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미국 서포터 체험

2022. 12. 1. 02:02카테고리 없음

카타르 월드컵 B조 마지막 경기,알투마마(Al Thumama) 경기장에서 열린 이란:미국 경기를 다녀왔습니다.

양팀 모두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 여부가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미국으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 반면 이란 입장에서는 비기기만 해도 이란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16강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세울 수 있는 경기였습니다.

양팀의 전력차가 크지 않아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쉽게 예측하기 힘든 경기였는데, 결국은 미국이 1:0으로 이기면서 16강 진출에 성공! 이란으로서는 아쉬운 결과였겠지만 미국의 경기력이 좀 더 16강 수준에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월드컵을 함께 즐기고 있는 멤버 중에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한국 3경기, 그리고 미국 3경기를 친구와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티켓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쉽죠. 게다가 미국의 경우 자국 축구팬들을 위한 티켓 예매 서비스를 따로 제공했습니다.)

경기장까지 도보 백리길

실제로 백리는 아닙니다만 셔틀 버스를 내려서 경기장까지 걸어가는 길이 장난이 아닙니다. 아마 일시에 많은 팬들이 몰리게 되면 사고가 생길 수 있어서 일부러 이동 경로를 길게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그 때문에 다른 경기장도 메트로 역이나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꽤 먼 거리를 걸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알투마마 경기장은 멀어도 너무 멀더라구요 ㅠ.ㅠ


저~~~ 멀리에 잘 빚은 도자기 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경기장이 보이는데 정말 아득하게 멀어 보였습니다.


가는 길 중간에 화장실도 나오고 푸드트럭 존도 나옵니다. 화장실 앞에는 꽤 길게 줄을 선 것을 보니 진짜 멀긴 멀었나 봅니다. 나름 팬 서비스를 위해 준비했겠지만 마치 제가 보기에는 너무나 먼 길을 걷다 지친 팬심을 달래기 위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먼 길을 하염없이 걷다 보면 도자기는 점점 커지고 드디어 아름다운 경기장이 모습을 보입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의 경기장들은 하나 같이 외관이 아름답습니다. 그 만큼 많은 돈을 들였을테고, 또 그 과정에서 건설 노동자들을 혹사시켰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도시 외곽에 지어진 이 크고 아름다운 경기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또 다른 고민이 되겠지요.

2023 아시안컵 개최지가 카타르로 결정 되었는데, 아마 아시안컵이 없다면 많은 경기장들의 활용성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지속적으로 대규모 축구대회를 유치하지 않는 한 이번 월드컵을 위해 새로 건설된 경기장들을 작은 나라 카타르가 모두 효과적으로 활용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USA, this way!!

엇! 미국 서포터의 정중앙

그런데, 입장 후 자리를 찾아 갔더니 좀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서포터들의 정중앙 자리, 바로 앞에 북돌이와 콜 리더가 있고 주변에는 열성 미국 서포터들이 포진을 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저를 포함한 한국사람 7명이 자리를 떡 잡고 있으니 그림이 좀 이상하게 된거죠.


친구와의 인연으로 미국을 응원하기로 마음을 먹긴 했지만 그렇다고 열성적으로 미국을 응원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도 아니고, 반면에 멀뚱멀뚱 있자니 그것도 애매하더라구요.
일단 콜 리더의 리딩에 맞춰 적당히 응원에 동참도 하면서 경기를 보긴 했지만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지는 않더라구요. 아즈문, 타미리 같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란 선수들이 공을 잡으면 살짝 이란 편이 되기도 하구요.


서포팅이라는 것이 한 번 동참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흥이 오르고 동질감도 느끼게 되거든요. 명색이 서포터 인생 25년입니다. 5분이면 적응 끝이죠^^

미국 서포터들은 우리 붉은악마처럼 비장하지는 않습니다. 적당히 웃고 놀고 즐기는 서포팅을 하기 때문에 슬쩍 묻어가면서 보기에는 괜찮았습니다. 붉은악마 서포팅의 강도에 비하면 4분의 1쯤 됩니다. ^^


함께 노래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고, 국가 연주할 때는 성조기 퍼포먼스에도 동참하면서 최대한 티 안나는 박쥐 서포터의 모드로 나름 재미있게 경기를 봤습니다. 덕분에 중계화면에 우리 일행도 살짝 등장했습니다.^^


미국 서포터스 속에서 가장 미국적이지 않은 무리들, 잘 보면 보입니다.^^

미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이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미국 서포터스의 정중앙에서 축구를 즐겼지만 거의 눈 앞에서 16강의 기회를 놓치게 된 이란 팬들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는 애매한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