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FC가 창단한다는데...

2008. 5. 1. 13:02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우선은 반가운 소식이지요.
제 고향이 강원도 홍천이라서 강원도라면 남다른 느낌이 들기도 하고...
축구를 좋아한 이후에도 강원도에 프로 축구팀이 하나 있었으면 했으니까요.

포항 스틸러스와 뒹구는 생활을 한 참 했습니다.
그 시절에도 강릉을 연고로하는 프로팀의 창단에 대해서 참 말이 많았지요.
심지어 당시 천안에 있던 '일화' 축구단이 강릉으로 옮긴다는 말도 있었고
실제로 강릉 공설운동장에서 일화와 포항의 경기가 예정되기도 했습니다.
(그 경기에 갔었지요... 하지만, 경기시작하자마자 조명탑이 나가면서 경기가 나가리 났습니다.
그날 경기도 나가리 났고, 그 후에 일화의 강릉 연고이전도 유야무야 되었고
최종적으로 일화는 지금의 성남에 자리를 틀게 되었습니다.

"강원도에도 프로팀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쭉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몇년 전부터 내셔널리그와 그 아래의 K3까지 점차 리그 운영체계가 잡혀가고 있으며
강릉시청의 경우에는 내셔널리그에서 비교적 좋은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강릉시청팀과 강릉 사람들 자신의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프로팀을 만들 수 있을거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셔널리그 자체가 자생력을 가지게 되고,
그 리그에 속한 강릉시청은 나름대로 생존하면서 역시 자생력이 있는 팀으로 자랍니다.
자생력... 말 그대로 스스로의 힘으로 팀을 꾸리고 선수들에게 급료를 지급하고
또한 그에 걸맞는 팬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말이겠지요.
최소한 강릉을 대표하는 팀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고,
강릉이나 속초 주문진 등에서 자란 선수 중에서 K-리그나 해외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들에게는
지역에 있는 하나의 직장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던 어느날... 유난히 축구가 잘 되는 시즌이 왔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가상입니다.)
마침 주문진에서 온 한 녀석이 기가막힌 골키퍼입니다.
한 골만 넣으면... 어지간하면 무승부나 승리로 끝낼만큼 기가막힌 놈이지요.
그리고 올해는 약간의 재정적 여유도 있군요.
우성용 선수가 은퇴준비를 하던 차에, 플레잉 코치로 와 주기로 했습니다.
후반 조우커로 한 몫을 단단히 해 주고, 경험이 적은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되어 줍니다.
그리하야... 그 해의 리그를 잘 풀어가서, 결국은 내셔널리그 우승과 함께 K-리그 승격의 기쁨을 누립니다.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이쯤 되면 강릉시청은 하나의 완전한 프로팀의 스토리를 완성하게 되는 셈이지요.
다시 내셔널리그로 내려간다고 팀이 해체되지도 않을 것이고,
또한 강릉시청 나름의 방식으로 팀을 꾸려나갈테니까요.

....

강원 FC를 바라보는 제 마음은... 미안하지만 좀 비관적입니다.
제가 강원도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더 비관적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홍천에서 초등학교 1학년까지, 그리고 그 후에 대학 입학할 때까지는 춘천에서 자랐습니다.)

첫째, '강릉' FC가 아닌 '강원' FC라는 점입니다.
더 넓은 시장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제 생각에는 '팀의 존재 이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 팀을 아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진성 팬을 많이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입장관중 2만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팀이 5연패를 해도 찾아줄 수 있는 50명의 관중이 중요합니다.

왜?
쉽게 말해서 레알 수원이나 FC 서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강원 FC는 수원이나 서울처럼 언제나 스타 플레이어를 거느리고, 다른 팀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다른 팀보다 앞서 나가는 마케팅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처럼 자주 우승을 할 수도 없겠지요.
성적은 하위권이며 변변한 스타도 없이 시즌을 치를 가능성이 더 크며
10년쯤 가도 우승을 할지 어떨지 모르지요.

제가 비관적으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현실이 그렇습니다.
전통의 명문이라는 포항 스틸러스가 15년만에야 네번째 별을 땄습니다.
과연 강원 FC가 포항 스틸러스보다 더 좋은 상태로 유지되는게 쉬울까요?

레알 수원이나 FC 서울이 될 수 없다면, 두리뭉실하게 강원도로 가기 보다는
지역색 확실하고, 축구에 대한 마인드와 전통이 있고,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탄탄한
강릉을 연고로.... 작지만 탄탄하게 시작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지만 세계적인 명문 FC 바르셀로나를 가진 도시 바르셀로나를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둘째, 창단 주도자가 누구인가라는 점입니다.
내막은 모르지만 김진선 강원도지사가 전면에 있었습니다.
즉, 정치가이며 행정가가 주도자라는 말입니다.
기업인도 아니고 축구인도 아닙니다. 도민들의 열하와 같은 창단 의지로 만들어진 팀도 아닙니다.
기업인은 기업인의 필요에 의해서 축구팀을 만들고, 축구인의 축구인의 마음으로 축구팀을 만듭니다.
행정가나 정치가 역시... 정치적, 행정적 필요성에 의해 축구팀을 만드는 것이지요.

결국은... 정치적인, 행정적인 필요성에 의해 탄생된 팀이며
그러한 정치적, 행정적인 필요성이 상실되었을 때, 새로운 팀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그저 그렇게 팀의 명맥만을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한 번 탄생된 팀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지역 팬들에게 초라한 아픔과 상실감, 쪽팔림을 주면서도 모질게 살아 남습니다.

좀 걱정스럽습니다.
이렇게 팀을 만들고, 결국은 생명을 이어가면서 k-리그에 존재하지만
팀 구성원과 팬들에게 꿈과 즐거움, 자부심을 주지 못하는 팀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너무 커보입니다.

프로 축구팀은 돈을 벌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꿈과 희망, 자부심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가치로 돈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심하게 독설을 퍼붓는다면...
꿈과 희망과 자부심을 주지 못할거라면 아예 만들지 말기를 바랍니다.

저는 포항 스틸러스의 서포터입니다.
포항의 부진과 쪽팔림, 남들의 손가락질과 비아냥은 서포터에게 엄청난 고통입니다.
팀이 있기 때문에, 그 팀을 사랑하기 때문에
패배할 확률이 훨씬 높은 경기장을 다시 찾게 되고, 그들을 응원하고,
반복되는 패배의 고통을 느껴야합니다.
따라서, 신생팀이면서 전력이 낮고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팀의 경우에는
그 팀의 패배와 아픔을 함께 끌어 안을 수 있는 밑바닥 팬들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원도 출신의 민간인 족쟁이 입장에서는...
출발하는 강원 FC에 박수와 격려를 보내야 마땅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걱정과 우려가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네요.

마냥 시무룩...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