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6. 8. 00:25ㆍ월드컵 여행 - 2006, 독일까지 유라시아횡단/7.모스크바(러시아)
6월 7일, 모스크바 시간 오후 5시경
이르쿠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오른지
약 77 시간만에 드디어 모스크바에 도착했습니다.
(지금은 모스크바 허브 민박에서 저녁 한식으로 잘 먹고 쉬는 중입니다.)
중간중간 약 4-5시간 간격으로 20분 정도 열차에서 내린 시간을 빼고는
열차에서만 꼬박 3박 4일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여행중에서 가장 긴 교통편이었으며
우리들의 이번 월드컵 육로원정 중에서도 가장 긴 구간입니다.
매우 긴 시간이었고, 때로는 몸이 욱신거리기도 하고
제한된 곳에서 최소한만 씻다 보니 몰골도 꾀죄죄 하고
때론 계속 반복되는 바깥 풍경에 지루함을 느끼기도 하고
이리뒹굴 저리뒹굴 하면서 심심해 하기도 하고
책을 보면서 무료함을 달래기도 하고...
[인철] 책을 보면 덜 심심할까? | [동렬] 발가락 운동하기!~ |
...
긴 시간의 열차 여행이 다소 힘들기도 했지만
시베리아 평원과 알타이 산맥, 우랄 산맥을 달리는
시베이아 횡단 열차의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은 돈을 주고도 사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시베리아는 이제 여름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아마 6월 중순쯤 되면 본격적인 여름이 되지 않을까...)
지금 한창 나무와 풀들이 무성해 지는 시기입니다.
만약 시베리아 평원의 여름 풍경을 보고 싶다면
지금이 딱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일주일 정도 빨리 여름 여행을 시작한 셈입니다.)
시베리아는 아직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습니다.
평원에 노랗게 핀 민들레 꽃밭이 아름답죠?
...
모스크바까지 오는 동안 창 밖으로 가장 많이 본 것은
자작나무였습니다.
(정확히 자작나무인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어릴적 산에서 본 자작나무 같아요.
그냥 자작나무라고 할께요.)
지구에 있는 자작나무의 90%는 시베리아에 있는 걸까요?
때로 소나무를 비롯해서 다른 나무들도 많이 보이긴 했지만
평원을 달리는 3박 4일 내내
언덕이건 산이건 강가건...
쉼없이 나타난 것은 자작나무였습니다.
(이 많은 자작나무로 다 자일리톨 껌 만드나?)
여행 3일째가 되었을 때 열차가 우랄 산맥을 지나게 되는데
이 때는 자작나무 못지 않게 울창한 소나무나 측백나무 숲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
중간에 만난 도시 중에는 노보시비르스크(Nobosibirsk)와
튜멘(Tyumen)이라는 도시가 제법 큰 도시였고
다른 곳은 우리나라의 군이나 읍, 면 정도 규모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노보시비르스크는 인구가 150만명이나 된다는군요.)
이런 정차역에서 우리는 잠시 기차를 내려
맑은 공기를 마시고, 담배를 피면서 아까 마신 맑은 공기를 다시 더럽히죠. ^^
(기차에서도 객차 사이의 지정된 흡연 구역이 있지만
플랫폼에 내려서 바깥 공기를 마시면서 피는 담배가 100배는 더 맛있습니다!)
노보시비르스크 시내 | 담배 한 대 피고! |
이번 이르쿠츠크-모스크바 구간에 이용한 열차는
'바이칼'이라는 열차로 이르쿠츠크-모스크바 구간만을 달리는
전용 열차입니다.
이르쿠츠크-모스크바 구간을 달리는 다른 열차편도 있긴 하지만
바이칼 열차가 가장 빠르고 쾌적하다고 합니다.
직접 느껴본 결과, 제가 지금까지 이용한 어떤 열차보다도 좋습니다.
4인실을 썼는데 깨끗하고 쾌적하고 시설도 새것처럼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이용객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4인실을 둘이서만 썼기 때문에 더욱 편안하고 좋았지요.
하루에 두 차례 식사도 제공해주고 차장들의 서비스도 친절합니다.
(아...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이르쿠츠크에서
'친절'이라는 말과 담 쌓은 듯한 러시아의 모습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르쿠츠에서 열차표를 끊을 때는
1인당 약 30만원이나 하는 가격이 좀 부담되긴 했습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제주도를 왕복하는 비행기값 수준이니까요.
그래도... 3박 4일간 5천 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이고
다른 열차편에 비해서 빠르고 쾌적하다고 하기에
예정대로 바이칼 열차를 이용했습니다.
물론, 기대이상의 쾌적함과 서비스에 대만족입니다. ^^
그냥 1-2분만 머무르는 정차역에서는 하차를 할 수가 없지만
대략 4-5시간 간격으로 20분씩 정차하는 곳에서는
간단한 먹을거리를 살 수 있습니다.
크게 푸짐한 것을 팔지는 않고
플랫폼에 있는 간이 매점에서 맥주나 담배, 도시락 라면, 빵 따위를
살 수가 있으으며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과일이나 만두, 아이스크림 같은 것을
파는 잡상인들이 있습니다.
(잡상인이 없는 정차역도 있습니다. 잡상인 음식이 더 맛있음. ^^)
사고... 또 팔고
이르쿠츠크 역에서 열차를 타기 전에 역 앞의 간이 상점에서
라면, 물, 담배, 수프 등의 일용할 양식을 준비했는데
놀랍게도 가게 아주머니가 까레이스키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조선족, 러시아에서는 까레이스키라고 하죠?)
물건을 주문 할 때, 어차피 영어가 안통하는 동네라서
우리말로 '물 두 개', '도시락 네 개' 하는 식으로
손가락을 써 가면서 주문을 했는데
아주머니가 '두 개', '네 개' 그러면서 따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찌나 반갑던지...
그러면서도 아주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을 보자니
마음 한 구석이 착잡하더군요.
그래도, 한국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던 이르쿠츠크에서
같은 민족을 우연히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반가웠습니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을 꿈꾸어 온 분들 많으시죠?
지금 시간이 되신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떠나세요.
지금 당장 시간이 안된다면, 지금부터 계획을 한 번 잡아보세요.
떠나고는 싶지만 좀처럼 실천하기 힘든 여행이겠지만
시베리아의 넓은 평원과
그 속에 나타나는 나무와 꽃과 마을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은
평생 가슴속에 남을 것입니다.
다시 기회가 된다면 또 한 번 이 평원을 달려보고 싶습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출발한 오리지널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궁금하고
여름이 아닌 눈 덮인 겨울에는 이 평원이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합니다.
...
여행을 시작한지 15일쯤 된 것 같군요.
체중이 좀 빠지고 모습이 꾀죄죄해 진 것 말고는
다행히 별다른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행의 즐거움을 맘껏 누리고 있습니다. ^^
시간이 되는 대로 카메라에 담아 둔 시베리아의 풍경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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