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월드컵이 열린 곳, 몬테비데오 센테나리오

2014. 6. 12. 21:58월드컵 여행 - 2014 브라질/4. 몬테비데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배를 타고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 이번 여행에서 몬테비데오에 꼭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곳이 1930년 제1회 월드컵이 열린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몬테비데오에는 그 때 사용하던 경기장이 그대로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몬테비데오에 가는 길은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역시 여행은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탈 때 재밌는 것 같습니다. 들판의 모습, 한적한 시골 풍경, 창밖으로 지나가는 마을들... 이런 것은 비행기로 갈 때는 못보는 장면이니까요. 몬테비데오에 가는 길은 배와 버스를 함께 이용하니까 더 볼만하고 좋았습니다. 이 맛 때문에 육로 여행이 더 재밌게 느껴지는 거겠죠?

 

 

 

 


 첫날은 저녁에  도착하는 바람에 도시 구경은 하지 못했습니다. 부랴부랴 저녁&맥주를 챙겨 먹고, 간단한 간식거리 쇼핑을 하고, 숙소 근처를 한바퀴  도는 정도로 하루를 마감!
다음날은 아예 시티 투어를 신청했습니다. 약 3시간에 걸쳐 도시의 주요 포인트를 가이드와 함께 둘러보는거지요. 무엇보다도 시티 투어에는 월드컵이 열렸던 센테나리오( Estadio Centenario)  경기장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수없이 반복 되었을 가이드의 달달 외운 영혼 없는 말을 들으며 도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말 그대로 이곳저곳! 겉할기식 속성 투어는 아무리 설명을 잘해줘도 그냥 이곳저곳일 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곳저곳은 그냥 이사진 저사진으로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낡은 유럽의 한 도시를 보는 느낌이 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어느 한 곳 같은 느낌. 한 때는좋았지라는 생각이 잠깐 스치지만 식민지 시대에 원주민의 것을 빼앗은 자들이 빼앗은 것으로 지은 건물과 도시이며, 식민지 시절을 벗어난 후에도 온전하게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혼 없던 가이드의 목소리에 갑자기 영혼이 붙기 시작하더니, "센테나리오" "문디알" 같은 익숙한 스페인어가 나오고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도 리액션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루과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축구와 아사도(바베큐)입니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 경기에서 이기고 아사도에 맥주를 마시면 제일 좋은거죠. 우루과이는 제1회 월드컵을 포함해 월드컵에서 두 번 우승했으며, 코파 아메리카에서 가장 많이 우승한 나라입니다. 2013년 우루과이가 코파 아메리카 챔피언이 됐을 때, 우리가 밤새 얼마나 많은 아사도를 먹어 치웠는지아세요?"
(아사도와 코파 아메리카 잘모르시는 분은 검색해 보시던가 대충 감으로 때려 잡으시던가! 월드컵 16강 가는 날 저녁에 삼겹살에 소맥 말아 마구 들이붓는 그런 느낌? ㅎㅎ)

드디어 센테나리오 경기장으로 가는구나!
어라? 근데,  경기장 앞에서 이런저런 설명을하고는 그냥 가네요? 여기까지 왔으면 경기장에는 들어가 봐야 되는거 아닌가?

"저기요... 여기 다시 안올거죠? 나 이 경기장 좀 더보고 싶어요. 이 근처로 다시 안올거러면 여기에서 내릴게요 .ㅠ.ㅠ"
"축구 좋아하시는군요! 걱정마세요. 투어 끝나면 이 근처로 모셔다 드리죠^^"

예쁜 가이더가 말까지 이렇게 술술 풀어주면 급방긋 해지는거... 나만 쓰레기 아닌거죠? ㅎㅎ


센테나리오는 그 자체로 이미 축구와 월드컵의 중요한 역사를 간직한 유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기장의 맨 위에 서면 이렇게 몬테비데오 시내가 눈에 들어옵니다. 많이 헤지고 낡았지만 아름다운 경기장이네요.

 

일반 관중석과 서포터석의 경계를 이루는 높은 담장과 살벌한 철책, 그리고 필드와 서포터석 사이의 웅덩이까지! 이 곳에서 치른 그들의 전쟁이 얼마나 살벌하고 광적이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이제는 그런 전쟁같은 축구의 시대는 벗어났겠죠...

 

 


센테나리오는 지금 개보수 중입니다. 원래는 월드컵 기념관도 있었는데 다 철거된 상태입니다. 경기장 여기저기가 이미 뜯기고 패이고 방치된 상태지만  6만 6천명을 수용하는 첫 월드컵이 열렸던 경기장의 위용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개보수 중이라 박물관은 폐쇄 됐지만 약간의 입장료만 내면 경기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눈치보지 않고 맘놓고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을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거칠고 원시적인 센테나리오의 모습도 곧 사라질 것 같습니다. 어느 축구 여행자가 마지막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 날이 그리 많이 남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센테나리오의 벌거벗은 본래 모습을 늦게나마 볼 수 있었던 것, 어떻게 보면 제게는 행운인 것 같습니다!

 

여기, 센테나리오에 내가 왔다! 그냥 막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