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이 포항 감독으로 온다면...

2010. 10. 28. 13:19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부산과 계약이 종료되는 황선홍 감독의 포항 스틸러스행이 연일 이슈가 되는군요.
마침 계약이 종료되는 황선홍 감독, FA컵 우승 좌절로 인해 부산에 남아 있을 명분이 약해진 상황.
그리고, 포항 스틸러스는 현재 감독대행 체제.
게다가... 황선홍은 자타가 공인하는 포항 스틸러스의 스타 플레이어 출신!

그림 상으로는 퍼즐이 딱 들어 맞는 모양이 나오는군요.
아직 초보 감독의 굴레를 벗지 못한 황선홍 감독이지만, 최하위권 부산을 지난 3년간 중위권 수준까지 올려 놓은 것으로 본다면 그의 지도력에 포항 스틸러스를 맡겨보는 모험 정도는 그리 무리가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포항 스틸러스 입장에서는 분위기 쇄신, 흥행성 등의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할만 하고
팀 또한 여전히 파리아스 이후의 리빌딩 작업이 진행되는 시점이라고 보면
황선홍 감독 카드는 상당히 매력적이긴 하겠지요.

황선홍 감독은 포항 출신의 스타플레이어이며 그가 활약하던 시절 최강의 포항 스틸러스였다는
팬과 구단의 아름다운 기억이 가장 큰 명분인 것은 분명한 사실!
부산과의 정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거나, 제3의 변수만 없다면 그의 포항행은 충분히 환영을 받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포항 스틸러스에서 황선홍 감독의 모습은 어떨까요?

아마 부산에서보다 훨씬 높은 눈높이를 감당해야 할겁니다.
설사 선수 자원이나 구단의 씀씀이가 부산과 같더라도, (혹은 그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포항과 포항의 팬들이 바라는 결과는 부산에서의 성적보다 더 높을 것입니다.
우승 또는 우승에 근접하는 팀 파워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포항다운' 팀 컬러를 지켜내야합니다.

말하기도 애매한 '포항다운' 팀 컬러...
팬들의 신뢰를 받는 선수를 존중해야하고, 포항에서 오랫동안 뛴 선수에 대해 예우를 해야 하고,
포항에서 육성된 어린 선수를 키워줘야 하고, 공격적인 경기 스타일을 유지해야하고,
스틸야드에서는 무모하리만치 용맹해야 하고, 또 승리해야하고...
전통의 명가라고하지만 우승의 기억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런 포항 팬들에게 있어서 끝까지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자존심'이죠.
우승을 해도 자존심을 건드려서는 안되고, 우승을 못해도 자존심만은 지켜줘야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힘든 것... 요놈의 자존심이라는거...
도대체 이걸 감독으로서 어떻게 충족시켜줘야할지....

상황과 조건을 불문하고 이런 기대치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일이 아닙니다.
현실이 따라주건 그렇지 않건 포항에 대한 기대치는 '전통의 명가'라는 눈높이에 걸려 있으니까요.
더구나 최근 몇 년간 제2의 전성기라 불릴만큼 여러 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린 포항이기에
황선홍이 감내해야할 부담감의 무게는 엄청 클겁니다.

최순호 감독이 포항 사령탑으로 겪었던 좌절과 수모를 기억하시는지요?
포항 스틸러스의 역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레전드가 최순호입니다.
그가 포항의 코치로 부임하는 순간부터 팬들의 사랑과 기대는 엄청났습니다.
하지만... 감독 최순호에게 친정팀 포항의 팬들은 거칠고 냉담하기만 했습니다.
기대치 이하의 성적을 팬들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성적을 위해 공격적인 전술을 희생했을 때는 포항답지 않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지요.
성적 향상을 위해 외부에서 선수를 수급했을 때도 선수로 성적을 사려한다는 비판을 들었고요.
K-리그 준우승이라는 최종 성적표를 받았음에도...
최순호 감독 본인이나 포항팬들 모두 그 시절의 포항 스틸러스에 대해 그리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파리아스는 포항의 최대 침체기에 팀을 맡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팬들의 기대치와 눈초리가 그리 매섭지는 않았고요.
또한 그랬기 때문에 한발짝 한발짝 전진하면서 성공적인 감독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포항의 감독이 된 황선홍...
최근 몇년간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질대로 높아진 포항을 맡아야합니다.
부임하는 순간 최고의 찬사와 환영을 받겠지만, 내용과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때는 모된 시련을 받을수도 있습니다.
포항의 팬들이 황선홍을 환영한다는 뜻이란...

"당신은 우리의 레전드이기에, 이런 모든 스트레스와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 합시다."

...라는 뜻일겁니다.

포항 스틸러스 입장에서는 "월컴 홈"이겠지만
황선홍 감독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도자 인생에서 큰 승부처이자 모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텃밭을 일구어 놓은 부산에서 한 계단 더 전진하느냐...
위험 부담이 있지만 포항과 함께 퀀텀 점프를 한 번 시도하느냐...

황선홍 감독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하군요.
저 역시 포항 스틸러스의 팬입니다.
당연히 황선홍 같은 포항의 레전드가 다시 우리팀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고 열광했던 황선홍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시간을 주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됩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스타플레이어임에도...
유난히 부침이 많은 축구인생을 살아온 황선홍이기에 걱정이 앞서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포항의 팬으로 산다는 것은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레전드들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