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다시 챔피언이 될 수 있을까?

2010. 9. 16. 12:30축구가 뭐길래/Steelers & Reds


어제(9월 15일, 수) 포항과 조바한의 아시아쳄피언스리그(ACL) 8강전.
포항으로서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결과였다고 생각됩니다.
비록 1대2로 패하긴 했지만, 원정경기에서 골득실 1점차에 득점도 하나 올렸으니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닙니다.
포항 홈 경기에서 1대0으로만 이겨도 되니까요.

가장 반가운 것은 포항의 플레이 특징을 잘 살렸다는 점입니다.
포항이 가장 잘 나가던 2007~2009 시즌과 같이 빠르고 간결한 패스웍과 효율적인 경기운영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ACL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있어서 그런지 부담되는 이란 원정 경기에서도 90분 내내 포항의 스타일대로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 나갔습니다. 부상이나 불필요한 경고도 없었고요.
파리아스 이후 레모스 감독을 거치면서 잠시 흐트러졌던 팀 스타일이 이제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때맞춰서 설기현 선수도 100%의 기량을 회복한 듯 하구요.
지금의 1대2 패배보다는 앞으로 더 좋은 경기를 펼쳐 보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어제 경기에서 가장 빛나는 스타는 박창현 감독대행이었습니다. ^^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많이 흐트러져 있던 팀을 비교적 빠른 기간에 제 자리로 돌려 놓았습니다.
노병준, 황재원, 최효진 같은 챔피언 중의 챔피언들이 떠난 자리에도 새로운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요.
특히, 0대1로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선수교체를 통해서 경기 주도권과 페이스를 잃지 않았습니다.

박창현 감독대행도 소위 B급 지도자입니다.
청소년과 성인 국가대표팀의 스타 플레이어 출신도 아니고 화려한 지도자 경력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축구판의 메인 스트림 속에서 성장한 스펙 짱짱한 지도자가 아닌, 그저 착실히 한단계 한단계 지도자 수업과 실전 경험을 쌓아올린 경우지요.
그러나... 스펙이 B급이라고 실력도 B급은 아니지요!
오히려, 지금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대행으로서 보여주는 것들은 A급 중에서도 A+급의 실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유명하고 스펙 짱짱한, 화려한 경력과 경험으로 무장한 감독은 아니지만 실력으로 자기를 보여주는 감독이 지금 포항의 사령탑으로 있다는 것은 포항 팬으로서 정말 다행스럽습니다.

음... 선수들도 차분하게 경기 주도권과 페이스를 잃지 않고 경기를 잘 했지만
다시 아시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기에는 몇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수비의 문제점이 도드라집니다.
특히 페널티 에리어와 그 근처에서 상대 공격수에게 슈팅 찬스를 허용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비록 골로 연결된 것은 2골 뿐이지만, 슈팅 찬스를 내준 것은 여러번 있었습니다.
상대 공격수가 빠르게 역습해 올 때 수비수들이 한 발 늦게 대응하거나, 상대 공격수보다 느리게 자리를 잡거나, 또는 동료 미드필더들이 앞에서 강하게 끊어주지 못했습니다.

작년에 비해서 포항의 플레이가 너무 깨끗합니다.
플레이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상대의 역습 상황에서는 설사 반칙이 발생하더라도 몸과 몸이 부딪칠 정도로 빠르고 강하게 접근해서 차단해줘야합니다.
뒤로 물러서면서... 곱게곱게 패스 길목한 차단하겠다는 세련된 생각은 잠시 접어줬으면 좋겠습니다.
힘과 힘, 스피드와 스피드, 쪽수와 쪽수로 맞짱을 떠야하는 치열한 미드필드 싸움에서 고상하고 세련된 플레이는 과감히 포기하는게 좋겠지요.

파리아스를 통해 만들어진 포항 플레이의 장점은 무작정 죽자고 뛰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간결하게 움직이면서도 공간 점유율과 볼 점유율을 높게 가져간다는 점입니다.
다른 팀에 비해서 경기를 쉽게 풀어가지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많은 팀들이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무조건 죽자고 뛰어 다니다가 진짜루 죽어버리는 모습을 많이 보이거든요. ^^
거기에 비하면 포항은 마치 연습경기를 하듯이 효과적인 축구를 구사하는데...
문제는 이런 플레이에 자신감이 붙은 나머지 선수들이 너무 깔끔하고 고상하게 플레이를 하는 것 같습니다.
강하게 부딪칠 때는 부딪쳐야하는데... 무식할 때는 무식해야 하는데...
너무 깔끔하고 영리하게 하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본능적인, 야성적인 본색을 좀 드러내야 할 듯 합니다.

작년 시즌의 포항... 김형일이나 신형민은 예기치 못한 경고나 퇴장으로 팀에 어려움을 주기도 했지만
그들이 보여줬던 거칠게 끓어오르는 파이팅은 팀 컬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공격에서는 데닐손의 빠르고 화려한 플레이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상대 수비수와 경합을 벌이고 몸과 몸을 부딪쳐 주었던 스테보가 있었고요.
지금의 포항 스틸러스에서도 누군가 이런 역할을 해 주어야합니다.
소위... 상대편 입장에서 볼 때 꼴보기 싫은 선수가 2-3명쯤 있어야지요. ^^

아무튼... 전체적으로는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 걸맞는 경기 내용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조바한도 1대1 동점 상황 이후에는 스스로 홈 승리를 따내기 위해 강한 공격을 시도했고, 득점을 올렸고, 그 외에도 몇 차례 좋은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포항 또한 0대1 상황에서 스스로의 공격력으로 1대1을 만들었고, 1대2로 뒤진 상황에서는 추가 실점을 경계하면서도 공격적인 플레이를 유지했습니다.
박창현 감독 대행도 황진성을 교체투입하면서 공격의 물꼬를 트고, 이창호를 넣으면서 공수 밸런스를 잡아주면서 물 흐르듯이 경기를 운영했습니다.

포항에서의 홈 경기도 그리 쉽지는 않을겁니다.
홈 경기의 잇점이 있다고하지만, 상대팀 조바한의 경기력이 포항에 비해서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란 원정에서 1득점을 했듯이 그들도 충분히 우리 홈에서 1득점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바한의 수비력이 그리 완성된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2대1의 리드를 잡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포항 경기에서는 좀 더 수비에 치중하는 경기운영을 하겠지만
팀 스타일 자체가 공수를 모두 균형있게 가져가는 팀이기 때문에 무작정 수비 축구를 구사하지는 못할겁니다.
결국은 우리 공격수들의 득점력에 의해서 4강 진출여부가 가려질텐데...
설기현-모따-알미르의 3각편대라면 충분히 득점 찬스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측면과 페널티 에리어 바깥 부근에서 공간을 잘 내주기 때문에 김재성이나 신광훈 같은 선수들에게도 좋은 찬스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번에도 작년처럼 연장전까지 염두해 둬야 할 것 같네요.
심지어 승부차기까지 가게 될지도 모르구요.
1차전을 1대2로 패하긴 했지만, 아직 포항에게 유리한 기회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플레이를 제대로만 펼쳐 준다면 아시아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 될거에요. ^^
우리 포항 서포터들...
비행기 한 번 더 타야하지 않겠습니까?