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팬의 눈으로 본 야구 한국시리즈

2010. 10. 20. 00:18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저는 축구팬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야구의 문외한은 아닙니다.
1969년생... 제 나이 또래의 남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초등학교 시절에는 박노준, 김건우, 류중일, 김정수, 선동렬이 뛰는 고교야구를 흠뻑 즐겼고 중학교때는 프로야구 경기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어린시절을 춘천에서 보낸 저는 불행히도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었습니다.^^
응원할 팀이 존재하는 것 자체로, 그 순간부터 아픔을 가져야하는 슬픈 팬의 추억이랄까... T.T
하여간, 인천을 연고로 하는 삼미 슈퍼스타즈였지만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인천이 아닌 춘천에서 홈 경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야구팬들도 축구를?

저는 평소에 거의 야구를 보지 않습니다. 그저 스포츠 뉴스로 전해지는 몇몇 헤드라인에서 흥미를 느낄 뿐이지요.
그렇지만 포스트 시즌 경기, 특히 한국 시리즈는 거의 매년 챙겨서 봤던 것 같네요.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축구를 가족과 친구 다음으로 좋아하는 제가 야구 빅 경기를 보듯이 골수 야구팬들도 K-리그 챔피언 결정전 경기를 볼까?
보는 이들도 많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야구 빅 경기를 보는 축구팬들 보다는 축구 빅 경기를 보는 야구팬들이 훨씬 적은 듯 합니다.
아마도... 제 또래, 그리고 그 아래 동생뻘 되는 사람들의 어린시절은 야구 판타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축구팬이기 이전에 스포츠 팬이었고, 제 어린 시절의 스포츠 팬이라면 야구는 TV에서 가자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는 레전드들의 마당이었으니까요.

두산이나 롯데 팬들은 SK:삼성의 한국 시리즈 경기를 얼마나 재밌게 봤을까?

포항 스틸러스의 서포터인 제 경우, 예를 들어 서울과 성남이 K-리그 챔피언 결정전 경기를 한다면 그냥 별다른 감정 없이 경기 자체를 볼 뿐입니다. 그다지 손에 땀을 쥐지도 않고 누가 이기건 간에 별다른 감흥도 없습니다.
그저... 그 경기에 나의 포항 스틸러스가 없다는 것이 아쉽고, 우리가 서 있어야할 챔피언의 자리에서 우승 세레모니를 하는 TV 속의 승자에게 시기와 질투와 아쉬움 섞인 눈길을 보낼 뿐입니다.

아마도... 이번 한국 시리즈를 보는 롯데나 두산의 팬들 또한 저와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느 한 팀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 팀 이외에는 모두 제 3자일 뿐이니까요.
제게 있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냥 다른 팀의 하나일 뿐인 것처럼, 어느 한 팀을 죽도록 좋아하는 야구팬의 입장에서는 뉴욕 양키스도 그냥 나의 팀이 아닌 다른 팀일 뿐이겠지요.

나의 팀이 주인공이 아닌 경기는 그냥 TV 프로그램의 하나처럼 느껴졌을 듯 하네요.
그리고... 한국 시리즈가 끝나는 순간... 챔피언의 세레모니에 나의 팀을 오버랩시키면서 왠지 모를 공허함과 쓸쓸함, 부러움 속에 시기심이 솔솔 피어오르고, 언젠가 다시 저 자리에 서게될 나의 팀을 그려보고, 마냥 부럽고 아쉽지만 쉽게 채널을 돌리지 못하고...
저 조차도 야구 우승자를 보면서 포항 스틸러스가 챔피언 세레모니를 하는 순간을 연상했는데... 아깝게 시즌을 마감한 두산과 롯데의 팬들은 오죽했을지... 또 삼성의 팬들은 얼마나 가슴이 저렸을지...

믿음의 축구, 믿음의 야구

축구나 야구나 성공하는 감독은 딱 두 부류입니다. 뚝심파와 팔색조파!
뚝심으로 밀고 나가고 실수를 연발하는 선수도 끝까지 끌고가서 극적인 순간에 열매를 따내는 뚝심파.
반면 시시각각 상황상황에 맞게 변화 무쌍하고 절묘한 전술을 구사하면서 아름답게 승리를 조련해 내는 팔색조파.

