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2. 23. 14:18ㆍ축구가 뭐길래/축구란?
혹시 우리는 이런 감독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 심하게는... 이런 감독에게 현혹되는 것은 아닐까요?
립싱크 가수가 100만장이 넘게 음반을 파는 것과 그의 음악성이 전혀 매치가 안되듯이, 우리가 판단하는 감독의 능력도 우리가 밖에서 바라보는 인상과는 다를 것입니다.
빠방한 배경을 가질 것
당신의 이력서에는 월드컵 8강 이상의 대표팀을 지도한 경력이 있거나, 유럽 빅5 클럽팀 지도 경력, 또는 월드컵 근처에도 못가던 팀을 이끌고 월드컵에 진출하여 16강에 진출시킨 정도의 경력은 있어야 한다.
경력이 거기에 약간 못미친다면, 당신의 스승이나 후견인이 위의 세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인물이면 되겠다.
문제는 당신이 한국의 어떤 코치나 대한축구협회의 기술위원보다도 전문가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다. 당신이 충분히 유명하다면 당신의 말은 곧 한국축구의 법이다!
한국인 코치를 선임할 것
유명하면서 흠잡을 데가 없는, 평판이 좋은 한국인 코치를 스탭에 포함시켜야 한다. 실력과 덕망을 갖추면 최상이지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얼굴 마담으로 꼭 필요하다.
굳이 지도력이 검증된 현역 전문 코치는 아니라도 좋다. '평판'과 '인상'이 중요하다.
독특한 훈련법을 소개할 것
지구상의 다른 코치들은 사용하지 않는 당신만의 독특한 훈련법, 화제가 될만한 훈련법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가진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기 바란다. 훈련 효과는 차치하고, 그 훈련을 왜 시행하며 어떤 것을 기대한다는 정도의 답변만 준비할 수 있으면 된다.
심지어 몸싸움 훈련을 위해서 '스모'를 연습시킨다고 해도, 당신이 유명한 사람이라면 그 방법은 크게 포장되어서 다음날 신문에 나갈 것이다. 최대한 신기한 것을 고안해 낼 것!
옷차림에 신경 쓸 것
경기에 나설 때는 양복 수트를, 경기장 밖에서는 캐주얼을 입는다. 경기에 나설 때는 절대로 트레이닝복을 입지 말것이며, 경기장 밖에서는 공식적인 예절이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면 캐주얼을 입기 바란다. 경기중에는 근엄하고 엄격한 사람이라는 것, 경기장 밖에서는 세련되고 활동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유지하지 위한 것이다.
적당한 명품 브랜드를 활용해야 하며, 가급적이면 요란하지 말아야 한다. 헤어 스타일은 그냥 자연스럽게, '일하는 사람' 이라는 인상 정도면 되겠다.
스탭은 최대한 근사하게 꾸릴 것
코치는 최대한 분업화하고 대략 5-6명 선에서 꾸려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역할을 수행하는 스탭이 1-2명은 있어야 한다. 정 안된다면 '심리 담당 코치' 같은 것을 두어도 상관없다. 당신이 그 코치의 역할을 설명할 수만 있으면 된다.
입국 즉시 K-리그부터 관전할 것
선수를 파악하건 말건 무조건 가장 빠른 시일내에 K-리그를 관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당연히 언론이 알아야만 한다.
경기내내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또한 신비감이 나도록 당신만의 언어나 표기를 잔뜩 사용하라.)
어떤 선수를 눈여겨 보았느냐고 물어보면, "K-리그의 모든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의 후보자다!"라고 멋지게 쏘아 붙여라.
K-리그의 장단점에 대하여 물어보면, "역동적이고 힘이 넘친다. 기술적으로는 세계적인 수준에 못미칠지 몰라도, 선수들의 의욕과 투지가 돋보인다. 내가 원하는 선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하면 된다.
선수단에 엄포를 놓을 것
선수단을 소집하자 마자, 또는 소집전에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엄포를 놓아야 한다. 당신이 아는 사람중에 한국인이 있다면 그 사람을 활용해도 된다. (이 부분은 철저히 현지화가 필요하다.) 가령, 감독이 필드에서 선수들을 모아 놓고 설명할 때는 "열중 쉬어" 자세를 유지하라는 다소 거북한 명령을 내려도 상관없다.
한 가지만으로는 부족하고, 2-3가지의 "선수단 지침"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에서 어떤 선수에 대해 평가를 부탁하면, "그는 나머지 선수들과 똑 같은 경쟁자일 뿐이다" 내지는 "여태까지는 어땠을지 몰라도 나와 함께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등의 엄포성 발언만 하고 구체적인 평가는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전임자와 반대의 입장을 취할 것
전입자가 어렵다고 한 부분은 자신있다고 말하고, 전임자가 크게 강조했던 부분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취급한다. 가령, 전임자가 "한국 축구는 수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면, "최상의 수비는 공격에서 나온다. 한국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골이 필요하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것을 지적하면 된다.
(만약 당신의 전임자가 크게 성공을 거두고 한국을 떠났다면 절대 한국 대표팀의 감독 제의를 수락하지 말아야 한다.)
