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아, 월드컵 좀 보고 들어오지 그랬냐!

2014. 7. 13. 21:56월드컵 여행 - 2014 브라질

뭐가 이쁘다고 결승전까지 보여주냐구요? ㅎㅎ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선수들이 과연 우리 팬들이 느끼는 이 감정과 기분을 어느정도 이해할까..."


솔직히 저는 그리 후한 점수를 줄것 같지 않네요.

그들 중 몇 명이나 일반 관중석에서 경기에 빠져 본 경험이 있을까요?

그들 중에 진정 자신의 가슴속에 새겨진 팀이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대한민국의 승리를 보기 위해 버스에서 새우잠을 자며 달려가 본 경험이 있는 선수가 있을까요?

경기장에 갈 때의 설레임, 버스나 전철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볼 때의 반가움, 반대로 상대팀 팬을 만났을 떄의 묘한 신경전이나 경계심... 이걸 느껴본 선수가 몇이나 될까...





경기가 끝난 후 돌아오는 길은 어떻구요.

이겼을 때는 마냥 신나고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웃고 떠들고 자랑하며 돌아오는 길. 

그리고, 그 이후에 다시 모인 술자리에서도 한껏 뻐기며 자랑스럽기만한 하루!

만나는 모두에게 축하를 받고, 기꺼이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자랑스러운 우리 팀의 머플러도 아낌없이 선물로 주고 싶은 의기양양함으로 가득하죠. 마음껏 거만해도 그날은 우리가 주인공인 하루로 마감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경기에 졌을 때는 어떨까요?

선수들은 경기에 진 후 조용히 버스에 올라 숙소로 돌아가겠죠. 별다른 말을 하는 사람도 없이, 조용히 뒤돌아보는 시간, 칙칙한 적막... 뭐, 그럴거 같습니다. TV를 보는 사람들도 비슷하죠? 욕한번 하고, 채널 다른데로 돌리고, 그냥 술한잔 하면서 기분아 풀려라, 풀려라, 풀려라...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본 팬들에게 패한 후 돌아오는 길은 상당히 길고 무겁습니다.

숙소에 돌아오는 내내 승자들의 노래와 웃음 소리를 들으며 같은 버스, 같은 전철을 타고 돌아옵니다.

때론 그들의 조롱어린 눈길을, 한껏 거만한 조롱 섞인 위로를 듣고도 못 들은 척 외면해야 할 때도 있고요.

현지인(브라질 사람)들의 위로는 아픈 기억만 더 떠오르게 만들뿐이죠.





우리 선수들 중에 이러한 팬들의 마음을 직접 경험한 선수... 없겠죠...

경험은 고사하고 월드컵 한 경기를 매개로 얼마나 많은 스토리와 감정의 폭발이 일어나는지를 본 적조차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그런 경험이 있었다면 상파울루에서의 마지막 경기 후에 붉은악마를 향해 익숙한 듯 인사하고 부랴부랴 경기장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선수들보다 더 힘들게, 더 먼길을 돌아 그곳까지 온 수 많은 팬들이 경기장 구석구석에서 팀을 응원했습니다. 월드컵에서의 마지막 경기... 4년의 시간을 기다렸던 팬들에게 다시 4년의 기다림이 시작되는 순간이죠. 그런 경기를 팬의 입장, 팬의 심정으로 단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그리 쉽게 돌아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경기장을 한바퀴 돌면서 오랜시간을 기다려 줬고, 멀리까지 와서 아낌 없는 지지를 보내줬으며, 다시 4년을 기다려 줄 팬들에게 진심으로 인사를 했을 것입니다. 팬들 또한 진심어린 박수로 마지막 격려를 보내줬을 것이구요.

우리 선수들이 조별 예선 경기가 끝난 후 벨기에:미국의 16강전을 현장에서 봤다면 미국 선수들의 그러한 모습을 봤을 것이고, 아르헨티나:벨기에의 8강전을 봤다면 벨기에의 그러한 모습을 봤을겁니다. 이것은 팬들이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팬이 되어 한 번이라도 관중석에 서 본 경험이 있다면 그 순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리가 없겠죠.


