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월드컵 연대기

2010. 5. 7. 23:35월드컵 여행 - 2010, 케냐에서 남아공까지/월드컵을 기다리며


1982, 스페인
아무것도 모르던 시기입니다. 단지 제 기억속에 남아 있는 첫번째 월드컵입니다.
로시라는 선수가 방방 날았고, 그의 팀 이탈리아가 우승을 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을 뿐!
아! 몇 가지 더 기억에 남는군요!
1982 스페인 월드컵을 마친 후에 올스타전이 열렸는데... 그 경기를 본 것은 기억이 나네요.
특이하게도 당대 남미와 유럽을 대표하는 두 영웅, 펠레와 베켄바워가 두 올스타팀의 감독으로 나섰고
심지어 베켄바워는 잠시 경기에 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소련(러시아)의 다사예프라는 골키퍼가 유독 인상에 남았습니다.

1986, 멕시코
잘 아시죠? 우리나라가 32년만에 월드컵 진출을 했던 바로 그 대회! (그 이후 지금까지 쭈~우욱 연속출전^^)
이때는 저도 제법 철이 들었던 시기라서, 아시아 예선부터 대부분의 중계방송을 빠지지 않고 다 봤습니다.
지금도 그 당시의 선수들은 하나같이 저의 영웅들입니다.
차범근, 최순호, 허정무, 이태호, 정용환, 조병득, 김종부, 조광래, 최인영, 변병주, 박창선...
어찌보면 2002년보다도 더 황금멤버가 아니었나 생각되네요.
조금만 더 우리 축구가 세계 무대를 일찍 경험했더라면...
이미 1986년에 우리는 16강을 넘어서 그 이상까지도 달려가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심장을 찌르는 듯한 최순호의 그림같은 슛이 이탈리아의 골 네트를 가르던 순간이 지금도 너무 생생합니다.
그리고... 마라도나!
저는 1986년의 마라도나 이후로 그 어느 누구도 그에 필적하는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단언합니다.
현란한 기술은 물론이고, 그의 지치지 않는 대쉬와 에너지, 열정과 기쁨이 뿜어져 나오는 그의 행복한 얼굴...
드리블하며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중에도 기쁨에 겨운 표정이 넘치던 마라도나의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겁니다.
가장 아름다운 월드컵, 가장 재미있는 월드컵, 가장 기억에 남는 월드컵이 아니었나 생각되네요.

1990, 이탈리아
우리나라로서는 황보관의 캐넌 슛 외에는 솔직히 기억할게 아무것도 없는... ^^
하지만, 제게 이탈리아 월드컵은 마라도나의 눈물로 기억됩니다.
마라도나는 대략낭패 상황의 팀을 기어이 결승까지 끌고 올라왔습니다.
결국, 결승전에서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독일에게 페널티 골을 허용하면서 0대1로 패하고 말았지요.
그토록 용맹하게 적진을 달리던 선수, 축구=기쁨=열정 이라는 공식을 몸으로 보여주었던 마라도나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하염없이 울던 마라도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었습니다.
독일이 우승을 하면 월드컵이 재미 없구나...^_^

1994, 미국
이때부터 한국 축구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축구의 대 약진이 이루어진 터닝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네요.
한국은 어느덧 3회 연속 진출을 이룩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의 선전(16강진출)도 눈부셨습니다. 비록 일본이 최종예선 마지막에 어이 없이 다 따놓은 월드컵 티켓을 놓치긴 했지만, 1994년을 기점으로 일본 축구가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되면서 아시아 축구의 동반상승에 크게 기여했으니까요.
1994년은 저 개인에게 있어서 하나의 뜻깊은 계기가 되었으니...
이때부터 제가 포항 스틸야드에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황선홍 선수 되게 욕했어요. 그 이후로.... 스틸야드에서 한 경기, 두 경기 보게 되면서부터 황선홍이 얼마나 훌륭한 선수인지를 알게 되었고, 또한 그 후로 지끔까지 그의 열렬한 팬입니다.
(몇년전 제 블로그에 올린 글이 하나 있지요... 황선홍에 대한... 요기 클릭!)
이렇게... 1994년의 월드컵은 저를 TV 앞에서 축구장으로 옮겨다 준 대회였습니다.
그때는... 스틸야드에 가면...
최전방에 황선홍이 있었고, 최후방에 홍명보가 있었던 포항 스틸러스의 황금기였습니다.^^

1998, 프랑스
정말이지... 이건 두고두고 한이 남는 월드컵입니다. 성적은 다들 아실테고...
저는 개인적으로 진짜로 프랑스 월드컵은 꼭 가서 보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에 또 다짐을 했던 대회입니다.
심지어...1997년에 학회 참석차 프랑스 툴루즈에 갔을 때도, 기어이 시간을 내서 툴루즈 월드컵 경기장은 둘러보고 왔으니까요.
특히, 1997년에는 PC 통신 시절부터 함께 축구의 정을 나눠왔던 사람들이 붉은악마라는 이름으로 함께 뜻을 합치게 되었기에 저 또한 거기에 동참하면서 단단히 마음을 먹었었는데...
1997년 아시아 최종예선 기간에는 신병훈련을 받고 있었고, 1998년 월드컵 때는 병역특례(즉, 신분상으로는 군인) 중이어서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도저히 프랑스로 날아갈 수 없는...
그 해에 결혼을 했는데, 결국은 신혼여행도 해외로 못가고 경주와 제주도에서...^^
(뭐... 아시는분은 아시겠지만... 결혼식날... 결혼식 마치고 스틸야드에 축구보러 갔어요.^^ 요기 클릭!)