한 가지 쯤은 선수들에게 서비스를 할 것
딱 하나만, 선수들이 좋아할만한 것을 대한축구협회에 요청하라. 물론 이것은 생색을 내기 위한 것일 뿐이며, 경우에 따라서 선수단의 분이기를 Up시켜서 전력에 도움이 된다는 해석이 가능할테니까...
적당히 대한축구협회가 대표팀 운영 예산으로 집행 가능한 선이면 좋을 것이다. 새로 무엇인가를 도입하는 것 보다는, 기존에 선수들에게 제공되던 서비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것을 주문하면 된다.
숙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다거나, 훈련장 설비를 개선하는 정도면 될 것이다.
연습중에 소리를 많이 지를 것
훈련중에는 직접 필드에서 움직이면서 뭔가를 계속 주문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Go', 'Move', 'Run' 따위의 누구나 사용하는 쉬운 단어라든가 'Depence', 'Pass' 등의 축구 용어를 피하고 새로운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할 것! 거창하고 어려울 것 없이 'Be Brave', 'Think' 같은 감성 용어를 적당히 사용하면 된다.
반드시 한 가지는 시험할 것
이것은 당신이 졌을 때에 대비한 것이다. 기용하지 않던 선수를 기용한다거나, 당신이 구상한 것중 생소하고 시험적인 것을 시도하면 된다. 이겼을 때도 졌을 때도, 시종일관 그것을 강조하면 된다.
월드컵 본선 매치가 아니라면 설사 그 경기가 한일전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때때로 스캔들을 만들 것
당신의 이미지에 크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좀 느슨한 시점에 스캔들이나 그에 유사하게 구설수에 오를만한 짓을 해 보기 바란다. 언론을 당신에게 쏠리게 함과 동시에, 언론이나 여론이 당신에게 호의적인가 악의적인가를 판단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심한 것 말고... 가벼운 것으로... 경기장에서 험한 욕을 한다거나, 기자들에게 축구공을 내질러 버리는 정도면 될 것 같다. 당신이 호구가 아니란 걸 보여줄 수 있다.
끊임없이 정신력을 강조할 것
아무리 많이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경기에 졌을 때 정신력 때문에 졌다는 표현은 좀 위험하다. (우리보다 약한 팀에게 졌을 때는 써먹을 수도 있겠다.)
끊임 없이 정신력을 강조하고 경기에 이긴 후에는 "우리의 이기고자하는 열망이 상대편을 능가했다"라는 식의 표현을 해 주면 된다.
한국의 축구 팬들이 겉으로는 거부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정신력이 한국 축구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유머를 구사할 것
당신이 유머러스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언론에 노출된 상태에서 한 마디 쯤의 유머를 던지는 것이다.
훈련중이라든가 평상시에는 오히려 유머를 던지지 않는 것이 좋고, 훈련을 마치고 나올때라던가 인터뷰할 때 썰렁한 말 한 마디나 장난스런 행동 하나면 족하다.
예를 들어, 통역이 당신의 말을 전달 할 때 귀에다 손을 갖다 대고 엿듣는 척을 한다던가 연습경기 하기 전에 기자에게 호루라기를 건네며 심판을 한 번 보겠냐는 식의 약간 유치한 장난만 쳐도 훌륭하다.
겁먹지 말고 뻥을 칠 것
중요한 것은 먼 미래에 대해 뻥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다음 경기를 놓고 뻥을 치는 것은 자살행위다. 월드컵 본선에서 틀림없이 한국의 팬들이 원하는 이상의 결과를 낼 것이라는 뻥이 필요하다.
특히, 언론이나 팬들이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서 당신이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일단 뻥으로 때우는 것이 유리하다.
이도저도 안되면 히딩크를 따라할 것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냥 2002년에 히딩크가 했던 것을 따라하면 된다. 여기에 당신만의 개성이 약간 들어가면 되는데, 어설픈 개성을 나타내는 것보다 그냥 히딩크를 따라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왜 히딩크를 따라 하냐고 물으면, "이것은 세계적인 팀이라면 당연히 구사하는 방법"이라고 딱 끊어서 이야기하면 된다. 그 팀이 어느 팀이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지만, 만약 물어본다면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씩 쳐다보면 된다. (단, 너무 많이 써먹지는 말 것!)
끝까지 안되면 대한축구협회를 씹으며 떠날 것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결국은 당신이 무능한 감독으로 찍힐 것 같으면 대한축구협회의 무능으로 몰아부치고 미련없이 떠나면 된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중간중간에 대한축구협회가 들어주기 다소 버거운 요구도 좀 해야 하는데... 마땅히 그런것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나와 우리 선수들, 스탭, 한국의 축구팬들... 모두가 열심히 노력했지만 꿈을 이루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라는 변명을 하면 된다.
왜냐하면... 실제로 당신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테니까... ^^
PS) 지도자로서의 당신의 실력이나 코칭 철학, 당신만의 고유전술, 구체적인 훈련 계획과 관리는 그냥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된다. (코치들이 알아서 잘 챙기겠지?)
한국 대표팀에게는 마지막 결과가 중요할 뿐, 과정은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사실 결과란 것도 당신이 떠나면 그뿐이 아닌까...)
그저... 당신이 잘하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당신이 이 바닥의 전문가라는 인상만 끝까지 유지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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