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이야기

2013. 8. 26. 22:54사는게 뭐길래/건달농부 건달농법

처음 농사를 짓기 전, 아직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지 않은 어느 봄날.

동네 아저씨들께 초보 농사꾼이 100평정도 농사를 지을려면 어쩌면 좋을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옥수수 심어. 씨 심고, 비료 한 번만 주면 돼!"


어른들 말씀으로는 옥수수나 들깨, 콩 같은 것이 손이 덜가는 작물이라고 하시더군요.

(실제로 그런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옥수수는 개중 쓸모가 있을 듯 했습니다.

프로 농부님들 말씀처럼 농사 짓기 쉬운 것도 있겠지만, 수확해서 우리가 먹기도 좋고 아는 사람들과 나눠 먹기도 좋구요. 별다른 조리법이나 가공처리 없이, 그냥 쪄서 먹으면 그뿐!


덕분에 처음 옥수수를 심어 보게 되었고, 지금은 제법 많은 옥수수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프로 농부님들처럼 관리를 못하기 때문에 모양도 제멋대로고 크기도 작지만, 요즘은 미처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옥수수를 수확하고 있습니다. ^^


미백 2호


옥수수는 찰옥수수와 메옥수수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간식으로 쪄서 먹는 옥수수는 쫀득~한 찰기가 있는 찰옥수수입니다. 메옥수수는 찰기가 없는 것으로, 과거에 가루를 만들거나 멧돌에 갈아서 쌀 대용으로 쓰던 것이지요.


옥수수하면 강원도죠?

단양은 행정구역상 충북이긴하지만, 실제로는 강원도 영월에 바로 붙어 있고 말투나 생활 문화도 강원도 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요즘 강원도 지역에서 잘 나가는 찰옥수수가 바로 미백2호!

(대학찰옥수수, 얼룩찰옥수수 등의 다른 종자도 많습니다.)

맛 좋고 수확량 좋은 종자라고 하네요. 실제로 먹어보니... 당연히 맛있구요 ^^


미백2호 찰옥수수는 강원도 지역 농약사(종묘사)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다고 하더라구요. 인터넷에서 찾기도 쉽지 않구요. 아직 종자가 널리 사용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사진에 있는 것 같은 250알 한 봉지에 8천원정도 합니다.

옥수수 색깔이 약간 붉으스름하죠? 실물은 좀 더 핑크색에 가깝습니다.

이건 원래 종자가 이런 색은 아닙니다. 종자의 발아율을 높이고 저장성을 좋게하기 위해서 소독처리를 하는데, 소독처리가 된 종자는 사진처럼 일부러 색을 입힌다고 합니다.

종자를 심기 전에 하룻밤 정도 물에 불리면 발아도 빨라지고 발아율도 높아지는데, 이 때 물에 담가 보면 붉은색이 씻겨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알씩 심기



프로 농부님 말씀이 두 알씩 심은 후에, 발아되는 것을 보고 부실한 놈은 없애라고 하시더군요.

2주 정도(아님 3주) 되면 싹이 올라오는데, 거의 대부분 두 개씩 올라오는 걸로 봐서 발아율이 상당히 좋은 모양입니다. 제 생각에 그냥 한 알씩만 심어도 괜찮을 듯 하네요.

동네의 다른 옥수수 밭은 검은 비닐로 멀칭을 해 주는데, 저는 뭐... 대충 건달농법이니 그딴거 하지 않고 대강 키웁니다. ^^ (멀칭을 해 주면 잡초도 억제하고 수분 증발도 막아주기 때문에 수확도 좋아지고 일손도 많이 덜어준다고 합니다.)


 

비료도 주고

싹이 올라오고 잎이 5~6개 나오면 비료를 줍니다.

일부러 반은 비료를 주고 반은 비료를 주지 않아 봤는데... 비료 없이 키우기는 상당히 어려울 듯 합니다.

잎이 약간 누렇게 뜨는 놈들이 생기고, 키도 작고, 옥수수도 작습니다.


비료는 흔히 사용하는 복합비료를 옥수수 사이사이 마다 한 숟가락 정도 주면 됩니다.

(옥수수 뿌리에 비료가 직접 닿으면 옥수수가 죽는다고 하네요)

저는 한 번만 줬는데, 보통은 두 번 정도 준다고 하더라구요. 비료발 받은 옥수수는 잎 색깔이 훨씬 진하고 줄기도 굵고 큽니다.

