 감독이 히딩크보다는 덜 너구리 같다는 점!
굳이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될 타이밍에,
좀 더 명분이 쌓이기 전에 쓴소리를 하는 바람에 괜한 힘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는 듯!

이동국 차출 문제는 감독이 너무 민감하게 속내를 드러냈던 것 같습니다.
이번 대표팀 구성할 때도, 대표팀 차출 문제를 빗겨가기 위한 수단으로 비춰지기 때문에
간만에 소집되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동기부여가 조금 약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래도, 적절한 시기에 이동국, 설기현, 김남일 같은 선수를 부른 것은
우리 대표팀에 좋은 상승효과를 줄 것 같습니다.
(신예 이승현 선수가 재발탁 된것도 좋구요.)

아직 남아 있는 옵션도 있습니다.
이번에 발탁하지 않은 조재진이나 안정환, 차두리의 경우 완전 물건너 간 것인지 아닌지가
여전히 확정적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감독 입장에서 문은 항상 열어놓아야겠지요.
설사 내심 아니라고 결론이 내려졌더라도, 그 속을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다고 보입니다.
그들이 일본이나 중국 리그에서 치고 올라올 때, 적절한 시기에 한 번은 불러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다만... 이동국을 부를 때처럼 먼저 선수를 깎아 내리고 부르는 것은 너무 솔직해 보입니다.
맨 마지막 판단이 섰을 때 깎아 내려도 늦지 않습니다.
그 전까지는 감독이 요구하는 것들만 흘려주면 될 듯.... ^^

(감독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 수도 있죠.
능구렁이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자기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면 그것 만으로도 충실한 감독이니까요.)

PS) 아직 하나는 비어 보입니다.
중앙 수비는 여전히 들쑥날쑥... 주인이 없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