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들에게는 색과 무늬가 곧 팀의 정신입니다.

2012. 2. 14. 20:47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인천 유나이티드의 유니폼 색과 무늬를 놓고 허정무 감독과 팬들 사이에 큰 견해차이가 있네요.
비단 축구팬들만의 집착도 아니고, 스포츠팬들만의 집착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 역시 한 팀의 서포터로서 그 팀의 색과 무늬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기 때문에
허정무 감독의 변명아닌 변명에는 절대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포항 스틸러스는 소위 검빨(검정-빨강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있습니다.
용품 스폰서에 따라 상품 로고가 달라지기도 하고, 디자인 변경이 생기기도하지만
포항 스틸러스는 역시 검빨이지요.

그런데, 우리도 한 때 검빨을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좀 더 컬러풀하고, 좀 더 우아하고, 좀 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런 라데도 있었고...

 
 이런 홍명보도 있었고

 
 
황선홍과 이동국도...

...

때론 조잡했고, 때로는 고상한 색으로 바뀌기도 했지요.
(저 하이트 유니폼... 허정무 감독이 포항의 지휘봉을 맡았던 바로 그 시절이지요. ^^)

먼 길을 돌아서 결국 포항 스틸러스는 원래의 검빨로 돌아왔습니다.
좀 덜 세련되고, 구닥다리 냄새가 나더라도 포항은 검빨입니다.
야간 경기 때 상대팀에 비해서 우리 선수가 잘 보이지 않더라도 포항은 검빨입니다.
상대 선수들을 시각적으로 자극할지언정 포항은 검빨입니다.
투박하기 때문에 레플리카가 잘 팔리지 않아도 역시나 포항은 검빨입니다.
설사... 다시 반공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되어서 빨간색 착용 금지령이 내릴지라도 언제나 포항은 검빨입니다.

그 어떤 불리함이 따르더라도, 그 모든 불리함은 검빨 유니폼을 입기 위해서 감수해야하는겁니다.
다른 팀의 서포터가 입은 뽀사시한 색깔의 레플리카가 너무너무 멋져 보여도 감수해야하는겁니다.

검정-빨강-스트라이프!
그게 우리의 정체성과 전통, 자부심을 대변하는거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빙빙 돌고 돌아서도 결국 포항은 자기의 색을 찾았고, 그것은 팬들에게 자존심을 돌려주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

허정무 감독이 물었죠?

"도대체 유니폼의 전통 색깔은 누가 정하기라도 한거냐?"

굳이 답을 하자면 시간과 정신이 정한겁니다.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일수도 있구요.
설사 그것조차 아니더라도... 팬들이 가슴속에 간직한 것이라면 그것으로 전통의 색깔은 정해진 것일수도 있습니다. 

감독은 왔다가 떠납니다.
선수도 팀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포터는... 그 팀이 고향이라서 정말정말 지지하는 팀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정신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팀 컬러에 대해서 '일개' 감독이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지요.

'일개' 감독이라고 했습니다.
그 팀의 역사와 전통, 정체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한... 잠시 팀을 맡은 '일개' 감독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중요하고 예민한 부분입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서포터들에게, 그들의 색과 무늬는 감독보다 더 중요합니다.
서포터들은 색깔 하나를 놓고도 눈에 불을 켜며 한 껏 자부심을 끌어 올리는 사람들입니다.
너희 것은 푸르딩딩한 색이고 우리 것이 진짜 파란색이라는 유치찬란한 말싸움도 서포터들에게는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싸움입니다.
FC 서울의 홈 경기 이벤트에 등장한 가수가 상대팀 전북의 초록색 옷을 입고 등장했다는 이유로 팬들에게 사과를 해야했던 것을 그냥 해프닝으로만 보셨는지요?

자부심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서포터들에게
팀의 고유색을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감독... 쪽팔리지요.
유니폼이 촌스럽다고 다른 팀의 서포터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훨씬 쪽팔린 일입니다.

다시 진지하게...
팬들의 마음을, 서포터들의 마음을, 그리고 그 팀의 정신을 구성하는 작은 것들을 가슴으로 헤아려 보기를 바랍니다.

...



이런 감독!
사랑 받습니다!~

스타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승리를 많이 안겨줘서가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정신을 존중해주기 때문입니다.

그의 목에 걸린 머플러가 잘 어울리는 것은
그가 패셔니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과 정신을 그 스스로 훈장처럼 걸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우리 감독,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