그러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저에게 하나의 숙제과 꿈을 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월드컵 원정을 다녀온 붉은악마의 친구들이 말하기를... 축구도 그렇고 문화도 그렇고...
우리가 너무나도 변방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답니다.
그리고...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결국 섬나라였어!"
다른 나라로 갈 때, 비행기와 배로 가야만 하는 나라는 섬나라나 마찬가지지요?
당시 함께 축구판에서 어울리던 사람들과 약속아닌 약속을 하게 됩니다.
"다음에 유럽에서 월드컵이 다시 열리게 되면, 그 때는 같이 열차를 타고 대륙을 가로질러서 한 번 가보자!"
그리고, 이 꿈은 2006년을 기약하게 됩니다.

2002, 대~한민국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___^)

2006, 독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후에 축구판 친구들과 나누었던 꿈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한국에서 출발하여 북한을 통과해서 유럽까지 갈 수는 없었지만...
인천에서 배편을 이용해 중국 단둥(신의주 접경)에서 월드컵 육로원정을 시작했고, 중국-몽골-러시아-벨로루시-폴란드를 거쳐 독일까지 이르는... 1만 km가 넘는 월드컵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술 한잔 기울이며 나누었던 20대 끝자락의 꿈 한 조각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비록, 북한을 통과하는 진정한 육로원정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꿈으로 남겨두고...
다시 유럽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때에 한 번 더 도전해 보렵니다.

무엇보다도 '축제로서의 월드컵'을 느낀 것이 가장 큰 감동이었습니다.
2002년에는 승리와 함성에 도취되어서 축제로서의 월드컵을 즐기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승리의 찬가를 불렀지 축제의 노래를 부른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기는 팀도 진 팀도, 심지어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나라들까지... 이념과 갈등을 모두 넘어서, 축구공 하나로 모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축제... 독일에서 열린 월드컵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Cup is Fest!"

2010, 남아공
사실 배를 타고 한 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장난 아니더군요. 우리나라에서 남아공 더반까지 직빵으로 가는 철광석 운반선이 있긴 하더군요. 선장 3명이 3교대로 주구장창 22일간 내달린답니다.^^ (철광선 운반선 같은 벌크 화물선 말고 컨테이너 화물선도 있긴 합니다만... 제가 하나 찾아낸 배편은 한국을 출발해서, 미국-남미를 거쳐서 남아공까지 50일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아쉽지만... 케냐에서 시작해서 내려가는 여행을 택했습니다.
땅과 강과 별을 함께 느끼며 달리는 육로여행, 그것도 인류의 어머니와도 같은 대륙 아프리카!
저에게는 또 하나의 값진 여행이 될겁니다.

지난 4년간 준비를 해 오긴 했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직장이 있고, 아내와 아이가 있고... 또 나이도 있구요.^^ (그러나, 돈은 별로 없고... T.T)
하지만... 이런저런 고민과 갈등, 이것저것 따져보고 재봐도... 이번 여행길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프리카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그 곳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제가 한 없이 좋아하는 축구의 최대 축제를 결코 놓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선수들과... 친구들과... 같은 경기장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이 기회를 어떻게 놓치겠습니까?

...............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남아공의 불안한 치안에 우려의 말씀을 하십니다.
비단 남아공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대부분이 가난하고 위험한 지역이니까요.
심지어... 준비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월드컵을 열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그러나... 월드컵이 무엇인가요?
실력대로, 능력대로 월드컵을 한다면 유럽과 남미의 최정상급 팀들만의 대회가 아닐런지요?

아무리 축구를 못하는 나라도 월드컵 예선에 출전합니다.
실력이 떨어지고 성적이 떨어지더라도 각 대륙을 대표한 나라들은 월드컵 본선에 출전합니다.

개최국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아무리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라도 당당하게 월드컵 유치 신청을 할 수 있는거고
아프리카를 대표한 한 나라가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는거 아닌지요?

월드컵은 잘 사는 나라, 축구 잘하는 나라들만의 경진대회가 아닙니다.
못 사는 나라도, 축구를 잘 못하는 나라도...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입니다.
그리고, 못 사는 나라도 축구를 잘 못하는 나라도, 정치와 치안이 불안한 나라도...
그 축제의 주최국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월드컵 본선 진출국으로서 당당한 존중을 받아야 하듯이,
남아공 또한 개최국으로서 그에 합당한 존중을 받야하지 않겠습니까?

남아공은... 당당한 2010년 월드컵 개최국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곳에 가려는 것이구요....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