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서울(2:2)포항 - 이제 우리 자신을 믿어도 될까?

2021. 8. 23. 23:01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전지적 포항시점의 관전기(집), 서울(2:2)포항, 2021.08.22(일), K리그1 Round 26


한 팀을 오래 응원한 축구 팬들이 겪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다. 팀이 잘 나가지 못할 때는 화가 치밀고 멘탈이 탈탈 털리는 일을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견뎌야한다는 것! 이 빌어먹을 팀의 팬이라서 평화로운 주말저녁에 머리 끝까지 스팀이 차오르고 아이들과 가족에게 괜히 짜증을 내면서까지 거지같은 한 주를 마감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런 일들을 몇 번 겪고나면 승리에 대한 기대보다 패배에 대한 걱정이 앞설 때가 많다. 심지어 경기를 리드하고 있을 때에도 행여 역전패를 당하지나 않을까하는 불안함이 올라온다.

팬들만 그럴까? 선수들도 마찬가지일거다. 특히, 최근의 포항처럼 내용은 앞서면서도 득점력과 불운으로 골을 놓치고 수비의 작은 실수로 한 골을 가져다 바치는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팬과 선수들 모두 새가슴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는 팀은 더 나쁜 결과, 더 낮은 순위로 떨어지게 된다.

이번 경기는 그런면에서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FC서울이 아니라 FC서울마포구상암동 수준으로 존재감이 내려가 버린 서울 입장에서는 이번 홈 경기를 통해 어떻게든 반전의 기회를 마련해야하는 상황이었고, 포항은 전에 없이 치열한 중위권 싸움에서 미끄러지느냐 마느냐가 결정될 수 있는 중요한 경기였다.

비록 승점 1점을 각자 가져가는 무승부 경기였지만 11대10의 싸움, 원정 경기, 그리고 경기막판 극장 페널티 골의 위기까지 넘기면서 기어이 승점을 가져간 포항이 훨씬 많은 것을 얻은 경기였다.

무척 소중한 1점이다. 그리고, 승점보다 더 큰 소득! 여러가지로 부침이 많은 시즌이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견뎌내다보니 이제는 꽤 탄탄한 팀이 된 것 같다. 한 경기 비긴 것이 뭐 그리고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시즌 우리가 겪어온 여러가지 어려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모두 응축된 경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렵고 힘든 과정의 연속, 하나를 극복하면 다른 악재가 또 다시 이어지는 시즌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하나하나 제 자리로 다시 돌려 놓았다. 바로 이번 FC서울과의 경기가 그와 같았다.

모든 과정을 극복해 나가고 있는 김기동 감독과 선수들...
당신들, 참 포항답다!

국대에 뽑힌다면?

경기 다음날, 강상우가 월드컵 최종 예선에 나서는 대표팀에 뽑혔다. 오른발 쓰는 왼쪽 측면 자원이지만 전후좌우 공격과 수비 모두 가능하고 최소세 가지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다. 당연히 대표팀에 뽑히고도 남을 기량을 가졌다. 좋은 활약과 함께 카타르 월드컵까지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영표 이후 공격력과 수비력을 함께 갖춘 재간둥이 왼쪽 윙백을 많이 그리워했던 대표팀이다. 벤투 감독의 생각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강상우야말로 이영표 스타일에 가장 근접한 선수라 생각된다.

내심 신진호의 발탁을 기대했는데... 아마 포항에서 핵심 기둥 두 개 뽑아 가기에는 벤투 감독도 미안했나보다^^

송민규가 전북으로 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송민규-강상우 왼쪽 라인을 통째로 국대에 보냈을 것이다. 하늘이 우리를 도우려고... 송민규를 먼저 빼내면서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을 준 것 같다.^^

강현무도 충분히 대표팀에 뽑힐만한 선수라고 생각되는데 좀처럼 부름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골키퍼라는 자리가 좀 그렇다. 확실한 1번 골키퍼가 외에 2번, 3번 골키퍼는 각각 팀의 목적에 맞게 구성된다. 예를 들어, 위기 상황에 강한 경험 많은 선수, 승부차기에 유난히 강한 선수, 어차피 출전 기회는 없겠지만 팀 분위기 팡팡 띄우는 에너자이저 같은 선수...

그런 면에서 볼 때 1번으로 뛸 수 없다면 차라리 팀에 남는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순발력이나 선방능력은 이미 탁월하다. 상황 판단과 예측도 좋다. 방어범위를 더 넓히고 패스 시발점으로서의 역할을 조금만 더 다듬는다면 대표팀에서 바로 부르지 않을까 싶다.


https://youtu.be/NQbFhGdGb9A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가장 진한 강현무의 이미지는 데뷔전(& 홈 개막전)에서 헤딩으로 공중볼 처리하던 미친 애송이였는데... (ㅎㅎ 미친)
이제부터는 저 발칙한 미소로 남을 것같다. ^^

이제야 라인업 완성

올림픽 일정으로 인해 송민규 없이 아챔 예선을 치렀다. 크베시치와 팔라시오스가 아챔 초반에 부상을 입는 바람에 어린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덕분에 송민규가 빠졌음에도 빈 자리를 빨리 메울 수 있었고 백업 자원도 어느정도 갖추게 되었다.

게다가 이게 웬떡! 3부리그에서 백업의 백업으로 영입한줄 알았던 박승욱, 그리고 데뷔 1년차 김륜성이 좌우 윙백을 메워주면서 팀의 수비라인과 미드필드가 훨씬 안정될 수 있었다. 여전히 자잘한 실수가 나오는 부분은 아쉽지만, 전에 비해 측면이 훨씬 역동적이고 빨라졌다.

지난 수원FC 경기를 기점으로 수비, 미드필드, 그리고 공격 2선 포워드까지는 라인업이 채워진 것 같다. 타쉬는 아쉽지만 스스로 증명해 내기 전에는 선발 기회가 없을 듯하다. 아챔을 치르면서 상당히 폼이 올라온 모습이었는데 안타깝게 됐다.
이승모는 수비 포지션으로 돌아갈 생각이 아니라면 이 행운의 기회를 더는 놓치지 말기 바란다. 이번 경기처럼 간간이 공격 포인트 쌓아가면서!

크베시치는 지난 수원FC전, 전남과의 FA컵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더니 이번 경기에서는 골맛까지 봤다. 그랜트도 중앙과 윙백, 수비형 미들까지 간을 보더니 이제는 중앙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고영준, 권기표, 이수빈, 전민광도 경기 상황에 따라 꾸준히 출전 기회가 주어질 것 같다. 특히 이수빈, 고영준, 권기표는 김기동 감독이 의도적으로 출전 기회를 주면서 성장을 돕는 것 같다. 올해 주어진 기회가 내년에도 주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남은 시즌 동안 좋은 활약,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Green Light / Orange Light / Red Light

...

다음 경기(8/25) 상대는 전북!
재밌는 경기가 될 것같다. 송민규가 빠져도 팀 포항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선수들이 스스로 느끼는 경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4, 5, 6은 떼어내고 1, 2, 3 그룹에 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