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Touch!

2006. 11. 6. 19:38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선수들은 경기중에 자신에게 볼이 전달되면
그 볼을 안전화고 정확하게 받아서,
상대방이 건드리지 못하게 공을 제대로 간수하고,
자신의 다음 플레이를 연결시키기 위하여 방향을 전환하거나 위치를 돌려 놓고,
다음 플레이를 위한 목표와 구체적인 플레이를 결정한 후,
패스를 하던가 드리블을 하던가 슈팅을 하던가 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 축구에서는 워낙 압박이 심하기 때문에
이러한 일련의 플레이를 제대로 할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톱 클래스의 선수들을 보게 되면
위에서 말한 여러 단계의 동작들을 거의 한 동작처럼
아주 매끄럽고 부드럽게, 그리고 능숙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핵심은 맨 첫번째 동작에 달려있는 것 같다.

First Touch!
즉, 맨 처음 자신에게 공이 전달되는 시점에
이미 주변의 상황 파악이 되어 있으며
공을 받음과 동시에 방향전환이나 위치변경을 수행하고
(그것도 상대 수비의 방해를 차단하면서!)
곧 이어서 바로 다음 동작으로 이어진다.

공을 받고 다시 다음 동작을 행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첫번째 볼 터치에서 제대로 소화한다는 것!

가령, 이동국의 플레이를 유심히 보자.
굳이 이동국을 예로 드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수비수들과 경합 또는 수비수들로 인해 고립된 상황에서
패스를 건네 받을 수 밖에 없는 스트라이커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쉬울 것 같기 때문이다.
(같은 공격수라 하더라도 측면에 앞쪽으로 오픈된 공간이 주어지는
윙 포워드와는 패스를 받는 상황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그 역시 이런 스타일의 플레이에 상당히 능숙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들보다 반박자 빠르게 슈팅을 하고,
수비수들이 득실 거리는 속에서도 제대로 몸의 밸런스와 정확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 또한
결국은 슈팅을 때리기 직전에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순발력이나 유연성은 부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시간과의 싸움이고 압박과의 싸움이다.
예전에 비해 선수들의 활동량이 많고
신속하게 펼쳐지는 압박과 순간적으로 2-3명의 수비수가 달려드는 상황은
그만큼 공을 가진 선수에게 여유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첫 번 째 볼 터치가 제대로 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 다음 플레이는 백 패스나 전방으로 길게 걷어내는 롱 패스가 될 수도 있고
반면에... 나이스한 침투 패스나 결정적인 찬스를 만드는 패스, 또는 멋진 슈팅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볼을 자기 것으로 간수하는 능력(keeping)이라든가
좀 더 창의적이고 여유있고 침착한 플레이 또한
첫 번 째 볼 터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왜?

첫 번 째 볼 터치가 엉성한 상황에서는
다음 동작으로 연결할 기회 자체를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드리블 실력이 좋고, 머리가 비상하고, 경기를 읽는 예리한 눈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펼칠 기회가 차단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쩌면 First Touch는 축구의 기본기에 속할 것이다.
다만, 기동력과 스피드로 무장한 고강도 압박을 구사하는 경기가 펼쳐지다보니까
그 기본기의 중요성이 엄청스레 커져버린 것이리라...

이제는... 조금 거칠게 볼을 받아도 눈감아 줄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우리 선수들...
체력과 스피드, 강팀에 맞서서도 꿀리지 않게 경기하는 방법과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 슈팅이나 패싱 능력, 골 결정력을 키우려면
바로 첫 번 째 볼 터치를 좀 더 매끄럽고 확실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기본기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좀 더 다듬고 세련되게 연마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일뿐이지만
동등한 기량과 신체적인 조건을 갖춘 선수라면
First Touch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대표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
외국 리그에서도 통하는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가 판가름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윗 레벨의 선수와 그 아래 레벨의 선수는 사실 종이 한 장 차이의 기량이다.
그 종이 한 장을 결정짓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요즘에 축구를 보면서 느끼기에...
그 결정적인 요소 중에서도 가장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이
바로  First Touch가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