제대로 농사를 짓는 분들은 밭에 밑거름도 두둑하게 해 주고, 비료도 때맞춰서 잘 주기 때문에 저희집 옥수수하고는 비교도 안되지요.


좌우간... 요 놈 옥수수... 영양제 잘 먹여줘야 잘 큰답니다. ^^


 



옥수수 수염이 말라가면...


옥수수가 다 자라면 수염이 까맣게 변하면서 말라 붙습니다. 여기서 조금 지나면 사진처럼  껍질이 옆으로 벌어지기도 하고, 껍질 색깔도 점점 누렇게 익습니다.

그렇니까, 수염이 까맣게 말라가면 옥수수를 먹을 시기가 된거죠.

사진처럼 껍질이 터지기 전에 딴 것이 쪄 먹으면 찰지면서 부드러운 맛이 아주 좋습니다. (옆에 사진에서 보면 아직 덜 익은 옥수수는 수염이 촉촉하게 윤기가 나면서 붉은색을 띕니다.)


저희처럼 주말에만 손을 때는 상황에서는 알맞게 익은 것만을 수확할수는 없죠. 약간 덜된 것, 알맞은, 조금은 너무 익은 것 등을 대략 보이는 대로 수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차 두고 심기

저희는 1주 또는 2주 간격으로 몇 차례에 나눠서 심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수확 시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시차를 두고 계속해서 수확하기가 좋다고 알려주시더라구요.

저희는 한 번에 많은 양을 수확해서 내다 팔 일도 없으니까요.

덕분에 처음 옥수수 수확한 후, 한 달이 넘도록 계속해서 그때그때 탱탱한 옥수수를 맛보고 있습니다.



한 번 수확하면 수레로 한 가득!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옥수수가 열심히 익어갈 때, 1시간 정도 딴 것이 요정도입니다.

과연 배고픈 시절에 구황작물 노릇 할만하죠?

물론 예전에 비해서 품종도 많이 좋아져서 저처럼 대충 키우는 초보 건달농부도 이 정도로 수확이 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알맹이를 까 보면 시중에서 사먹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크기도 작고, 튼실하게 익지 않은 놈들도 많습니다.

게다가 저희는 게으른 농부인지라 농약도 치지 않으니 벌레 먹는 놈들도 꽤 되구요.


옥수수 수염이 아주 달콤합니다. (옥수수 수염차의 달착지근하고 구수한 맛이요 ^^)

그래서 그런지 옥수수가 잘 익어가는 계절이 되면 메뚜기(곱등이)들이 수염부터 갉아 먹더라구요.

수염을 갉아먹고, 그 안에 살포시 알을 싸질러 놓고, 그 알이 또 튼실하게 애벌레가 되어서, 고놈들이 옥수수를 또 갉아먹고...^^


먹을 때는 별 문제 없습니다.

그냥... 수염 있는쪽에 벌레 먹은 부분을 뚝 부러뜨려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



아... 생명력!

작년에 짐승들의 습격으로 옥수수 밭이 완전 절단 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쓰러지고 짓이겨진 옥수수의 잔해들을 한 곳에 쌓아 두었는데...


올해 그 옥수수 시체 더미에서 새 생명이 올라왔습니다!

아마도 그때 짓이겨진 옥수수들 중에 제대로 씨알이 맺힌 놈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흙을 덮어주지도 않았는데, 잡초조차 제대로 자라지 않는 그 시체 더미에서 자라나다니!

비록 그 모양이 부실하고 위태위태하게 겨우 서 있는 모양새지만...

하여간, 살이 있는 것들의 생명력에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네요.


이 옥수수를 보면서, 몇 년전 뵈었던 한 귀농인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모든 생명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참 멋진 말이죠?


근데... 이 말씀을 하셨던 분은 이 말 때문에 부부싸움 했답니다.

왜냐면... 아이 공부시키는 문제로 아내와 상의하다가 이렇게 멋진 멘트를 날렸더니...


"그런 철학적인 말 하지 말고, 현실적인 답을 해봐!"


ㅋㅋ

남자분들... 격하게 공감 가시죠?

우리의 약점에 아내가 던진 수리검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히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