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최순호, 강원의 최순호

2011. 4. 7. 23:43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포항의 최순호
포항과 최순호의 마지막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 않습니다.
포항의 감독으로서 그는 서포터들과 유난히 부침이 많았습니다.
처음 코치로 포항에 돌아왔을 때 누구보다 큰 환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현역 선수들 보다도 더 큰 조명을 받았습니다. 성적부진으로 중도하차한 박성화 감독을 대신해서 감독이 되었을 때도, 선수보다 많은 사인 요청에 시달렸던 스타 감독이었지요.

그러나, 성적 부진이 이어지자 포항의 서포터들은 순식간에 등을 돌려버립니다.
전통의 강호, 전통의 명문이란 타이들은 때론 이렇게 매정하기만 합니다.
자기들의 전통과 명예가 깨지는 순간을 절대로 용납하려하지 않으니까요.
누구보다 찬란했던 포항의 스타임에도... 곤두박질 친 성적 앞에서는 너무도 냉정하게 평가를 받았습니다.

급기야... 서포터들은 감독 퇴진 운동을 전개했고, 최순호 감독은 우승을 하지 못하면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그 다음해에도 우승을 할 수 없었지만, 최순호 감독은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했지요.
당연히... 팬들은 더욱 거세고 과격하게 감독의 퇴진을 요구했으나... 결국은 최순호 감독이 1년 더 팀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챔피언 결정전에서 수원에 승부차기로 패하면서 2위로 리그를 마감!
우승까지는 못갔지만 어느 정도 명예는 세우고 떠난 셈이지요.
비록 서포터들과의 깊은 앙금까지 풀리지는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강원의 최순호
너무나도 전격적으로 자진사퇴를 했기에 사실 좀 놀랐습니다.
강원의 객관적인 전력과 팀 커리어를 봤을 때, 4연패 때문에 성적 부진의 책임을 통감하며 감독이 바로 물러날 정도는 아니라고 봤거든요.
모르겠습니다... 4연패도 대단한 충격이면 대단한 것일 테고, 단순히 승패와 성적이 아닌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10여년을 포항 스틸러스란 팀과 울고 웃으며 살았던 저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임기중의 감독이 떠나려면 아직도 한 참 멀었다고 생각하거든요. ^^
(포항은... 임기중 감독 교체 자체를 병적으로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팀 창단 이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난 감독은 박성화 감독과 레모스 감독, 단 2명 뿐입니다.)

최순호 감독은 왜 이렇게 빠른 결정을 내렸을까?

저의 죄책감인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포항에서의 아팠던 기억도 하나의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자신을 가장 믿고 지지해 줄 것으로 생각했던 서포터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을 때의 아픔과 좌절...
젊고 패기 만만하고 반짝반짝 빛나기만 하던 시절에 맛본 포항 시절의 큰 좌절...

4연패, 성적 부진, 주변의 싸늘한 시선, 불거지는 감독의 책임론...
어쩌면 포항에서의 힘들고 무거웠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1년이 넘도록 서포터들의 불신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하는 감독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그것도 자신이 최고의 시기를 보냈던 친정 팀에서...
너무나도 자신을 환영해 주었던 그 팀에서조차 성적에 대해서 만큼은 너무나도 단호하고 매몰찼으니까요.
아마도 그의 자존심이 더 이사의 불명예는 허락하고 싶지 않았을테지요.

강원에서는 보란듯이 포항에서의 아픔을 넘어서길 바랬는데...
그의 두번째 팀에서도 중도퇴진이라는 아픔을 또 한 번 겪는군요.

다시, 포항의 최순호?
포항의 팬으로서, 또한 최순호의 팬으로서... 마음이 부겁습니다.
"우승을 하지 못하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약속을 어겼을 때는 저 또한 최순호 감독의 퇴진을 요구했으니까요.
물론 당시에는 아직 젊고 기회가 많은 최순호 감독이 왜 불명예 기록을 하나 만들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그냥 쿨하게 물러나도 얼마든지 다음 기회가 있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쿨하게 물러나야 다시 보기 좋게 포항으로 돌아 올 수 있을테니까요.

...

다시 포항으로 돌아 올 수 있겠죠?
그 때는... 모든 포항 팬들이 가장 따뜻하게 그를 맞이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의 축구를 맘껏 펼칠 수 있도록 응원을 아끼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선수시절처럼, 포항에서 활짝 꽃 피는 감독 최순호를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