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 누구에게 돌을 던질까?

2006. 9. 4. 13:21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토요일 밤 10시경, 상암 경기장 E-F 구역 스탠드, 30열 1번과 2번 좌석.
슬슬 챙겨왔던 가방의 지퍼를 닫으려고 허리를 숙이는 순간에 발생한 느닷없는 동점 상황...

솔직히 이건 아니다.
만약 그냥 경기를 마친 후 베어벡 감독이든 홍명보 코치든...
누군가 한 명이 라커룸에서 의자라도 집어 던지지 않았다면
밸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똑 같은 실수라 해도 어느 경기, 어느 상황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대표팀의 코치로 있는 홍명보는 2002 월드컵 3-4위전에서
볼 컨트롤과 상황판단 실수로 인해 하칸 쉬쿠르에게 번개골을 헌납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실수로 인해서 홍명보에게 뭇매를 날리는 팬들은 없다.
실수 했고, 우리가 졌지만... 그냥 씁씁한 표정 한 번으로 감춰버릴 수 있는 경기였다.
비록 그 경기가 월드컵 3-4위전이라는 역사적인 경기였지만 말이다.

비슷한 류의 어이 없는 실수라고 해도 상황에 따라 욕먹는 정도가 틀리다는 것이
일면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이란전에서 보여준 그것은 아주 어이 없는, 있을 수 없는,
아시안컵 예선과 같은 타이틀이 걸린 축구경기에서는 절대로 생겨서는 안될 실수였다.


한국팀의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졌다?

이란 감독 입장에서는 한국의 그런 약점을 노렸다고 이야기 하고 싶겠지.
그러나... 개뿔...
이란은 경기 내내 한국에게 압도 당했으며
마지막의 그 동점골을 두고 한국의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후반 막판을 노렸다는
이상한 자화자찬은 좀 말이 안된다.

그냥... 한국의 예상치 못한 삽질 덕택에 그들은 어웨이 경기 무승부라는 좋은
선물을 받게 된 것이다.

최소한... 후반 25분 이후에 이란이 한국을 좀 더 위협하고 밀어부치는
경기를 전개했을 때나 그런 표현을 쓰는게 맞을 것이다.


경기막판, 좀 더 확실히 볼을 돌렸어야 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어느 순간에는 추가 득점 보다는 경기를 마무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도 분명히 선수들이 전술적으로 움직일 때만 성립하는 것이다.
특히 이란과 같이 월드컵 출전 경험을 비롯하여
국제적인 경기 경험이 풍부한 팀을 상대로 할 때는
막판에 볼을 돌리는 것조차도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선수들은... 좀 더 냉정하고 치밀하게 볼을 돌렸어야 했다.
공을 잡으면 후방으로 패스할 궁리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전술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좀 웃기는 이야기지만... 볼을 돌리면서 우리의 점유 시간을 늘일 수 있는
최상의 패스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자신이 좀 더 볼을 간직할 수도 있고
후방 보다는 전방으로 볼을 연결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공을 잡는 순간 후방으로 패스 방향을 미리 설정하는 것은
상대에게 더 많은 압박을 허용할 뿐이다.


김상식, "100% 나의 실수였다"

맞는 말이다. 김상식은 큰 실수를 저질렀고, 그로인한 비난을 피할 수도 없으며
선수 스스로도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만 한다.

그러나,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김상식의 그러한 100% 실수 조차도 경기의 일부가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실수는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나며
또한 그러한 실수 때문에 경기가 뒤집히는 경우 또한 많기 때문이다.

김동진, 조원희, 이영표, 김남일, 김영광...
최종 수비에 직접적인 책임을 함께 나누는 선수들의 커버에 아쉬움이 남는다.


김영광은 90분을 잘 뛰고도 이운재를 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기의 중요한 순간 순간에 수비를 리드하고, 그 구멍을 지적하며,
스스로 그 구멍의 일부를 틀어 막는 역할이 아쉬웠다.

