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지개를...

2009. 3. 9. 13:02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참으로 오랫동안 글쓰기를 하지 않았군요.

사실 글쓰기를 멈춘것은 아니고, 그동안 먹고사는 일과 관계된 다른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와 표 만들기를 하느라고... ^.^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두 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습니다.
글쓰기란 것이... 한 번 멈추게 되면 어지간한 계기가 마련되기까지는 좀체로 다시 손을 대기가 힘들지요.
시간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남는 시간을 다른 것이 꽤차고 들어오게 되면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다른 것에 빼앗겨 버리게 되는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글쓰기를 할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고
글로 쓸만한 꺼리를 찾을만큼의 여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무엇인가 서로 이야기를 나눌만한, 공감이 될만한 꺼리 말입니다.
혼자서 독백하는 글쓰기가 아니라면
'나'라는 사람이 가지는 고유한 것, 다른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있을 때라야
글이라도 한 줄 쓰게 되니까요.

간만에 수원, 찌릿찌릿 포항 승리!

역시... 다시 글을 쓰게 만드는 계기는 축구가 되는군요.^^

아내와 아이와 함께 간만에 수원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우리의 포항이 수원과 맞붙는 2009년 개막전인데... 절대 놓칠 수가 없지요.
그리고, 축구판에서 얼씬 거리는 인간들의 생사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따로 약속을 하지 않아도... 경기 몇 개만 보러가면 몇 년을 잊고 지내던 사람들도 쉽게 만나게 됩니다. ^^)

경기는 아주 재밌었습니다. (당연히... 포항이 이겼으니까요!)
포항과 수원의 경기는 참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의 수원이기 때문에...
포항의 입장에서는 늘 이기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잊지 않을 정도로만 이겨준다면 만족할만 하지요.
특히, 개막전이나 플레이오프 경기, 챔피언 결정전 같이 큰 의미가 있는 경기에서 이겨준다면 당삼 따봉!!

빅버드를 좋아하는 포항 팬

다른 팀보다 많은 자원과 또한 그만큼 많은 팬을 가진 수원.
그리고, 어느 팀보다 홈 파워가 강하고 서포터스의 수가 많은 수원입니다.

좀 역설적이긴 하지만... 그런 수원이기 때문에 포항 팬들은 빅버드에서의 원정경기는 더 구미가 땡깁니다.^^
포항이 원정팀이고 여러면에서 불리한 것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축구판 다운 흥이 있어야 원정팀도 재미가 있고 사력을 다해 뛸 동기가 생기니까요.
이것은 선수들도 마찬가지고 서포터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포터스의 수에서 상대팀에 너무 딸리지 않냐구요?
물론 많이 딸리고 파워가 모자랍니다.
그리고, 빠방한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그랑블루에게 감탄을 하기도 하지요. 부러울때도 많구요.

그렇지만... 거의 20년을 포항 팬으로 지내온 사람에게 그런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선수들이 자기 플레이에만 신경을 써야 하듯이,
서포터도 자기 방식으로 자기 팀의 경기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을 잘 아니까요.

축구는 즐기는 것입니다.
그라운드의 선수들에게도, 그리고 서포터스에게도... 그것이 본질입니다.
그렇다고 헬렐레 거리면서 즐기는 것은 방관일 뿐이지요.
승리를 향한 간절한 마음, 팀에 대한 애정, 그리고 승리를 위해 작은 하나라도 기여하겠다는 주인의식이
밑바탕에 깔려야 하겠지요.

수원 경기는 여러모로 신이 납니다.
수원이 좋은 팀이기 때문에 경기 내용도 좋고, 경기장도 나무랄데 없이 좋고,
상대팀 서포터스의 입장에서는 거대 그랑블루의 퍼포먼스도 즐길려면 즐길 수 있습니다.^.^

수원이 못했나? 포항이 잘했나?

포항의 가장 큰 강점은... 수원 원정에 나서면서 맞밭아 친다는 점입니다.
포항이 상대적으로 전력상 약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수원이나 성남과 좋은 경기가 나오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수원이나 성남의 전력이 좋기 때문입니다.