또한 만약 우리 선수들이 16강전이나 8강전을 직접 보면서 승자의 위용과 승리한 팀의 팬들이 얼마나 당당하고 자랑스러운지를 직접 느꼈다면, 반대로 패배를 했을지언정 벨기에나 미국 선수들이 얼마나 큰 열정과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경기에 임했는지를 직접 보았다면, 또한 그렇게 했기 때문에 비록 패했을지라도 팬들이 얼마든지 당당할 수 있음을 직접 보았다면... 아마도 4년 뒤에 다시 월드컵에 나서는 선수들의 마음은 다를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는 월드컵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이 부랴부랴 귀국하는 대신 다른 월드컵 경기를 직접 관전하는 기회를 꼭 가졌으면 합니다. 비단 국가대표 선수들만이 아닙니다.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다른 선수들도 가능하다면 그 무대를 직접 보는 기회를 꼭 가졌으면 합니다.우리의 청소년 대표 선수들에게 월드컵 관전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경기의 내용이나 기술, 전술 트렌드를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곳이 얼마나 큰 열정의 용광로인지, 그리고 그 자리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그곳을 찾는 팬들이 얼마나 절실한 마음으로 함께 교감하는지... 직접 경험을 했으면 합니다.


월드컵에 출전하는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존경을 받는지 보고 느꼈으면합니다.

승리한 팀이 경기장에서 얼마나 큰 찬사를 받고 특권을 누리는가를 직접 보았으면 합니다.

반면에 용맹하지 못한 팀, 열정을 활활 태워버리지 못한 팀이 얼마나 초라한지, 그런 팀의 팬이 얼마나 쪽팔린지도 직접 경험해 보았으면 합니다.


....


요즘 잘 나가는 저의 자랑스런 포항 스틸러스!

사람들은 포항의 화수분 같은 유소년 시스템을 말하곤 합니다. 과연 포항의 시스템만 잘 돌아가고 다른 팀은 잘 안돌아가는 걸까요? 물론, 포항이 조금이라도 더 잘 운영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점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포항 유스 시스템의 성공 요인 중에서 과거 어느 한 순간 포항 스틸러스의 팬으로 스틸야드에 있었던 경험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팬으로서 느꼈던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기 때문에 더 간절하고, 더 집중하고, 더 열정적으로 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팬들과도 더 가깝고 진솔하게 교감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에 팀을 새긴 선수들을 배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유스 시스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뛰기에 앞서서 팬의 한 사람으로 그 무대를 먼저 경험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내가 보았던 그 꿈의 무대에서 직접 뛰게 되는 순간이기에, 메시가 찬사를 받으며 뛰던 무대에 내가 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승리를 향한 더 큰 열정, 당당함과 담대함이 그들의 플레이에서도 뿜어져 나올거라 생각합니다.


뒷풀이 회식, 이과수 폭포 관광... 머 그럴 수도 있죠. 결과는 안좋았지만 분명 다들 최선을 다했을테고 선수단도 휴식과 힐링이 필요했겠죠. 하지만 말입니다. 뒷풀이 회식이나 폭포 관광 보다... 단 한 경기라도 월드컵 경기를 팬의 입장에서 보고 올 수는 없었는지요? 사비를 들여서 유럽 축구 견학도 가고 코칭 연수도 가는 사람들이 정작 세계에서 가장 크고 볼만한 월드컵 경기를 현장에서 볼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는 왜 그렇게 쉽게 넘겨 버리는지요?


선수로 월드컵에 나가기 전에 팬으로서 월드컵을 먼저 경험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월드컵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주인공 답게 모든걸 누리고 즐기고 보여줄 수 있는 선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결승전을 끝으로 2014 브라질 월드컵도 막을 내리겠네요.

다시 4년을 준비하고... 또 기다리게 되겠지요.

4년 뒤에는 더 당당한 대한민국 팀을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