위치 선정과 볼 처리, 방어 능력 등에서는 좋은 경기를 펼쳤음에도
마지막 위기 관리 상황에서 결정적인 공헌을 하지 못했다는 점은...
결국 그 하나만으로 자신이 따 놓은 점수의 반을 날려버린 셈이다.

스트라이커가 아무리 화려하고 기량이 좋아도
가장 결정적인 상황에서의 해결 능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자리를 꿰차기 힘든 것처럼
골키퍼 또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란과의 경기에서...
막판의 어이 없는 실점 상황이 바로 '결정적인' 위기 상황이었다.


김남일, 아직은 반쪽 주장인가?

주장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은 팀의 위기상황에서다.
이것 역시 결정적인 역할이라 할 수 있는데...
후반 막판... 경기를 결정 짓기 위한 지키기 모드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주장이 경기에 개입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 왔던 수 많은 경기들을 되짚어 보기 바란다.
경기 막판의 시간 끌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도 주장이고
반대로 최후의 역전 찬스를 만들기 위해 선수들을 다그치는 사람도 주장이다.

주장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끊임 없이 선수들의 상태를 바라보고, 그들을 다독거리고,
때론 거침 없이 질책을 가하고...
그리고, 스스로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면서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좀 애매했던 것은...
경기 자체가 워낙 우리 팀의 우세로 펼쳐졌기 때문에
김남일 본인이 그렇게까지 위기 상황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김남일이 하나 배웠으면 한다.
아주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 위기일 수 있으며
주장의 안테나는 그것 조차도 추적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


이을용, 송종국...

2002년 황금벰버 중에서 점점 입지가 떨어지는 멤버가 아닌가 걱정된다.
경험과 관록, 자신감으로 자기 몫을 해 내고는 있지만
힘과 스피드, 활동영역에서는 다소 후퇴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기를 바라지만...
반복되는 경기가 증가하게 된다면 대표팀에서의 자리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

경험과 관록과 자신감이 경쟁력이라면
그 자리를 넘보는 후발주자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는 말이기도 하다.


베어벡 감독의 선수 기용

경기가 1대0으로 그냥 끝났다면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을 만큼
선발 선수들이 잘 뛰어주었다.
따라서, 감독이 적극적으로 선수 교체를 감행하지 않은 것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통상 이런 경우에는 문제가 생긴 선수를 바꿔주는 식으로
경기에 영향을 최소화 하는 선수교체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후반 25분이 지나도록 좀처럼 추가 득점 찬스를 만들지 못하는 상태에서
감독의 액션이 없었다는 점은 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추가 득점의 의지가 없었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치만 문제는 많겠지 ^^)
그것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추가 득점의 의지가 있었다고 믿고 싶다)
공격진의 변화를 한 번은 시도했어야 하지 않을까...

안정환과 박주영을 소집 멤버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정조국 외에는 쓸만한 카드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후반전 페널티 에리어 왼쪽의 좋은 지역에서 프리킥 찬스를 얻어 놓고서
김두현 외에는 프리키커의 옵션이 전혀 없었던 상황은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그리고, 경기 내내 측면의 활발함에 비해서
중앙쪽에서 마지막 찬스가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대책이 시도되지 않았던 부분은
결국 우리가 제대로 된 추가득점 기회를 만들지 못한 원인이었으니 말이다.

안정환과 박주영을 제외하고 정조국에게 믿음을 보냈다면
정조국에게 한 번 기회를 주던가...
(이천수의 투입은 왈가왈부할 것이 못된다.
붙박이 선발이나 다름없는 선수가 나오지 않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용히... 차분한 것이 좋지만...
좀 더 변화무쌍할 필요가 있을 듯!


홍명보 코치

그는 지금 코치로 대표팀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영원한 주장으로 대표팀에 있는 것인가?

비록 코칭 경험이 일천하지만...
홍명보의 개입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수석 코치로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대표팀이 아닌 프로팀에서 담금질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홍명보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역할 개입이 너무 적다는 말이다.

그에게 소리 없는 조연은 어울리지 않는다.
홍명보는... 칼자루를 쥐고 있을 때 빛을 발하는 장수다.

그에게 교관이나 조교는 어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