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시인 조지훈이 말하는 주도 18단

2006. 2. 23. 13:33사는게 뭐길래/볼거리먹거리놀거리

나는 어디에 해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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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에도 단이있다.(酒道有段)

을 마시면 누구나 다 기고만장하여 영웅호걸이 되고 위인현사도 안중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주정만 하면다 주정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酒曆)과 주력(酒力)을 당장 알아낼수 있다. 주정도 교양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이 많이 마시도 많이 떠드는 것만으로 주격은 높아지지 않는다. 주도에도 엄연히 단(段)이 있다는 말이다.
첫째 을 마신 연륜이 문제요, 둘째 같이 을 마신 친구가 문제요, 셋째는 마신 기회가 문제요, 넷째 을 마신 동기, 다섯째 버릇,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그 단의 높이가 어떤 것인가를 알수있다.

1) 부주(不酒) --- 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2) 외주(畏酒) --- 을 마시긴 마시나 을 겁내는 사람
3) 민주(憫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 은주(隱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
5) 상주(商酒) --- 마실 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이익이 있을때만 을 내는 사람
6) 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하여 을 마시는 사람
7) 수주(睡酒) --- 잠이 안 와서 을 마시는 사람
8) 반주(飯酒) --- 밥맛을 돋우기 위해 을 마시는 사람
9) 학주(學酒) --- 의 진경(眞境)을 배우는 사람. 주졸(酒卒)
10) 애주(愛酒) --- 을 취미로 맛보는 사람. 주도(酒從) 1단
11) 기주(嗜酒) --- 의 진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2단
12) 탐주(耽酒) --- 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주호(酒豪) 3단
13) 폭주(暴酒) ---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4단
14) 장주(長酒) --- 주도 삼매에 든 사람. 주선(酒仙) 5단
15) 석주(惜酒) --- 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6단
16) 낙주(樂酒) ---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주성(酒聖) 7단
17) 관주(觀酒) --- 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 없는 사람. 주종(酒宗) 8단
18) 폐주(廢酒: 열반주(涅槃酒)) --- 로 말미암아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9단


부주,외주,민주,은주는 의 진경,진미를 모르는 사람들이요, 상주,색주,수주,반주는 목적을 위하여 마시는 이니 의 진체(眞諦)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학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 초급을 주고, 주졸(酒卒)이란 칭호를 줄 수 있다. 반주는 2급이요, 차례로 내려가서 부주가 9급이니 그 이하는 척주 (斥酒) 반(反)주당들이다.
애주, 기주, 탐주, 폭주는 의 진미, 진경을 오달한 사람이요, 장주, 석주, 낙주, 관주는 의 진미를 체득하고 다시 한번 넘어서 임운목적(任運目適)하는 사람들이다. 애주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주도의 초단 을 주도 (酒道)란 칭호를 줄 수 있다.
기주가 2단이요, 차례로 올라가서 열반주가 9단으로 명인급이다. 그 이상은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니니 단을 매길 수 없다. 그러나 주도의 단은 때와 곳에 따라 , 그 질량의 조건에 따라 비약이 심하고 갈등이 심하다. 다만 이 대강령만은 확고한 것이니 유단의 살력을 얻자면 수업료가 기백만 금이 들것이요, 수행년한이 또한 기십 년이 필요한 것이다. (단 천재는 차한에 부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