파리아스의 스타일이... 어지간하면 지키는 경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강하게 치고 나오는 팀일 수록
경기 내용이 좋고, 또한 변칙전술이 아닌 정공법으로 나오는 상대팀일수록 포항도 보여줄 것이 많습니다.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데...
상대팀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경기 리듬이 맞으면 포항은 아주 좋은 경기를 하게 되고
반대로 자주 끊기거나 리듬이 깨진 경기에서는 포항이 별로 힘을 못쓰고 주저않기도 합니다.

이번 개막전만 놓고 봤을 때는 포항이 더 준비가 잘 된 것 같습니다.
수원이나 포항 모두 선수들의 얼굴이 많이 바뀌었지만 전체적인 안정감과 조직력에서 포항이 낫더군요.
양팀 모두 실점 장면에서 손발이 맞지 않는 문제를 노출하기는 했지만
포항이 수원에 비해서 수비와 공격간의 조직력이 좀 더 나았습니다.

특히, 한 명이 퇴장 당한 후 11대 10의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조직력과 기동력으로 대등한 경기를 펼친 것은
그만큼 팀이 안정화 되어 있다는 말이겠죠.

반면에... 수원의 페이스로 넘어간 상황에서 역습 한 방으로 뚫려버린 것은
수원의 수비조직이 아직 정상화 되지 않았다는 뜻일겁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K-리그 최강 수비진이나 다름없던 이정수, 마토, 조원희가 모두 빠져버렸으니까요.

데닐손과 김재성

11대 10의 불리한 상황.
사실 11대 10이라고 해서 축구경기가 절대적으로 불리하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리드를 잡게 된다면... 최전방 공격을 좀 포기하긴 하겠지만
미드필드와 수비에서는 손해볼 일이 없으니까요.

데닐손이 돋보였던 것은 적진에 홀로 서 있는 단 한명의 공격수였음에도
상대 수비수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안겨줬다는 점입니다.
골을 넣고 못넣고를 떠나서 저돌적인 돌진력과 스피드, 집중력과 의지가 충만하다면
상대 수비로서는 움찔거릴 수 밖에 없겠지요.

김재성은 적진에 있는 한 명의 공격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골로 연결되었는가 안되었는가를 떠나서
제대로 된 역습 찬스에서 공간을 찾아 돌진하는 동료 스트라이커에게
정확한 타이밍이 정확한 공이 빠르게 전달되는가가 중요하지요.

두 선수가 이렇게 맞아 돌아가면... 더 나아가서 팀의 나머지 선수들도 이런 패턴에 익숙하다면
상대 수비로서는 의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포항은 측면이 강하다?

포항은 좌우 측면이 강합니다. 특히, 윙백들이 부지런하고 많이 뜁니다.
그래서.. 상대팀들은 늘 포항의 측면을 경계하지요.

그러나, 포항의 측면이 강한것은 중앙 공격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K-리그 경기를 보게 되면...
선수들이 습관적으로 공을 측면으로 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중앙에 선수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측면을 활용하는 것이 맞긴 하겠지만
좀 더 과감하게 중앙 공격을 시도하지 않는 점이 아쉽습니다.

중앙 공격이 중간에 차단되었을 때는 상대팀에게 역습 찬스를 주기 쉽고
또한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성공 확률도 낮을 수 밖에 없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가장 좋은 찬스를 만들 수 있는 곳도 중앙이지요.

좁은 곳에서 세밀하게 뚫기 보다는 광활한 대지에서 크게 열어 놓고 질주하는 스타일...
한국 축구의 관행적인 스타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선수들도... 감독들도... 그런 축구가 몸에 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미련하지 않은 수준에서... 무모하지 않은 수준에서...
좀 더 중앙 공격을 과감하게 구사하는 것이 경기도 더 재밌을 것 같습니다.

측면은 그러한 득점 위치까지 공을 배달하기 위한 옵션일 뿐!

결국은... 골이 터질만한 위치에 사람과 공이 함께 있어야 하고
상대 수비보다 먼저 도달해야 득점 찬스가 생기고
그래야지 멋진 골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