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이 서울에 지면 유난히 배가 아프다.

2008. 7. 7. 10:20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포항 스틸러스가 질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의기소침해 진다.
수원이나 성남에게 지면 분하고 열받는다.
서울에 지면... 분하고 열받는다기 보다는 밸이 꼬인다고나 할까?

수원과 성남은... 포항보다 강팀이다.
수원은 과거 포항이 누렸던 "당대 최고" "막강 우승후보" "스타군단" 이라는 이미지를
가져가 버렸기 때문에 포항 팬들로서는 절대 지기 싫은 타도의 대상이 된 듯 하다.

성남 역시 포항보다 강하다.
특히, 1995년 챔피언 결정전의 악몽을 남긴 팀이기 때문에 포항 팬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팀이다.
(10년도 넘은 일이다. 하지만, 당시 최고 전성기를 달리던 포항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질 수 없는 최고의 전력으로 깨졌기 때문에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두 팀 모두 작년(2007년) 플레이오프와 챔피언 결정전을 통해서
소기의 앙갚음(^.^)은 한 셈이다.
가장 중요한 우승의 문턱에서 우리에게 좌절을 안긴 두 팀을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뭉갰으니까...
우리의 자존심이 약간은 회복된 셈이다.

수원과 성남의 팬들은 포항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포항 팬 입장에서는...
수원이나 성남과의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는 무의식적인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게 만드는 라이벌이 분명하다.

...

서울은... 포항과 좀 독특한 관계이다.
라이벌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서울을 잡기 위해서 선수들이나 팬들이 눈에 핏대를 세우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른 팀에 비해서 서울에 졌을 때는 아주 심하게 밸이 꼬이는 것으로 볼 때
뭔가 특별한 관계 속에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경상도 촌놈에게는 서울놈이 괜히 밉게 보인다?
서울이란 이미지는...
항상 세련되고, 무엇이든 앞서가며, 트렌드의 맨 앞줄에 서 있고,
지방의 촌놈들이 몇 년을 용을 써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아주 쉽게 해치우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 촌놈은 애써서 서울의 사내들은 여자애 같고
배시시 웃는 꼴이 영 시덥지가 않다.
왠지... 우직하고 무뚝뚝하고 겉으로 내색 않하는 자기가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마케팅과 팬 서비스에서 앞서가고, 언제나 뉴스 거리가 넘쳐나며,
모든 선수들이 뛰고 싶어하는 팀이 서울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축구경기장은 포항에 있지만,
가장 크고 멋진 신상품 축구장은 서울에 있다.
똑 같은 외국인 감독이지만, 우리의 감독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한 브라질 출신의 젊은이고
서울의 감독은 국제적 명성을 가진 뉴스메이커이다.
우리의 가슴에는 자존심과 자부심이 가득한데...
현실적으로 그만큼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는데...
서울은 서울이라는 이유로 그걸 가졌다는 것이 못내 못마땅한...
어찌보면, 부럽기 때문에 그만큼 배알이 꼬이는 모양이다.

박주영 때문에?
포항으로 왔어야할 박주영이 서울에서 뛴다.
그냥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등장할 때부터 천재소리를 들었던 선수이다.
박주영으로서는 법과 제도의 틀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팀을 선택한 것이지만
이것도 포항 팬들의 입장에서는 서울에 대들고 싶은 하나의 이유는 될 것 같다.
(뭐... 예전에 비해 이런 감정은 거의 없어진 듯 하다.)

그렇다면 축구는?
솔직히 결정적인 것은 이거다.
최근 들어서 포항이 서울에 줄창 깨진다는 것에 열받는 것이고
대부분 깨질 때는 골을 많이 먹으면서 깨지니까 더 열받는 것이고
작정을 한 듯이 한 선수에게 골을 몰아주고, 다음날 헤드라인에 상대팀의 선수가 등장하는 것이 약오른다.
수원이나 성남에 비해서 우리보다 딱히 강하다는 평가도 받지 못하는데
유독 이 팀을 만나면 화려한 축제의 어릿광대가 되는 것 같아서 영 기분이 찝찝하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번 ^^

...

이제 11월 9일이 되어야 서울과 포항에서 다시 맞붙는다.
넉달 뒤에서는... 홈에서 이 찝찌름한 기분을 싹 날려줄 수 있을까?

촌놈이 서울에서 어깨 한 번 쫙 펼 수 있게 해줄 수 없나?
붙는 족족 축구 경기만 잡아줘도 서울에서 큰소리 빵빵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거 좀... 안되겠니? 그렇게 어렵니?
서울 시내에서 포항 스틸러스의 레플리카를 입고 다니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의 날개 하나만 달아주면 딱 좋겠는데 말이야...

포항 스틸러스, 좀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