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목련이 진들

2006. 5. 2. 10:19사는게 뭐길래/볼거리먹거리놀거리

대학시절...
아무 생각없이 그저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별것 아닌 소일거리를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낮에는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밤에는 어김 없이 술 한 잔을 걸치고
공부는 그저 나의 취미 생활 중 하나인양
대강 기분 내키면 하는 둥 마는 둥...

그즈음...
친구 방 책꽃이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박용주라는 시인의 시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시인이라면 거창하게...
그가 이 시를 쓴 것이 중학생이었다던가?

매일 매일 흐리멍텅한 눈으로
웃고 떠들면서
시덥잖은 것들로 일상을 꾸려가는 나로서는...
궁금했습니다...
대체 뭐가... 무엇 때문에...
한 어린 소년을 감성을 이렇게 칼날처럼 세웠을까...
난 봄이오면 미팅이나 소개팅할 생각,
이번 학기에는 뭘 하면서 놀까,
올해에는 어디로 놀러 갈까... 하는 생각들로
봄바람 솔솔불고, 봄이 너무 좋고, 목력은 너무 이쁜데...

부끄럽게도...
시간이 많이 지나고서야...
저는 그 소년 박용주가 느꼈을 오월의 감성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마 ...
철이 드는데 무척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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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이 진들

-박용주 -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이 땅에 봄이 오면
소리없이 스러졌던 영혼들이
흰 빛 꽃잎이 되어
우리네 가슴 속에 또 하나의
목련을 피우는 것을

그것은
기쁨처럼 환한 아침을 열던
설레임의 꽃이 아니요
오월의 슬픈 함성으로
한닢 한닢 떨어져
우리들의 가슴에 아픔으로 피어나는
순결한 꽃인 것을

눈부신 흰 빛으로 다시 피어
살아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마냥 푸른 하늘도 눈물짓는
우리들 오월의 꽃이
아직도 애처러운 눈빛을 하는데
한낱 목련이 진들
무에 그리 슬프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