제가 이번 한국 시리즈를 보면서 느낀 바, 삼성의 선동렬 감독이 뚝심파라면 SK 김성근 감독은 팔색조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축구로 치자면 포항 스틸러스를 지도했던 파리아스가 팔색조파라면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뚝심파가 되겠지요.

뚝심파는 하늘과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만 잡으면 드라마 같은 명승부,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터뜨려줍니다.
감독은 연출자일 뿐이지만,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레전드를 하나 탄생시키기도 합니다.
단, 하늘과의 의사소통이 늘 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빈도가 많지는 않고, 오히려 반대로 허무한 탄식으로 쓰린 속을 달랠 때가 더 많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팔색조파의 경기에서는 극적인 카타르시스 보다는 '아하!'하는 감탄사가 딱 터져나오는 재미를 줍니다.
상대팀보다 먼저 움직이면서... 상대가 숨조차 쉬지 못하게 옥죄이는가 하면 자기 팀의 위기나 찬스를 기가막히게 집어내고 조치합니다.
단... 뚝심파 명장이 하늘과 뜻이 통할 때는 그 모든 절묘한 작품이 아무 이유 없이 초라해지고 말지요.

주의할 점은... 뚝심 없는 뚝심파는 그냥 미련할 뿐이고
색깔 없는 팔색조파는 그저 변덕쟁이릴 뿐이지요. ^^

감독 김성근!

아... 이 사람... 혹자는 비판도 많이 하지만 축구팬인 저의 눈에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축구에 비해서 감독의 개입이 훨씬 많은 야구라는 경기에서 한 점의 흐트러짐 없이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애초부터 삼성보다 앞서는 전력이고, 플레이오프에서 한바탕 진을 뺀 삼성에 비해서 비축한 힘이 많다는 점에서 이미 상당부분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스포츠 경기라는 것은 항상 의외성과의 싸움이 있고 흐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그로 인해서 예기치 않았던 찬스도 오고 위기도 옵니다.
그러나... 이 사람... 위기는 틀어 막고 찬스는 어김없이 살려나갔습니다.

이토록 철자하게 상대편을 쥐어박고, 자기 팀의 모든 것을 제대로 쥐어짠 감독이 과연 한국 축구사에 있었던가요?
맨유의 퍼거슨에게서 받는 느낌이라면 너무 과찬일까요?
야구라는 경기 특성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축구를 통해서 본 감독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고도의 조정자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극적인 드라마와 버라이어티는 약자가 강자를 쥐어 짤 때 나옵니다.
혁명을 통해서 역사의 반전이 이루어집니다.
강자가 틈을 보이지 않을 때... 또는 약자가 되받아 칠 수 있는 도발력과 당돌함을 갖추지 못할 때...
스포츠는 각본 '있는' 드라가 됩니다. ^^

....

그건 그렇고....
축구와 야구, 서로 다른 종목이지만 팀 간에 서로 닮은 꼴의 이미지가 있지 않나요?

성남 일화 vs. SK 와이번스
우승을 많이한다. 그냥... 우승할거 같은 팀이 우승해서 그런지 센세이셔널하지는 않다.

FC 서울 vs. 두산 베어스
서울에 산다. 최고의 홈 구장이 있다. 늘 강한것 같지만 생각처럼 우승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수원 삼성 vs. 삼성 라이온스
둘 다 삼성이다. 파랗다. 강하고 멋지긴 하지만 가격대비 성능이 나오는지는 늘 궁금하다.

포항 스틸러스 vs. 롯데 자이언츠
한 때 잘나갔다. 이제는... 10년이 가기전에 한 번만 더 영광을 봤으면 좋겠다!

....

이제 축구도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군요.
나의 팀이 주인공이 아닌 씁쓸한 가을이지만...
또 누군가는 주인공이 되고, 감동의 주인공이 되겠지요.

이럴땐 그냥 빨리 내년이 왔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
ㅋㅋ 너무 자기 중심적인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