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더비는 포항이 이겨야 제맛!

2022. 7. 4. 18:20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2022.07.02(토), 포항(2:0)울산, K리그1 Round 19 (직관)


제 블로그를 찾는 분 중에 울산 팬이 있다면 양해말씀 먼저 드립니다. 제가 포항 팬이기에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지적 포항 시점에 포항 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동해안 더비는 TV로 보는 것보다 훨씬 치열하고 긴장감이 넘칩니다. 90분 내내 선수들은 물론이고 전 관중이 극도의 몰입을 하는 경기입니다. 응원과 야유와 탄식과 함성이 경기 내내 끊어지지 않고 경기도 매우 치열합니다.

전 관중이 최상의 몰입도와 긴장감으로 90분을 보내고 난 후, 모든 것은 승자가 독차지하며 패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1도 없습니다. 승자에게는 이 한 경기로 세상 모든 것을 얻기라도 한 것 같은 오만함이 밀려오지만 패자에게는 두 번 다시 맛보고 싶지 않은 치욕만이 기다립니다.

포항 스틸러스의 서포터스는 평소 응원할 때 상대편을 디스하는 응원은 하지 않는게 전통이지만, 이 전통은 어디까지나 울산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과의 경기에만 해당될 뿐! 동해안 더비에서는 응원의 반 이상이 울산을 향한 조롱과 디스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승리 뒤에는 그 조롱과 디스가 10배쯤 증폭되죠.

우리가 이기면 상대에게 기분 좋게 한 방 먹일 수 있지만 반대일 때도 많습니다. 경기장을 정리하고 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건너편 서포터석에서 울려 퍼지는 승자의 조롱을 들어야합니다. 이겼을 때는 맘껏 거만하게, 하지만 졌을 때는 찍 소리 말고 최대한 신속하게 사라지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고 괜한 충돌도 막을 수 있습니다.

긴 세월을 티격태격 했지만 별다른 충돌이나 불상사는 없었습니다. 진 팀은 항상 깨끗하게 승복하고 두 말 없이 자리 뜨는게 동해안 더비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번 경기의 승자는 포항이었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홈 스틸야드에서!
이 경기 하나로 일 년치 경기를 다 치렀고
유효기간 일 년짜리 포항뽕 주사도 한 방 맞았고
일년 놀 거 이 날 저녁에 다 놀고 집에 가는 겁니다!

포항 팬들은 이기기 위해 동해안 더비에 몰두하는 게 아니라
뒷풀이를 즐기기 위해 그럴지도 모릅니다.

다음 경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고, 다음에는 몇 배의 치욕이 우리에게 돌아올지 알 수 없지만...
동해안 더비는 오늘만 살고 내일은 없는 겁니다.^^

경기 후 이틀이 지났지만 여전히 경기장에서 내 영혼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합니다.

단 한 번을 이겨도 짜릿하게.....

포항 팬들이 동해안 더비를 즐기는 방법이 여기 있습니다.

 

승점자판기

포항이 리드를 잡거나 경기에 이기면 어김없이 나오는 노래입니다. (사실 울산이 포항의 승점 자판기였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만...ㅎㅎ)

울산은~ 울산은~ 포항 승점 자판기~~~


별이 두 개래~

K리그 전통의 강호지만 우승(별)은 두 번 뿐인 울산. "K리그 최다 준우승(10회) 클럽" 이라는 결코 반갑지 않은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포항은 다섯 개의 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울산 놈들~ 맨날 준우승~ 별이 두 개래~ 별이 두 개래~ 별이 두 개래~~~


잘 가세요~

원래는 울산의 응원곡. 울산이 승리 후 상대 약 올리는 노래였는데 요즘은 상대팀이 이긴 후에 울산에게 불러주는 노래로도 쓰입니다. 사실 요즘의 울산은 패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노래를 상대팀에게 빼앗기는 경우는 몇 번 안되는데, 그 몇 번 안되는 그 기회를 잡는 대표적인 팀이 포항이기도 합니다.
원래 포항의 승리 축하곡은 "영일만 친구"지만 동해안 더비에서는 이 노래를 주로 부릅니다. 승리가 확정적인 타임이 되면 처음에는 서포터스만 부르다가 점점 전관중이 동참합니다. 울산 선수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 노래를 들으며 뛰어야 하고요... 워낙 익숙한 노래라서 동해안 더비 처음 직관하는 사람들도 마냥 신나게 따라 부르는 노래!

잘~ 가세요 잘가~세요~

심지어 경기 끝난 후에 선수들도 함께 부를 때가 있습니다.

2021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승부차기까지 가는 힘들고 피말리는 승부기도 했고 아챔 결승 진출이라는 큰 성과도 있었던 경기죠.

이런 경기라면 선수들도 흠뻑 승리를 즐길만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래는 아니고 응원 걸개. 동해안 승리 순간에는 오픈 되는 걸개.
2013년 K리그 최종전에서 극장골 역전 우승 후에 펼쳤던 걸개다. 당시 우승이 거의 확정적이었던 울산은 지나치게 시간을 끌던 상황이었고 이미 피치 밖에서는 우승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종료직전 김원일의 결승골이 터지면서 우승은 포항 차지가 되었다. 동해안 더비 역사상 포항에게 가장 통쾌한 순간이었고, 반대로 울산에게는 최악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최근 동해안 더비의 성격을 설명하는 문구가 아닌가 싶다.
울산은 뭔가 이루려 하고 포항은 거기에 훼방을 놓으면서 약 올리고 즐기는 양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

...

올 시즌 동해안 더비는 현재까지 1승 1패. 모두 홈 팀의 2대0 승리였습니다.
다음 경기는 울산에서 열립니다. (9/11, 일)
홈 팀 울산이 "잘~가세요~"를 부를까요?

그건 봐야 아는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노는 데 있어서는 우리가 더 진심이니까!

[참고] 김현회 기자, 스포츠니어스
‘울산 놀리기’에 누구보다 진심인 포항 팬들의 승리 뒷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