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 (Robert Capa)
2007. 5. 14. 17:52ㆍ사는게 뭐길래/볼거리먹거리놀거리
지난 일요일(5월 13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로버트 카파 사진전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사진찍기를 그저 취미 수준으로 즐기고, 기껏해야 가족들의 사진 정도밖에 찍는 일이 없고, 아주 가끔씩 풍경이나 정물을 찍기는 하지만 일단 많이 찍어 놓고 그 중에서 하나 걸리면 좋고 안걸리면 그냥 시마이 하는 수준의 사진 초짜입니다.
이런 초짜에게 당대의 거장인 로버트 카파 사진전은 사실 너무 과분하지요. ^_^
그럼에도... 기꺼이 시간을 내서 그의 사진전을 보러간 이유는...
그의 대표작이나 다름없는 2대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D-Day 사진 때문입니다.
언제, 어느 책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초점도 잘 맞지 않고, 마치 급하게 셔터만 간신히 누른 것 같은 한 장의 사진에 필이 꽂힌 적이 있었지요.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고, 그 사진이 그렇게까지 유명한 사진인줄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흐릿하고 심하게 흔들린 사진은 2차 세계대전을 기록한 가장 역사적인 사진 중 하나였다고 하는군요.
나중에...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로버트 카파이고, 그는 당대 최고의 포토저닐리스트 중 한명이며, 전쟁의 최선봉 부대와 함께 움직이며 목숨을 건 사진들을 찍었던 역사 현장의 기록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Slightly out of focus(그 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위의 사진에 붙은 제목입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박해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거니와, 나중에 카파가 보내온 필름을 현상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생겨서 그나마 건질만한 것이 위의 사진뿐이라고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웬걸...
전시회에서 본 바로는 위의 사진보다 더 좋은 초점과 더 많은 군인들, 심지어 더 현장감이 느껴지는 사진들도 몇 점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위의 사진에서는 사진을 얼마나 잘 찍고, 제대로 현상하는가의 문제를 능가하는 아주 원초적인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때 그 자리에서 셔터를 누른 로버트 카파라는 저널리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큰 힘이고, 또 하나는 그가 보내 온 사진 중에서 어찌보면 가장 불완전하게 찍힌 이 사진에 "그 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라는 캡션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이미지를 한 장의 사진으로 완성시킨 편집자의 힘 때문이 아닐까요?
누구나 멋진 사진, 역사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단, 그 역사적인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 용기내어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좋은 바디와 렌즈를 갖추고, 노출을 정확히 맞추고, 프레임을 제대로 잡고, 흔들림 없는 안정된 자세로 셔터를 누르고, 집에 돌아와서 포샵으로 살짝 터치하기 이전에...
아무리 좋은 사진도...
그곳에 가지 않으면 찍을 수 없으며, 그 상황을 함께 느끼지 못하면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을테니까요.
사진을 보는 눈이 그다지 높지 못하기 때문에, 전시된 사진들이 '잘 찍은 사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사진들은 '로버트 카파만이 찍을 수 있는 사진'이었다는 점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는 위대한 '사진가'가 아니라, 위대한 '포토저널리스트'로 역사에 기록되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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